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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사적]] | ||
| | {{문화재 | ||
| | |그림 = 화성행궁.JPG | ||
| | |종목 = [[사적]] 제478호 | ||
| | |명칭 = 화성행궁 | ||
| | |한자 = 華城行宮 |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궁궐 | ||
| | |수량= | ||
|면적 = 37,268㎡ | |||
|날짜 = [[2007년]] [[6월 8일]] | |||
|소재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6-2번지 | |||
|시대 = [[조선시대]] | |||
|소유 = | |||
|관리 = [[수원시]] | |||
}} | }} | ||
==개요== | ==개요== | ||
[[파일:화성행궁 광장.jpg|섬네일|행궁 전면에는 약 17,000㎡의 광장이 있다.]] | [[파일:화성행궁 광장.jpg|섬네일|행궁 전면에는 약 17,000㎡의 광장이 있다.]] | ||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수원 화성|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 조선시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인 현릉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당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에 [[수원 화성|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 ||
==부속건물== | ==부속건물== | ||
*신풍루(新豊樓):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참고로 신풍(新豊)이라는 말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의 수원사랑을 의미하는 문으로 행궁의 외삼문에 해당한다. | *신풍루(新豊樓) :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참고로 신풍(新豊)이라는 말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의 수원사랑을 의미하는 문으로 행궁의 외삼문에 해당한다. | ||
*좌익문(左翊門): 중앙문 앞에 있는 문으로 여기서 좌익은 옆에서 도와준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의 역할을 하는 문이다. | *좌익문(左翊門) : {{ㅊ|좌빨이 사용하는 문}} 중앙문 앞에 있는 문으로 여기서 좌익은 옆에서 도와준다는 뜻으로 내삼문을 바로 앞에서 도(道)와 행궁을 지키는 중삼문의 역할을 하는 문이다. | ||
*중양문(中陽門): 궁궐 건축시 3개의 문을 설치하는 3문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지키는 내삼문의 역할을 하는 문이다. | *중양문(中陽門) : 궁궐 건축시 3개의 문을 설치하는 3문설치 형식에 따라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을 바로 앞에서 지키는 내삼문의 역할을 하는 문이다. | ||
*봉수당(奉壽堂): 화성행궁의 정전으로 이 곳에서 정조의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리기도 하였었다. | *봉수당(奉壽堂) : 화성행궁의 정전으로 이 곳에서 정조의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리기도 하였었다. | ||
*경룡관(景龍館):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ㅈ|누각이 달린 문}}으로 여기서 경룡은 제왕을 상징한다. | *경룡관(景龍館) :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ㅈ|누각이 달린 문}}으로 여기서 경룡은 제왕을 상징한다. | ||
*장락당(長樂堂):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정조가 직접 편액을 써서 건 건물이기도 하다. | *장락당(長樂堂) :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정조가 직접 편액을 써서 건 건물이기도 하다. | ||
*복내당(福內堂): 화성 행궁의 내당으로 왕이 있을 때는 내당으로 사용하였으며,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일종의 관사 건물이다. | *복내당(福內堂) : 화성 행궁의 내당으로 왕이 있을 때는 내당으로 사용하였으며,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던 일종의 관사 건물이다. | ||
*집사청(執事廳): 말 그대로 궁궐의 각종 비품을 관리하고 잡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 *집사청(執事廳) : 말 그대로 궁궐의 각종 비품을 관리하고 잡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 ||
*낙남헌(落南軒):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간 중 열린 과거시험과 양로연 등 여러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 *낙남헌(落南軒) :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기간 중 열린 과거시험과 양로연 등 여러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 ||
*득중정(得中亭): 정조가 행궁 안에서 활을 쏜 곳으로 모두 명중시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득중정(得中亭) : 정조가 행궁 안에서 활을 쏜 곳으로 모두 명중시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
*남군영/북군영(南軍營/北軍營):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위치한 건물로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기마병에 해당하는 친군위가 좌/우열로 각각 100명씩 들어가 입직하여 숙위하던 건물이다. {{ㅊ|그냥 배럭이네}} | *남군영/북군영(南軍營/北軍營) : 정문인 신풍루 좌우에 위치한 건물로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기마병에 해당하는 친군위가 좌/우열로 각각 100명씩 들어가 입직하여 숙위하던 건물이다. {{ㅊ|그냥 배럭이네}} | ||
*유여택(維與宅): 정조가 행차중 머물면서 신하들을 접견하던 접견실의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 *유여택(維與宅) : 정조가 행차중 머물면서 신하들을 접견하던 접견실의 역할을 하던 건물이다. | ||
*외정리소(外整理所): 임금이 행차할 때 행궁에서 치러지는 행사 준비를 담당하던 곳이다. | *외정리소(外整理所) : 임금이 행차할 때 행궁에서 치러지는 행사 준비를 담당하던 곳이다. | ||
*서리청(書吏廳): 문서의 기록 및 수발을 담당하던 관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단, 1795년 있었던 원행시에는 수라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었다. | *서리청(書吏廳) : 문서의 기록 및 수발을 담당하던 관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단, 1795년 있었던 원행시에는 수라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었다. | ||
*노래당(老來堂):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 노후생활을 하고자 지은 건물이다.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한 건물 | *노래당(老來堂) : 정조가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 노후생활을 하고자 지은 건물이다. 원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한 건물 | ||
*미로한정(未老閒亭): 행궁의 후원에 있는 정자로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원래 정조는 갑자년(1804년)에 세자에게 양위를 하고 화성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으며, 이 정자도 그러한 계획으로 세워진 정자였다. | *미로한정(未老閒亭) : 행궁의 후원에 있는 정자로 장래 늙어서 한가하게 쉴 정자라는 뜻이다. 원래 정조는 갑자년(1804년)에 세자에게 양위를 하고 화성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이었으며, 이 정자도 그러한 계획으로 세워진 정자였다. | ||
==관람방법== | ==관람방법== | ||
===스탬프 투어=== | ===스탬프 투어=== | ||
==기타== | ==기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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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주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