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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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와 교회일치운동===
===정교회와 교회일치운동===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측에서는 로마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교회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정교회에 관심을 가졌다. [[1559년]]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여호사밧 2세가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 비텐베르크에 사절을 파견하고 [[1573년]] 튀빙언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예레미야 2세에게 서신을 보내 개신교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 등 상호간의 접촉이 이어졌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부 교구에서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 서품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으나 이는 교리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 존중의 성격이 더 강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측에서는 로마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교회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정교회에 관심을 가졌다. [[1559년]]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여호사밧 2세가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 비텐베르크에 사절을 파견하고 [[1573년]] 튀빙엔의 개신교 신학자들이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예레미야 2세에게 서신을 보내 개신교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하는 등 상호간의 접촉이 이어졌으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부 교구에서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 서품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으나 이는 교리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종교 존중의 성격이 더 강했다.


현대 정교회는 [[1964년]] 이후 비칼케돈파 교회<ref>제4차 세계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를 거부한 서아시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교회.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 안에서 나눠지지도 섞이지도 않으면서 서로 간의 속성을 공유한다’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의 대신 신성이 인성보다 상위로서 신성에만 의지가 있고 인성에는 의지가 없어 신성에 종속된다는 교리를 믿는다. 다만 성자 예수가 성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오로지 인성만을 지녔다는 아리우스주의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양성론(네스토리우스파)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두 이론은 비칼케돈파 교회에서도 이단으로 간주된다.</ref>와 교류를 시작하였고 천주교회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화의 장을 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령을 통해 정교회를 ‘갈라진 형제’로 일컬으며 정교회의 성사와 사제 서품을 인정하였고 [[1965년]] 양 교회는 [[1054년]]의 상호파문을 취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1979년]]부터 이후 [[2000년]]대까지 양대 보편교회는 지속적인 대화위원회를 열어 신학적 논의를 이어갔다. 두 교파의 수좌주교들도 서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공의회 진행 기간 중 [[1964년]] 로마 교황 [[바오로 6세]]가 팔레스티나를 방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 1세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가 공식적인 초청으로 이스탄불과 로마를 각각 방문하였으며 최근에는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에 동서분열 이후 처음으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가 참석하고, 2016년 2월 12일 쿠바 아바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회동하였으며, 2017년 9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지아를 방문하여 엘리야 2세 총대주교와 회동하는 등 일치 행보를 보였다.
현대 정교회는 [[1964년]] 이후 비칼케돈파 교회<ref>제4차 세계공의회인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의된 교리를 거부한 서아시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교회.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한 위격 안에서 나눠지지도 섞이지도 않으면서 서로 간의 속성을 공유한다’는 칼케돈 공의회의 결의 대신 신성이 인성보다 상위로서 신성에만 의지가 있고 인성에는 의지가 없어 신성에 종속된다는 교리를 믿는다. 다만 성자 예수가 성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오로지 인성만을 지녔다는 아리우스주의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양성론(네스토리우스파)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며 이 두 이론은 비칼케돈파 교회에서도 이단으로 간주된다.</ref>와 교류를 시작하였고 천주교회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대화의 장을 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령을 통해 정교회를 ‘갈라진 형제’로 일컬으며 정교회의 성사와 사제 서품을 인정하였고 [[1965년]] 양 교회는 [[1054년]]의 상호파문을 취소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또 [[1979년]]부터 이후 [[2000년]]대까지 양대 보편교회는 지속적인 대화위원회를 열어 신학적 논의를 이어갔다. 두 교파의 수좌주교들도 서로 교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공의회 진행 기간 중 [[1964년]] 로마 교황 [[바오로 6세]]가 팔레스티나를 방문,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 1세를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가 공식적인 초청으로 이스탄불과 로마를 각각 방문하였으며 최근에는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의 즉위 미사에 동서분열 이후 처음으로 콘스탄티누폴리스 총대주교가 참석하고, 2016년 2월 12일 쿠바 아바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모스크바 총대주교 키릴로스가 회동하였으며, 2017년 9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조지아를 방문하여 엘리야 2세 총대주교와 회동하는 등 일치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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