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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규무, <기독교 민족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이승훈>, p.64.}} | - 한규무, <기독교 민족운동의 영원한 지도자 이승훈>, p.64.}} | ||
이승훈의 당부대로 많은 졸업생들이 일제의 탄압 가운데서도 민족을 구원하고자 독립운동에 귀중한 일꾼들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함석헌]], [[주기철]], [[한경직]], [[염상섭]], [[홍명희]], [[김소월]], [[백인제]]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이승훈은 신민회에서도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안창호]], [[이동녕]], [[이회영]], [[이시영 (1869년)|이시영]], [[전덕기]], [[ | 이승훈의 당부대로 많은 졸업생들이 일제의 탄압 가운데서도 민족을 구원하고자 독립운동에 귀중한 일꾼들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함석헌]], [[주기철]], [[한경직]], [[염상섭]], [[홍명희]], [[김소월]], [[백인제]]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이승훈은 신민회에서도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안창호]], [[이동녕]], [[이회영]], [[이시영 (1869년)|이시영]], [[전덕기]], [[이동휘]], [[안태국]], [[김구]], [[유동열]], [[양기탁]], [[최광옥]], 김동원 등과 함께 전국에 오산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을 많이 설립하여 민족운동가를 양성함으로써 국민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1908년 평양에 세워진 대성학교가 대표적인 사례다. | ||
또한 전국 각지에 각종 상공 실업기관을 만들어 민족경제를 이룩하여 경제적 자주 역량 향상을 도모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승훈 자신이 평양 마산동에 설립한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와 태극서관이었다. 자기회사는 근대적 주식공모를 통해 우리나라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주식회사로, 이승훈은 고려자기의 전통을 잇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상공을 진흥시키려 했다. 태극서관은 국민의 민족의식을 각성시킬 만한 각종 서적을 출판·보급하였다. | 또한 전국 각지에 각종 상공 실업기관을 만들어 민족경제를 이룩하여 경제적 자주 역량 향상을 도모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이승훈 자신이 평양 마산동에 설립한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와 태극서관이었다. 자기회사는 근대적 주식공모를 통해 우리나라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주식회사로, 이승훈은 고려자기의 전통을 잇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상공을 진흥시키려 했다. 태극서관은 국민의 민족의식을 각성시킬 만한 각종 서적을 출판·보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