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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는 940m로 원래 총 연장은 2.5km에 달하는 꽤 큰 성이었다. 성문의 터는 후대에 도로 개설 등으로 훼손되기는 했지만 남문과 서문의 자리는 현재도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특히 서문이 있던 자리는 문을 달았던 기초석 2개와 길이 34m의 옹성과 수구 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보존 상태는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이다. |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는 940m로 원래 총 연장은 2.5km에 달하는 꽤 큰 성이었다. 성문의 터는 후대에 도로 개설 등으로 훼손되기는 했지만 남문과 서문의 자리는 현재도 도로로 사용되고 있어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특히 서문이 있던 자리는 문을 달았던 기초석 2개와 길이 34m의 옹성과 수구 등이 그대로 남아있는 등 보존 상태는 어느 정도 괜찮은 편이다. | ||
==이진진 관련 기록{{ㅈ|조선시대 수군진조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술총서 제24집-전라우수영편 이진진 중}}== | ==이진진 관련 기록{{ㅈ|조선시대 수군진조사-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술총서 제24집-전라우수영편 이진진 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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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진은 1588년 진을 세운 후 달량진 사변 후인 1597년 종9품의 권관진이 설치되었다가 1627년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1627년에는 만호진으로 승격되어 병선 10여 척, 정규군 200여 명이 주둔했다. | 이진진은 1588년 진을 세운 후 달량진 사변 후인 1597년 종9품의 권관진이 설치되었다가 1627년 만호진으로 승격되었다. 1627년에는 만호진으로 승격되어 병선 10여 척, 정규군 200여 명이 주둔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