제1차 니케아 공의회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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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영광되시는 우리 하느님 그리스도여,
지극히 영광되시는 우리 하느님 그리스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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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First Council of Nicaea
[[영어]] : First Council of Nicaea


== 개요 ==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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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니체아 공의회를 그린 [[이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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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그린 [[이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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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공의회는 공의회 참석 주교들 스스로조차도 이것이 큰 영향을 끼치거나 할 줄은 몰랐기에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문헌을 적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 관련 정보는 공의회 참석 주교 개개인이 사사로이 적어놓은 것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공의회는 공의회 참석 주교들 스스로조차도 이것이 큰 영향을 끼치거나 할 줄은 몰랐기에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문헌을 적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 관련 정보는 공의회 참석 주교 개개인이 사사로이 적어놓은 것에 의한 것이다.
== 공의회의 소집 배경 ==
== 공의회의 소집 배경 ==
320년경 제국의 문화적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서 리비아 출신 신부 아리우스는<ref>순교자 '안티오크의 성 루치아노'의 제자였다.</ref>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들고 나온다.
320년경 제국의 문화적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에서 리비아 출신 신부 아리우스는<ref>순교자 '안티오크의 성 루치아노'의 제자였다.</ref>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들고 나온다.


아리우스의 주장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아리우스의 주장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성자(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처럼 영원하지 않다.
# 성자(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처럼 영원하지 않다.
# 성자는 세상의 창조에 앞서서 무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렇기에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 성자는 세상의 창조에 앞서서 무로부터 창조되었다. 그렇기에 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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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의 주장은 유일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는 {{ㅊ|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어서}}받아들이기가 쉬웠으나 그렇게 될 경우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던 거룩한 전승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인 동시에, 교회는 "'''피조물을 흠숭'''한다"라고 고백하거나 (이렇게 될 경우 뭐가 어떻게 됐든간에 '''하느님이 아닌 것'''을 숭배한다는 말이 되므로 십계명의 제1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 된다!)<ref>아타나시오파는 아리우스파에 대해서 "니들은 예수를 피조물이라 하면서도 예수에 대한 흠숭은 그만 안두네? 이것들 완전 다신교도들이네" 하며 깠다.</ref> "'''예수에 대한 흠숭'''을 중지"해야만 했다.
이런 그의 주장은 유일신 신앙이라는 측면에서는 {{ㅊ|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없어서}}받아들이기가 쉬웠으나 그렇게 될 경우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던 거룩한 전승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인 동시에, 교회는 "'''피조물을 흠숭'''한다"라고 고백하거나 (이렇게 될 경우 뭐가 어떻게 됐든간에 '''하느님이 아닌 것'''을 숭배한다는 말이 되므로 십계명의 제1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 된다!)<ref>아타나시오파는 아리우스파에 대해서 "니들은 예수를 피조물이라 하면서도 예수에 대한 흠숭은 그만 안두네? 이것들 완전 다신교도들이네" 하며 깠다.</ref> "'''예수에 대한 흠숭'''을 중지"해야만 했다.


결국 그의 말이 쉽기에 받아들이는 아리우스파와 {{ㅊ|당연하게도}} 노발대발하며 그에 대해 반발하는 파로 나뉘었다<ref>그리고 이 주축에 성 아타나시오가 서기에 일명 "아타나시우스파"로 불린다.</ref>. 급기야 아리우스와 지지자들이 이집트, 리비아,트리폴리타니아에서 온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주교들 앞에서 심문을 받고 이단으로 파문당하는 사태까지 갔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주장 자체는 지극히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쉬웠기에 그 가르침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거리에 대자보가 나 붙고 장터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벽마다 분필로 쓴 온갖 구호가 돌아다니는 등 그야말로 귀족, 평민 구분 없이 100분 토론 모드에 돌입했다(...) 또한 아리우스는 여론 몰이에 능통한 자였고,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가요와 동요를 지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ref>출처 <비잔티움 연대기></ref>
결국 그의 말이 쉽기에 받아들이는 아리우스파와 {{ㅊ|당연하게도}} 노발대발하며 그에 대해 반발하는 파로 나뉘어졌다<ref>그리고 이 주축에 성 아타나시오가 서기에 일명 "아타나시우스파"로 불린다.</ref>. 급기야 아리우스와 지지자들이 이집트, 리비아,트리폴리타니아에서 온 거의 백 명에 달하는 주교들 앞에서 심문을 받고 이단으로 파문당하는 사태까지 갔다. 그러나 아리우스의 주장 자체는 지극히 간단하고 이해하기도 쉬웠기에 그 가르침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거리에 대자보가 나 붙고 장터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벽마다 분필로 쓴 온갖 구호가 돌아다니는 등 그야말로 귀족, 평민 구분 없이 100분 토론 모드에 돌입했다(...) 또한 아리우스는 여론 몰이에 능통한 자였고, 자신의 견해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가요와 동요를 지었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ref>출처 <비잔티움 연대기></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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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콘스탄티누스는 지역 주교들의 회의는 중단하고, 대신 니케아(니체아)에서 권위있는 세계 공의회를 열어서 아리우스파와 정통파 양측이 모두 승복할 만한 판결을 내자고 했다. 이러하여 325년 6월 19일에 니케아에 있는 황제 별궁에서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의회를 소집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이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지역 주교들의 회의는 중단하고, 대신 니케아(니체아)에서 권위있는 세계 공의회를 열어서 아리우스파와 정통파 양측이 모두 승복할 만한 판결을 내자고 했다. 이러하여 325년 6월 19일에 니케아에 있는 황제 별궁에서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의회를 소집했으니 이것이 바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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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의 공의회 개막 연설<ref>출처 <비잔티움 연대기></ref>}}
콘스탄티누스의 공의회 개막 연설<ref>출처 <비잔티움 연대기></ref>}}
{{ㅊ|요약: 그만좀 싸우고 쿨하게 합의보자}}<ref>[[콘스탄티누스]]는 이제 막 제국을 통합시킨 입장이라 교리문제로 제국이 분열하는 건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어했다. 다만 그 자신은 교리 문제에는 관심이 적었는데, 당장 이 항목에 쓰인 편지와 연설의 어조만 보더라도 '정확하고 합리적인 결론' 같은 것보다는 '당장 이 문제를 끝내는 것'에 관심이 컸다. 여담으로 콘스탄티누스의  
{{ㅊ|요약: 그만좀 싸우고 쿨하게 합의보자}}<ref>[[콘스탄티누스]]는 이제 막 제국을 통합시킨 입장이라 교리문제로 제국이 분열하는건 어떻게 해서든 막고 싶어했다. 다만 그 자신은 교리 문제에는 관심이 적었는데, 당장 이 항목에 쓰인 편지와 연설의 어조만 보더라도 '정확하고 합리적인 결론' 같은 것보다는 '당장 이 문제를 끝내는 것'에 관심이 컸다. 여담으로 콘스탄티누스의  
안드로메다로 간 교리이해를 볼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로, 그는 죽기 직전 337년 5월 22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는 원죄와 본죄와 그 벌까지 한방에 모조리 용서하는 효과가 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이것을 노리고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은 것(...) {{ㅊ|로마 버전 [[파스칼의 내기]]}} 다만 어느 정도 옹호할 건덕지도 있는데, 이 시기에는 이게 유행이었다고 한다.</ref>
안드로메다로 간 교리이해를 볼 수 있는 일화 중 하나로, 그는 죽기 직전 337년 5월 22일 성령강림대축일에 세례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에서 세례는 원죄와 본죄와 그 벌까지 한방에 모조리 용서하는 효과가 있는데, 콘스탄티누스는 이것을 노리고 죽기 직전에 세례를 받은 것(...) {{ㅊ|로마 버전 [[파스칼의 내기]]}} 다만 어느정도 옹호할 건덕지도 있는데, 이 시기에는 이게 유행이었다고 한다.</ref>


이때 참석한 주교는 318{{ㅊ|±2}}명이라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ref>그리고 이 주교들 중 4명은 끝까지 아리우스파를 옹호하다가 파문당했다.</ref>. 여담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의회의 개막식 때 개회 연설까지 {{ㅊ|반강제로}} 떠맡게 되었는데, 참석한 주교들 거의 대부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 주교들이었고 황제 자신도 그리스어를 비교적 잘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때 참석한 주교는 318{{ㅊ|±2}}명이라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ref>그리고 이 주교들 중 4명은 끝까지 아리우스파를 옹호하다가 파문당했다.</ref>. 여담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의회의 개막식 때 개회 연설까지 {{ㅊ|반강제로}} 떠맡게 되었는데, 참석한 주교들 거의 대부분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동방 주교들이었고 황제 자신도 그리스어를 비교적 잘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ㅊ|반강제로 떠맡게 된 개회 연설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연설했다. 그리고 당시 카이자리아의 주교 에우세비오는 황제가 개막식에 입장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라고 묘사하였다. {{ㅊ|아부?}}
{{ㅊ|반강제로 떠맡게 된 개회 연설에 대한 복수 차원에서}} 제국의 공용어인 라틴어로 연설했다. 그리고 당시 카이자리아의 주교 에우세비오는 황제가 개막식에 입장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내려오는 것 같았다'라고 묘사하였다. {{ㅊ|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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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의 쟁점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이었고, 그리고 간간히 부활대축일의 날짜 계산 같은 것들이 논의되었다.
공의회의 쟁점은 주로 아리우스 논쟁이었고, 그리고 간간히 부활대축일의 날짜 계산 같은 것들이 논의되었다.


공의회는 아리우스의 새로운 주장을 물리치고, 예수와 성부가 동일본체(homoousia)라는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오던 가르침을 발전시켜서 삼위일체론으로 정립하였다. 그리고 아리우스는 결국 그리스도가 성부와 성령과 똑같은 천주성(天主性)을 지녔다는 니케아 신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여서 이단자로 결정되어 파문되었고, 그는 아우구스타 트리베리움으로 유배를 갔다. {{ㅊ|키배에서 진 자의 말로}} {{ㅊ|로마제국에서는 키배에서 지면 유배를 갑니다}}
공의회는 아리우스의 새로운 주장을 물리치고, 예수와 성부가 동일본체(homoousia)라는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오던 가르침을 발전시켜서 삼위일체론으로 정립하였다. 그리고 아리우스는 결국 그리스도가 성부와 성령과 똑같은 천주성(天主性)을 지녔다는 니케아 신경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여서 이단자로 결정되어 파문되었고, 그는 아우구스타 트리베리움으로 유배를 갔다. {{ㅊ|키배에서 진 자의 말로}}


그리고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서는 요일과는 관계없이 유월절에 따라 유대력의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전통과 그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 이후의 만월 다음에 오는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되었다. 여담으로 동방교회에서는 20세기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동서방교회가 둘 다 부활절의 날짜를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에 따라 기념함에도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는 서방교회와 부활절이 차이가 난다. <ref>4년마다 한번씩 겹친다고 한다.</ref>
그리고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서는 요일과는 관계없이 유월절에 따라 유대력의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전통과 그 다음의 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기념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춘분 이후의 만월 다음에 오는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기로 결정되었다. 여담으로 동방교회에서는 20세기까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동서방교회가 둘 다 부활절의 날짜를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과에 따라 기념함에도 [[그레고리오력]]을 사용하는 서방교회와 부활절이 차이가 난다. <ref>4년마다 한번씩 겹친다고 한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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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사건이었는데, 이 공의회를 통하여 콘스탄티누스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쉽을 발휘하였고 전체 교회의 통합까지 도왔다는 찬사를 들었다. 황제는 공의회로 소집된 주교들을 몇 주일 더 비티니아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즉위 20주년 기념 연회에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앞서 언급한 카이자리아의 에우세비오는 이 공의회에서 정통파로 돌아왔으며 이 연회에도 참석했는데,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의미가 큰 사건이었는데, 이 공의회를 통하여 콘스탄티누스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쉽을 발휘하였고 전체 교회의 통합까지 도왔다는 찬사를 들었다. 황제는 공의회로 소집된 주교들을 몇 주일 더 비티니아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즉위 20주년 기념 연회에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앞서 언급한 카이자리아의 에우세비오는 이 공의회에서 정통파로 돌아왔으며 이 연회에도 참석했는데, 당시의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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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태세전환한 주교의 아부 같지만 넘어가자}}<ref>사실 이 항목에서 인용되고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생애(De Vita Constantini)' 자체가 에우세비오의 저작이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여기를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364&keyword=%BF%A1%BF%EC%BC%BC%BA%F1%BF%C0&gubun=01 참조하자.]</ref>
{{ㅊ|태세전환한 주교의 아부 같지만 넘어가자}}<ref>사실 이 항목에서 인용되고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생애(De Vita Constantini)' 자체가 에우세비오의 저작이다. 이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여기를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364&keyword=%BF%A1%BF%EC%BC%BC%BA%F1%BF%C0&gubun=01 참조하자.]</ref>
== [[니케아 신경]] ==
== [[니케아 신경]] ==
항목 참조.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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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 : 폭력을 참고 유혹을 물리쳤더라도 차후에 사악함에 빠졌다면 10년 간 파문 당한다. 그 기간동안 회개하는 생활은 철저한 감시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규범12)
* 폭력 : 폭력을 참고 유혹을 물리쳤더라도 차후에 사악함에 빠졌다면 10년 간 파문 당한다. 그 기간동안 회개하는 생활은 철저한 감시와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규범12)
* 성체 성사 : 임종에 있는 자는 영성체를 받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 기도와 준비를 한후에 영성체 한다. (규범13)
* 성체 성사 : 임종에 있는 자는 영성체를 받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면 기도와 준비를 한후에 영성체 한다. (규범13)
* 예비신자 : 예비신자가 타락하면 3년 동안 다시 예비신자 준비를 한후에 예비신자가 되야한다. (규범14)
* 예비신자 : 예비신자가 타락하면 3년동안 다시 예비신자 준비를 한후에 예비신자가 되야한다. (규범14)
* 구역 이탈 : 주교, 사제, 부제오는 도시를 옮겨다닐 수 없다. 계속 옮겨다니면 소속 도시로 돌려 보내져야한다. (규범15)
* 구역 이탈 : 주교, 사제, 부제오는 도시를 옮겨다닐 수 없다. 계속 옮겨다니면 소속 도시로 돌려 보내져야한다. (규범15)
* 소속 구역 : 사제 혹은 부제가 소속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교회에 받아들여졌다면, 본래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타 교구소속인 자에게 신품성사를 소속 주교의 허락없이 베풀어 졌다면 무효가 된다. (규범16)
* 소속 구역 : 사제 혹은 부제가 소속 교회를 이탈하여 다른 교회에 받아들여졌다면, 본래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타 교구소속인 자에게 신품성사를 소속 주교의 허락없이 베풀어 졌다면 무효가 된다. (규범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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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주일과 오순절에는 서서 기도한다. (규범20)
* 기도 : 주일과 오순절에는 서서 기도한다. (규범20)


== 관련 문서 ==
== 관련 항목 ==
*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
* [[가톨릭]]
* [[가톨릭]]
* [[정교회]]
* [[정교회]]
* [[세계공의회]]
* [[세계공의회]]
* [[트렌토 공의회]]
* [[제2차 세계 공의회]]/[[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제2차 세계 공의회]]/[[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 [[제3차 세계 공의회]]/[[에페소 공의회]]
* [[제3차 세계 공의회]]/[[에페소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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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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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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