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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 | == 한국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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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신]](현 KT)과 10개 지역 무선호출 사업자들이 연합해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각자 기지국을 구축하고 상호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초기에는 지역 사업자의 시티폰이 지역 바깥에서 터지지 않아 논란이 되었으나,<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50600289108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7-05-06&officeId=00028&pageNo=8&printNo=2871&publishType=00010 시티폰'서비스 마찰'가입자 골탕], 한겨레, 1997.05.06.</ref> 사업자간 로밍을 시작하면서 불편이 종식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70300099112002&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7-07-03&officeId=00009&pageNo=12&printNo=9796&publishType=00010 시티폰 로밍서비스], 한국경제, 1997.07.03.</ref> | |||
기네스에 오를 정도로<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020028910801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8-02&officeId=00028&pageNo=8&printNo=2947&publishType=00010 서울이통'가입자확보'기네스 기록], 한겨레, 1997.08.02.</ref> 시티폰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CT-2는 많은 사용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표준으로 폭발적인 사용자 증가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시티폰 가입자들은 항상 불통인 전화에 불만이 팽배했고, 대리점은 안 터지는 전화를 팔 수 없다며 반발하기도 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1773736_19498.html 통화 안되고 기본료만 내야하는 시티폰 말썽], MBC, 1998.11.10.</ref> | 기네스에 오를 정도로<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80200289108014&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8-02&officeId=00028&pageNo=8&printNo=2947&publishType=00010 서울이통'가입자확보'기네스 기록], 한겨레, 1997.08.02.</ref> 시티폰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CT-2는 많은 사용자를 받아들일 수 없는 표준으로 폭발적인 사용자 증가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시티폰 가입자들은 항상 불통인 전화에 불만이 팽배했고, 대리점은 안 터지는 전화를 팔 수 없다며 반발하기도 했다.<ref>[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1773736_19498.html 통화 안되고 기본료만 내야하는 시티폰 말썽], MBC, 1998.11.10.</r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