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동인도 회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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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
== 설립 ==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16세기의 마지막 날인 [[1600년]] [[12월 31일]] 동양 무역의 절대독점권을 부여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보다 2년 빠른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독점회사의 설립만이 빠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네덜란드보다 뒤쳐져 있었다. 해당 항목에서도 나와 있듯, 네덜란드 상인들은 자국 동인도 회사 설립 이전에 자체적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항해를 하다 보다 효율적인 무역과 경쟁을 위해 통합 독점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잉글랜드 상인들은 후발주자로서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잉글랜드]]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16세기의 마지막 날인 {{날짜/출력|1600-12-31}} 동양 무역의 절대독점권을 부여한 것이 그 시초이다.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보다 2년 빠른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독점회사의 설립만이 빠를 뿐이지 실질적으로는 네덜란드보다 뒤쳐져 있었다. 해당 항목에서도 나와 있듯, 네덜란드 상인들은 자국 동인도 회사 설립 이전에 자체적으로 인도와 동남아시아 항해를 하다 보다 효율적인 무역과 경쟁을 위해 통합 독점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잉글랜드 상인들은 후발주자로서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당시 독점권은 동양 무역 전반에 대한 독점권인데, 여기서 동양의 개념은 [[아프리카]] 희망봉의 동쪽에서부터 [[아메리카]] 혼 곶의 서쪽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에 대한 무역 독점권'''이다. 괜히 회사가 훗날 [[중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중국까지 간 것은 아니고 초기의 목적은 당연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였다.
당시 독점권은 동양 무역 전반에 대한 독점권인데, 여기서 동양의 개념은 [[아프리카]] 희망봉의 동쪽에서부터 [[아메리카]] 혼 곶의 서쪽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도양과 태평양 전역에 대한 무역 독점권'''이다. 괜히 회사가 훗날 [[중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중국까지 간 것은 아니고 초기의 목적은 당연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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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 항로 개척 시대 ===
=== 항로 개척 시대 ===
아무래도 항로 개척 경험이 없다 보니 회사 성립 초기에는 말 그대로 항로를 개척하는 것에 주력을 하였다. [[1601년]] [[2월 13일]] 출발한 1차 선단은 총 4척으로 선원의 1/5가 [[괴혈병]] 등으로 죽는 참사를 겪으면서도 [[1602년]] [[6월 5일]] [[수마트라섬]] 최북단 [[아체]]에 도달했다. 이후 [[자바섬]] 반탐에 상관을 개설하고 각지에서 [[후추]]를 싹쓸이한 후 귀국했다. 그러나 후추를 만선으로 싣고 돌아오니 '''후추를 너무 많이 사와서 후추값이 대폭락'''하는 사태에 첫 항해다보니 경비 지출이 컸고, 귀국 과정에서 다시 1/5가 죽어 출발시 선원 478명 중 생존자가 278명밖에 남지 않는 등 이만저만 타격이 아니었다. 덕분에 출자자들에게는 현금 배당을 못하고 후추를 현물배당해야 했다.
아무래도 항로 개척 경험이 없다 보니 회사 성립 초기에는 말 그대로 항로를 개척하는 것에 주력을 하였다. {{날짜/출력|1601-2-13}} 출발한 1차 선단은 총 4척으로 선원의 1/5가 [[괴혈병]] 등으로 죽는 참사를 겪으면서도 [[1602년]] [[6월 5일]] [[수마트라섬]] 최북단 [[아체]]에 도달했다. 이후 [[자바섬]] 반탐에 상관을 개설하고 각지에서 [[후추]]를 싹쓸이한 후 귀국했다. 그러나 후추를 만선으로 싣고 돌아오니 '''후추를 너무 많이 사와서 후추값이 대폭락'''하는 사태에 첫 항해다보니 경비 지출이 컸고, 귀국 과정에서 다시 1/5가 죽어 출발시 선원 478명 중 생존자가 278명밖에 남지 않는 등 이만저만 타격이 아니었다. 덕분에 출자자들에게는 현금 배당을 못하고 후추를 현물배당해야 했다.


[[1604년]] [[3월 25일]] 출발한 2차 선단은 1차 선단에서 얻은 교훈으로, '''싸구려 후추 말고 비싼 [[정향]]과 [[육두구]]를 사야지!'''란 목적으로 [[암보이나]]로 향했다. 그러나 암보이나는 한 발 앞서 도착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이미 접수해서 거래를 거부하여 상관 개설에 실패하고 대신 몰루카 제도 각지를 전전하며 정향과 육두구를 모아서 귀국했다. 수익 자체는 1차 선단에 비하면 높았지만 상관 개설에 실패하여 회사의 미래에 먹구름이 낀 상태였다.
{{날짜/출력|1604-3-25}} 출발한 2차 선단은 1차 선단에서 얻은 교훈으로, '''싸구려 후추 말고 비싼 [[정향]]과 [[육두구]]를 사야지!'''란 목적으로 [[암보이나]]로 향했다. 그러나 암보이나는 한 발 앞서 도착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이미 접수해서 거래를 거부하여 상관 개설에 실패하고 대신 몰루카 제도 각지를 전전하며 정향과 육두구를 모아서 귀국했다. 수익 자체는 1차 선단에 비하면 높았지만 상관 개설에 실패하여 회사의 미래에 먹구름이 낀 상태였다.


[[1607년#4월|1607년 4월]] 출발한 3차 선단은 동남아와의 향신료 무역을 일시 단념하고 인도와의 무역을 시도하여 [[1608년]]에 소코트라 섬과 인도에 각각 도달하고, [[무굴 제국]]의 술탄을 알현하였지만 인도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포르투갈 상인들의 방해로 상관 개설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1607년#4월|1607년 4월]] 출발한 3차 선단은 동남아와의 향신료 무역을 일시 단념하고 인도와의 무역을 시도하여 [[1608년]]에 소코트라 섬과 인도에 각각 도달하고, [[무굴 제국]]의 술탄을 알현하였지만 인도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포르투갈 상인들의 방해로 상관 개설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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