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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조의 거병시부터 함께한 원로이자 개국공신. 몸집은 작았지만 용맹하여 조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 *: 조조의 거병시부터 함께한 원로이자 개국공신. 몸집은 작았지만 용맹하여 조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 ||
* 좌장군 익수정후 [[우금]] | * 좌장군 익수정후 [[우금]] | ||
*: 악진과 마찬가지로 조조 거병 초창기부터 함께한 원로이자 개국공신. 조조가 참전하는 전장에서 흔들림 없는 진중함과 엄정함으로 군기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장악우장서 | *: 악진과 마찬가지로 조조 거병 초창기부터 함께한 원로이자 개국공신. 조조가 참전하는 전장에서 흔들림 없는 진중함과 엄정함으로 군기를 유지하면서 크고 작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장악우장서 다섯명의 장수들 중에서 대장군감으로 여겨지던 촉망받던 장수였지만, 결정적으로 [[형주공방전]] 당시 관우에게 투항하면서 조조로부터 [[방덕]]보다 못하다는 탄식을 들을 정도로 명성에 금이 갔다. | ||
* 거기장군 막후 [[장합]] | * 거기장군 막후 [[장합]] | ||
*: [[원소]]의 진영에 속했던 장수였으나, [[관도대전]]을 거치면서 조조에게 귀순하였다. 장료가 오나라 방면 전선을 책임졌다면, 장합은 주로 서쪽 방면 전선을 책임졌다. 조조가 생존했을 시기에는 서량의 군벌들을 규합하여 처들어온 [[마초]]와 [[한수]]를 저지했고, 조조의 한중 정벌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유비와 한중을 놓고 [[한중공방전]]을 벌였을 때에도 주력을 이끌었다. 조조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촉전선을 담당하였고, [[제갈량]]의 북벌을 저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 *: [[원소]]의 진영에 속했던 장수였으나, [[관도대전]]을 거치면서 조조에게 귀순하였다. 장료가 오나라 방면 전선을 책임졌다면, 장합은 주로 서쪽 방면 전선을 책임졌다. 조조가 생존했을 시기에는 서량의 군벌들을 규합하여 처들어온 [[마초]]와 [[한수]]를 저지했고, 조조의 한중 정벌에도 참여했으며, 이후 유비와 한중을 놓고 [[한중공방전]]을 벌였을 때에도 주력을 이끌었다. 조조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촉전선을 담당하였고, [[제갈량]]의 북벌을 저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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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봉]]의 진영에 속했던 장수였으나, 후에 조조에게 귀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형주공방전]] 당시 번성에 고립된 [[조인]]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군을 이끌고 진출하여 [[관우]]와 대치하였고, 끝내 관우를 패퇴시키면서 조인을 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 *: [[양봉]]의 진영에 속했던 장수였으나, 후에 조조에게 귀순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형주공방전]] 당시 번성에 고립된 [[조인]]을 지원하기 위하여 일군을 이끌고 진출하여 [[관우]]와 대치하였고, 끝내 관우를 패퇴시키면서 조인을 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 ||
악진과 우금을 제외하면 나머지 | 악진과 우금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명은 모두 조조와 적대했던 세력하에 있다가 조조에게 귀순한 항장(降將) 출신이라는 이력이 있다. 당시 시대상으로 비춰볼 때 항장은 대부분 숙청당하거나 중앙 정부에서 커다란 활약을 펼치기 어려웠지만, 조조는 이들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중용하였고 모두 적재적소에서 조조의 기대에 부흥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는 공통점도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조조의 실용적인 면모를 높이 평가하는 대목에서 장료, 장합, 서황의 예를 드는 것은 흔한 [[클리셰]]로 자리잡았을 정도. | ||
==여담== | ==여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