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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연도인 [[2001년]]에 신인임에도 불구, 65경기에 출장, 나름대로 준수한 타율(0.287)을 기록하여 높은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시즌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하며 2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 해태(이후 기아)의 외야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2005시즌이었는데, [[LG 트윈스]]에서 이적해온 [[이용규]]가 포텐을 터트리면서 단숨에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 2005~2008시즌동안 이용규는 기아 타선의 핵이자 핵심 외야수였고, 이용규에 비해 타격도, 수비도 밀리는 김경언은 2005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향곡선을 타게 된다. | 데뷔연도인 [[2001년]]에 신인임에도 불구, 65경기에 출장, 나름대로 준수한 타율(0.287)을 기록하여 높은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시즌 연속 100경기 이상 출장하며 2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 해태(이후 기아)의 외야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문제는 2005시즌이었는데, [[LG 트윈스]]에서 이적해온 [[이용규]]가 포텐을 터트리면서 단숨에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해버린 것. 2005~2008시즌동안 이용규는 기아 타선의 핵이자 핵심 외야수였고, 이용규에 비해 타격도, 수비도 밀리는 김경언은 2005시즌을 기점으로 급격히 하향곡선을 타게 된다. | ||
당장 2005시즌 78경기 0.271의 성적을 기록한 김경언은 2006시즌에는 73경기 0.180으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안그래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판국에 성적도 떨어지면서 구단은 그를 잉여자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2007시즌에는 '''아예 1군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기아 외야진은 이용구가 [[중견수]]를 보고 있었고, [[1루수]]였던 '''10년 3할 타자''' [[장성호]]가 [[최희섭]] 입단 후 1루수 자리를 양보하며 [[좌익수]]로 전향한 상태였다. [[우익수]]가 남아 있지 않냐고? 이용규에게 중견수 자리를 양보하며 우익수를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이종범]]'''이다. 도저히 김경언이 주전으로 뛸 자리가 없었던 것.<ref>물론 이종범의 2007시즌 성적은 0.174로 폭망해서 은퇴를 강요받을 수준이긴 했지만 기아에서 이종범이란 선수는 단순히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종범은 귀신같이 [[2008년]]에 부활해버린다.</ref><ref>공교롭게도, 이때 기아의 주전 외야수 3인방은 김경언과 한화에서 조우한다. 장성호는 | 당장 2005시즌 78경기 0.271의 성적을 기록한 김경언은 2006시즌에는 73경기 0.180으로 매우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안그래도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판국에 성적도 떨어지면서 구단은 그를 잉여자원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2007시즌에는 '''아예 1군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기아 외야진은 이용구가 [[중견수]]를 보고 있었고, [[1루수]]였던 '''10년 3할 타자''' [[장성호]]가 [[최희섭]] 입단 후 1루수 자리를 양보하며 [[좌익수]]로 전향한 상태였다. [[우익수]]가 남아 있지 않냐고? 이용규에게 중견수 자리를 양보하며 우익수를 보게 된 사람이 바로 '''[[이종범]]'''이다. 도저히 김경언이 주전으로 뛸 자리가 없었던 것.<ref>물론 이종범의 2007시즌 성적은 0.174로 폭망해서 은퇴를 강요받을 수준이긴 했지만 기아에서 이종범이란 선수는 단순히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종범은 귀신같이 [[2008년]]에 부활해버린다.</ref><ref>공교롭게도, 이때 기아의 주전 외야수 3인방은 김경언과 한화에서 조우한다. 장성호는 애시당초 김경언과 함께 이적했고, 이종범은 은퇴 후 코치로서 2013~14시즌 한화에 있었으며, 이용규는 FA로 한화에 이적하여 2014시즌부터 팀 동료가 된다.</ref> | ||
그래도 백업 요원으로 기용할 법도 하지만 김경언은 감독들, 특히 [[조범현]]에게 기용받지 못했다. 백업이나 대주자정도로 기용할 수 있음에도 김경언은 [[2008년]] 8경기, [[2009년]] 2경기 출장에 그치며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2군 선수로 전락했다. 더군다나 2009시즌에 [[신종길]]이 트레이드로 영입되면서 백업 요원으로서의 가치마저 사라져버렸다. | 그래도 백업 요원으로 기용할 법도 하지만 김경언은 감독들, 특히 [[조범현]]에게 기용받지 못했다. 백업이나 대주자정도로 기용할 수 있음에도 김경언은 [[2008년]] 8경기, [[2009년]] 2경기 출장에 그치며 자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2군 선수로 전락했다. 더군다나 2009시즌에 [[신종길]]이 트레이드로 영입되면서 백업 요원으로서의 가치마저 사라져버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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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용규]]와 함께 팀 타선을 책임지며 팀 내 타율 2위, 리그 타율 3위(!!)에 랭크되었으나 [[5월 26일]] 기아와의 홈 경기 첫 타석에서 [[임준혁]]의 공에 다리를 맞고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del>그리고 애꿎은 [[추승우]]는 방출되는 [[나비효과]]...</del><ref>김경언이 부상으로 2군으로 빠지면서 한화는 내야 유망주 [[신성현]]을 1군에 등록했는데, 신성현이 육성선수(구 신고선수) 신분이어서 전체 엔트리 슬롯이 초과되자 외야자원 중 추승우를 정리한 것이다.</ref> | 이후 [[이용규]]와 함께 팀 타선을 책임지며 팀 내 타율 2위, 리그 타율 3위(!!)에 랭크되었으나 [[5월 26일]] 기아와의 홈 경기 첫 타석에서 [[임준혁]]의 공에 다리를 맞고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del>그리고 애꿎은 [[추승우]]는 방출되는 [[나비효과]]...</del><ref>김경언이 부상으로 2군으로 빠지면서 한화는 내야 유망주 [[신성현]]을 1군에 등록했는데, 신성현이 육성선수(구 신고선수) 신분이어서 전체 엔트리 슬롯이 초과되자 외야자원 중 추승우를 정리한 것이다.</ref> | ||
[[분류:1982년 출생]][[분류:야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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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부산광역시 출신]] | [[분류:부산광역시 출신]] | ||
[[분류:한화 이글스]] | [[분류:한화 이글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