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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전황은 볼 것도 없이 그야말로 이스라엘 쪽의 압승. 솔직히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 동맹을 이집트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세계적인 여론은 반발했고... | 초기 전황은 볼 것도 없이 그야말로 이스라엘 쪽의 압승. 솔직히 이스라엘, 프랑스, 영국 동맹을 이집트가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세계적인 여론은 반발했고... | ||
[[1956년]] [[10월 30일]]에는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는 '''미국이 주체로''' 전쟁을 멈추라는 건의를 하였다, 이는 프랑스와 영국이 거절하였다. 그리고 [[11월 1일]]의 UN 총회에선 '''64:5'''로 즉각 전쟁을 멈추라는 건의가 통과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전쟁을 감행했다. 하지만 소련은 자기 자신들이 비록 [[ | [[1956년]] [[10월 30일]]에는 UN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는 '''미국이 주체로''' 전쟁을 멈추라는 건의를 하였다, 이는 프랑스와 영국이 거절하였다. 그리고 [[11월 1일]]의 UN 총회에선 '''64:5'''로 즉각 전쟁을 멈추라는 건의가 통과 되었다. 프랑스와 영국은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전쟁을 감행했다. 하지만 소련은 자기 자신들이 비록 [[헝가리]]에서의 폭동을 진압하느라 바쁘지만,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처할 것임을 명시하였고, 미국의 아이젠하워는 영국 에덴 총리에게 엄청난 압박, 아니 거의 협박을 걸었다. 그 내용을 좀 들으면, 영국 은행에서의 미국 자본을 '''모조리''' 빼버리고, 영국에게 팔던 오일을 '''전부 다''' 끊어버리고 심지어 '''IMF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조차 막겠다고'''했다... 상황이 이 정도가 되니 영국과 프랑스 결국 [[11월 6일]] 후퇴해버린다. | ||
이후에도 벤 구리온 수상은 어떻게든 가자만큼은 확보하겠다고 억지를 부렸으나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에 대하여 [[그딴 거 없다]]를 시전 하였고, 결국 [[1957년#3월|1957년 3월]]에는 모든 이스라엘 군이 떨어져 나간다. | 이후에도 벤 구리온 수상은 어떻게든 가자만큼은 확보하겠다고 억지를 부렸으나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이에 대하여 [[그딴 거 없다]]를 시전 하였고, 결국 [[1957년#3월|1957년 3월]]에는 모든 이스라엘 군이 떨어져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