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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은 1930년대 당시 [[묵호항]]을 통한 강원도 삼척탄전 일대의 [[무연탄]]을 취급하는 역할로 시작하였다. 또한 [[삼척선]]과 [[북평선]]을 통한 양회수송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 당시는 지금처럼 [[강원도]] [[영동지방]]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이 영 좋지 않았고, 영동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화물이 넘어가는 가장 효율적인 운송경로는 [[묵호항]]을 통해 [[포항]]까지 해상운송을 한 뒤,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가는 철도로 환적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철도는 어찌어찌 영서지방과 연결이 되긴 했지만, 문제는 [[통리재]]를 넘어가는 황지본선 구간이 1963년이 되어서야 개통이 되었다는 것. 즉, 그 이전에는 통리재를 그 악명높은 [[인클라인]]으로 넘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인클라인으로 여객은 어찌어찌 수송하겠는데 문제는 이 인클라인의 용량 자체가 시멘트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택도없는 용량인데다 간혹 고장이 나 버리면 수도권 일대의 시멘트 가격이 폭등하는 문제점을 늘 안고 있었다. 거기에 태백선 철도 전구간의 개통이 1975년이니까 그 이전에는 철로를 통해 영동지방에서 화물운송을 하려면 영주까지 빙빙 돌아가야 하는데 이 당시 철도가 효율이 좋을리가.... 결국 제대로 된 철도 운송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 묵호항으로 몰려드는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아예 [[묵호항선]]까지 별도로 개통하여 당시 [[영동선]]의 부족했던 선로용량까지 증대시키는 작업까지 하였던 것. | 이 역은 1930년대 당시 [[묵호항]]을 통한 강원도 삼척탄전 일대의 [[무연탄]]을 취급하는 역할로 시작하였다. 또한 [[삼척선]]과 [[북평선]]을 통한 양회수송이 주를 이루었으며, 이 당시는 지금처럼 [[강원도]] [[영동지방]]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이 영 좋지 않았고, 영동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화물이 넘어가는 가장 효율적인 운송경로는 [[묵호항]]을 통해 [[포항]]까지 해상운송을 한 뒤, 포항에서 다시 서울로 가는 철도로 환적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철도는 어찌어찌 영서지방과 연결이 되긴 했지만, 문제는 [[통리재]]를 넘어가는 황지본선 구간이 1963년이 되어서야 개통이 되었다는 것. 즉, 그 이전에는 통리재를 그 악명높은 [[인클라인]]으로 넘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인클라인으로 여객은 어찌어찌 수송하겠는데 문제는 이 인클라인의 용량 자체가 시멘트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택도없는 용량인데다 간혹 고장이 나 버리면 수도권 일대의 시멘트 가격이 폭등하는 문제점을 늘 안고 있었다. 거기에 태백선 철도 전구간의 개통이 1975년이니까 그 이전에는 철로를 통해 영동지방에서 화물운송을 하려면 영주까지 빙빙 돌아가야 하는데 이 당시 철도가 효율이 좋을리가.... 결국 제대로 된 철도 운송을 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 묵호항으로 몰려드는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아예 [[묵호항선]]까지 별도로 개통하여 당시 [[영동선]]의 부족했던 선로용량까지 증대시키는 작업까지 하였던 것. | ||
== 경유 노선 == | == 경유 노선 == | ||
{{경유 노선/열기}} | {{경유 노선/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