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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로 태아 성 감별이 쉬워지고 산아제한정책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출산율이 급속히 떨어지자 [[남아 선호 사상]]과 결합하여 [[딸]]을 낙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7년]] 정부는 태아 성감별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낙태]]는 처벌을 사실상 포기하고 태아 성감별만 처벌을 하겠다는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며 [[1990년대]]초에는 | 기술의 발달로 태아 성 감별이 쉬워지고 산아제한정책에 따른 인식의 변화로 출산율이 급속히 떨어지자 [[남아 선호 사상]]과 결합하여 [[딸]]을 낙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7년]] 정부는 태아 성감별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낙태]]는 처벌을 사실상 포기하고 태아 성감별만 처벌을 하겠다는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며 [[1990년대]]초에는 출생성비가 몇 년간 115에 이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특히 세 번째 자녀의 성비는 [[2000년]]에는 무려 144를 기록하기도 했다.<ref>[https://gsis.kwdi.re.kr/gsis/kr/geView.html;jsessionid=P5Oa5IAt5TWGDPNIrZ09maDudUSvNCT5QibO3xXln14vbcDf6aUwTQGUAEqr6oQd?ge_seq=2&geFlag=01&pageParam=d-145252-p&board_class=BOARD01 셋째 아 이상 출생성비], </ref> 참고로 자연성비는 103~107이다. | ||
이 덕분에 [[1995년]]부터 [[초등학교]]에서는 여자 짝꿍이 없다고 난리가 났었고, 이는 [[2010년]]대의 결혼적령기(1980년대 출생~2000년대 출생)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다. | 이 덕분에 [[1995년]]부터 [[초등학교]]에서는 여자 짝꿍이 없다고 난리가 났었고, 이는 [[2010년]]대의 결혼적령기(1980년대 출생~2000년대 출생)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