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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
고구마는 메꽃과의 쌍떡잎 뿌리 채소로, 온대에서는 일년생이지만 열대에서는 숙근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로 전분이 많고 단 맛이 나는 혹줄기를 가진 재배용 작물이다. 꽃은 나팔꽃과 유사한 꽃이 핀다. 씨앗으로도 번식하나 영양 뿌리를 얻기 위해 경작할 때에는 씨앗으로 경작하지 않는다. | 고구마는 메꽃과의 쌍떡잎 뿌리 채소로, 온대에서는 일년생이지만 열대에서는 숙근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주로 전분이 많고 단 맛이 나는 혹줄기를 가진 재배용 작물이다. 꽃은 나팔꽃과 유사한 꽃이 핀다. 씨앗으로도 번식하나 영양 뿌리를 얻기 위해 경작할 때에는 씨앗으로 경작하지 않는다. | ||
== 형태 == | == 형태 == | ||
=== 뿌리 === | === 뿌리 === | ||
고구마에서 먹는 부분에 해당되는 게 뿌리 부분인데, 가는뿌리, 굳은뿌리, 덩이뿌리로 구분되어 있다. 고구마는 뿌리에 영양분이 축적되어 둥그렇게 크기가 커지며 이런 종류의 뿌리를 덩이뿌리라고 부른다. 습한 땅이나 질소질이 많은 토양에서는 가는뿌리와 굳은뿌리가 많고 칼리질 비료가 많은 토양에서는 덩이뿌리가 많다. | 고구마에서 먹는 부분에 해당되는 게 뿌리 부분인데, 가는뿌리, 굳은뿌리, 덩이뿌리로 구분되어 있다. 고구마는 뿌리에 영양분이 축적되어 둥그렇게 크기가 커지며 이런 종류의 뿌리를 덩이뿌리라고 부른다. 습한 땅이나 질소질이 많은 토양에서는 가는뿌리와 굳은뿌리가 많고 칼리질 비료가 많은 토양에서는 덩이뿌리가 많다. | ||
생육 초기에는 뿌리가 땅 밑의 비교적 얕은 부분에서 옆으로 퍼지지만 점차 깊이 자라 땅 속 1m 이상의 깊이까지 도달한다. | 생육 초기에는 뿌리가 땅 밑의 비교적 얕은 부분에서 옆으로 퍼지지만 점차 깊이 자라 땅 속 1m 이상의 깊이까지 도달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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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 | == 기원 == | ||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멕시코 유카탄반도 지역과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강 하구 지역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멕시코 유카탄반도 지역과 남아메리카 베네수엘라의 오리노코 강 하구 지역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2000년 이상 인간에 의해 이용되었으며 현재 재배되고 있는 재배종이 해당 지역에서 야생되고 있다.<ref>Ibid., p.23</ref> | ||
남아메리카에서는 [[페루]]의 고구마 잔존물이 기원전 8,000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 | 남아메리카에서는 [[페루]]의 고구마 잔존물이 기원전 8,000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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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파 == | == 전파 == | ||
=== 남태평양 === | === 남태평양 === | ||
남태평양에서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이 진출하기 이전부터 고구마를 식량으로 재배해왔다고 한다. 어떻게 전파 되었는지 | 남태평양에서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이 진출하기 이전부터 고구마를 식량으로 재배해왔다고 한다. 어떻게 전파 되었는지 여러가지 설들이 있지만 페루 항해인들이 뗏목을 타고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로 전파시킨 것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 ||
=== 유럽 === | === 유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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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필리핀 마닐라와 몰루카 제도로 전파되었고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말레이 군도에 전달되었으며 필리핀 루손섬으로부터 중국 푸젠으로 전파되었다. |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필리핀 마닐라와 몰루카 제도로 전파되었고 포르투갈 사람에 의해 말레이 군도에 전달되었으며 필리핀 루손섬으로부터 중국 푸젠으로 전파되었다. | ||
1605년경에는 중국 푸젠에서 류큐와 대만으로 전파, 류큐에서부터 일본 본토로 전파되었으며 1723년에 대마도에 고구마가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ref>Ibid., pp.23-24</ref> | |||
=== 한국 === | === 한국 === | ||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최초로 고구마를 본 사람은 |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최초로 고구마를 본 사람은 1719년 통신사로서 [[일본]]에 파견된 신유한이다. 그가 길가에 위치한 주점에서 고구마를 구워서 파는 것을 본 것이 고구마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ref>노성환, 「조선통신사와 고구마의 전래」, 『동북아문화연구』, 제23집, 동북아시아문화학회, 2010, p.539</ref> | ||
본격적인 고구마 전래는 이광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는 고구마의 이점을 알고 조선에 도입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두 차례가량 연행사를 수행하는 역관을 통해 직접 종자를 얻으려했지만 실패했고 | 본격적인 고구마 전래는 이광려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는 고구마의 이점을 알고 조선에 도입되기를 간절히 원하여 두 차례가량 연행사를 수행하는 역관을 통해 직접 종자를 얻으려했지만 실패했고 1762년, 연행사로 북경에 가는 서지수에게 부탁하여 고구마 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지만, 가지고 오는동안 관리를 잘못하여 종자가 죽어버리고 만다.<ref>Ibid., pp.539-541</ref> 이후, 이광려는 1764년 강계헌에게 부탁하여 일본을 거쳐 온 고구마 종자를 구한 다음 재배에 성공하였지만 보관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다음해에 종자로 쓰지 못하게 되었다.<ref>염정섭, 「조선 후기 고구마의 도입과 재배법의 정리과정」, 『한국사연구 134』, 한국사연구회, 2006, pp.116-117</ref> | ||
그래서 한국의 고구마 전래는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 그래서 한국의 고구마 전래는 일본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1763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趙曮)이 대마도(對馬島)에서 고구마 종자를 구한 다음, 부산진에 보내어 당시 부산진 참사 이응혁에게 보관하게 한 다음 1764년 봄, 절영도 조도 맞은 편 야산에 재배하게 했다.<ref>노성환, op.cit., p.542</ref> | ||
한편, | 한편, 1764년 동래부사로 부임한 강필리는 1765년 고구마 종자를 구하고 또한 종식방(種植方)<ref>種植 : 종식, 씨를 뿌리고 식물을 심는 일 - 네이버 한자사전</ref>을 구하여 『감저보(甘藷譜)』라는 책자를 발간하였다. 강필리는 고구마 종자를 구하여 탐라(耽羅, 현 제주도)를 비롯한 인근 군현에까지 재배 방법과 함께 나누어 주어 남해안 연안 지역에 고구마 재배를 보급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고, 비변사에까지 보냈다. 1766년 동래부사에서 물러나서는 고구마 종자를 확보하여 한성(漢城, 현 서울)에 실어 보내고 동래에서도 종자를 남겨 심게 하였다.<ref>염정섭, op.cit.,pp.117-118</ref> 1813년 김장순과 선종한, 이 두사람이 고구마 보급에 노력을 쏟아 감저신보란 책을 썼으며 1834년 서유구가 전라관찰사로 있을 때 종저보를 지어 호남지방에 고구마 심기를 권장하였다.<ref>농촌진흥청, op.cit.,p.24</ref> | ||
== 어원 == | == 어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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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성 == | == 특성 == | ||
고구마는 재배적지가 광범위하여 척박한 토양에서도 상당한 양의 수확을 얻을 수 있으며 재해에 비교적 강하다. 또한, 생육기간의 조절이 쉬우며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많은 작물이다. 하지만, 기계화가 어려워 생력화가 어렵고<ref>Ibid., pp.41-42</ref> 수분함량이 많아 장기간 저장이 어렵다는 결점이 존재한다.<ref>Ibid., p.45</ref> | |||
== 재배 == | == 재배 == | ||
=== 재배 환경 === | === 재배 환경 === | ||
고구마의 생육온도 범위는 15~38°C인데 30~35°C에서 가장 왕성하게 자란다. 덩이뿌리 부분은 지온이 20~30°C 정도가 적절하다. 뿌리가 내리는 데에는 15°C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나 30°C 이상에서는 뿌리의 수가 줄어들고 | 고구마의 생육온도 범위는 15~38°C인데 30~35°C에서 가장 왕성하게 자란다. 덩이뿌리 부분은 지온이 20~30°C 정도가 적절하다. 뿌리가 내리는 데에는 15°C 이상의 온도가 필요하나 30°C 이상에서는 뿌리의 수가 줄어들고 발근일 수도 급격히 길어진다.<ref>농촌진흥청, 『고구마 재배』, 2006, p.100</ref> | ||
<br | <br>일조의 경우, 일조가 부족하면 지상부에서 생산된 물질이 덩이뿌리로 옮겨가지 않고 지상부에 이용되어 줄기와 잎은 많아지나 고구마의 수확이 감소된다.<ref>Ibid., p.101</ref> | ||
<br | <br>고구마는 건조에 비교적 강하지만 생육기간 중 강우량이 많으면 줄기가 웃자라고 덩이뿌리의 크기가 감소하여 고구마의 수확량이 감소하고 수확기 때 강우량이 많으면 고구마의 품질이 저하되고 저장력이 약해진다.<ref>Ibid., p.102</ref> | ||
토양의 경우, 수분이 너무 많으면 고구마 뿌리의 생육이 재해되고, 수분이 너무 적으면 지상부 및 덩이뿌리의 무게가 같이 감소되며. 토양의 통기가 잘 될수록 고구마 뿌리의 수량이 증가한다. 또한, 토양의 산도에 대한 적응성이 큰 편이지만 알칼리성 토양보다는 산성토양에서의 수량이 많은 편이다.<ref>Ibid., pp.102-105</ref> | 토양의 경우, 수분이 너무 많으면 고구마 뿌리의 생육이 재해되고, 수분이 너무 적으면 지상부 및 덩이뿌리의 무게가 같이 감소되며. 토양의 통기가 잘 될수록 고구마 뿌리의 수량이 증가한다. 또한, 토양의 산도에 대한 적응성이 큰 편이지만 알칼리성 토양보다는 산성토양에서의 수량이 많은 편이다.<ref>Ibid., pp.102-105</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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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심기 === | === 아주심기 === | ||
== 수확 == | |||
=== 수확시기 === | |||
고구마는 9℃ 이하의 낮은 온도를 접하면 저장성이나 싹 트는 힘이 낮아지므로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수확을 마무리 지어야한다. 보통기 재배를 기준으로 | 고구마는 9℃ 이하의 낮은 온도를 접하면 저장성이나 싹 트는 힘이 낮아지므로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수확을 마무리 지어야한다. 보통기 재배를 기준으로 9월 하순부터 10월 상·중순까지 수확을 해야 한다. | ||
사료용으로 이용할 경우, 줄기와 잎도 이용하기 때문에 늦게 거두면 낙엽이 되어 이용가치가 낮아지므로 다소 이르게 거둬들인다. | 사료용으로 이용할 경우, 줄기와 잎도 이용하기 때문에 늦게 거두면 낙엽이 되어 이용가치가 낮아지므로 다소 이르게 거둬들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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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고구마로 저장할 경우, 일찍 캐면 높은 온도에서 저장이 시작되어 저장력이 낮아지고 너무 늦으면 서리의 피해를 입어 저장성이 낮아지므로 9℃ 이하로 낮아지기 전에 수확하여 저장한다. | 씨고구마로 저장할 경우, 일찍 캐면 높은 온도에서 저장이 시작되어 저장력이 낮아지고 너무 늦으면 서리의 피해를 입어 저장성이 낮아지므로 9℃ 이하로 낮아지기 전에 수확하여 저장한다. | ||
비가 온 뒤에 바로 수확하거나 토양이 습할 때는 고구마의 수분함량에 높아서 저장고에 | 비가 온 뒤에 바로 수확하거나 토양이 습할 때는 고구마의 수분함량에 높아서 저장고에 넣었을때 저장고 내의 습도를 상승시켜 호흡작용을 방해 받아 유해물질이 생기고 생활력이 약해저 썩기 쉬우므로 고구마 수확은 맑은 날이 계속될 때 하는 것이 좋다. | ||
<ref>Ibid., pp.186-187</ref> | <ref>Ibid., pp.186-187</ref> | ||
=== 수확방법 === | |||
고구마를 캘 때, 상하지 않도록 해야 저장성이 향상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덩굴은 낫으로 자르고 걷어낸 다음 괭이나 쇠스랑으로 캔다. 고구마를 수확은 양날 쟁기로 갈아엎은 다음 고구마를 줍거나 고구마 굴취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ref>Ibid., pp.187-188</ref> | 고구마를 캘 때, 상하지 않도록 해야 저장성이 향상되고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덩굴은 낫으로 자르고 걷어낸 다음 괭이나 쇠스랑으로 캔다. 고구마를 수확은 양날 쟁기로 갈아엎은 다음 고구마를 줍거나 고구마 굴취기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ref>Ibid., pp.187-188</ref> | ||
== 저장 == | |||
=== 저장용 고구마 === | |||
저장용 고구마는 저장병해에 강하고 저장 적온에서 싹이 잘 트지 않는 품종으로 정해야 하고 9℃ 이하의 냉온에 접했거나 서리를 맞은 고구마를 저장해서는 | 저장용 고구마는 저장병해에 강하고 저장 적온에서 싹이 잘 트지 않는 품종으로 정해야 하고 9℃ 이하의 냉온에 접했거나 서리를 맞은 고구마를 저장해서는 안된다. 그 외에도 잘라지거나 상처를 입었거나 껍질이 많이 벗겨진 고구마도 저장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병균침입이 쉽기 때문이다.<ref>Ibid., p.189</ref> | ||
=== 저장 환경 === | |||
저장 가능 온도는 10~17℃이지만 제일 적절한 온도는 12~15℃ 정도이다. 9℃이하에 오래두면 냉해를 입어 썩기 쉬워진다. 반대로 온도가 높아지면 싹이 트게 되어 상품가치가 크게 낮아진다. 대체로 0℃에서 24시간, -5℃에서 18시간, -15℃에서 3시간 정도 노출되면 냉동해를 입게 된다. 고구마의 어는 온도는 -1.3℃ 정도이다. | 저장 가능 온도는 10~17℃이지만 제일 적절한 온도는 12~15℃ 정도이다. 9℃이하에 오래두면 냉해를 입어 썩기 쉬워진다. 반대로 온도가 높아지면 싹이 트게 되어 상품가치가 크게 낮아진다. 대체로 0℃에서 24시간, -5℃에서 18시간, -15℃에서 3시간 정도 노출되면 냉동해를 입게 된다. 고구마의 어는 온도는 -1.3℃ 정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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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Ibid., p.190</ref> | <ref>Ibid., p.190</ref> | ||
=== 저장방법 === | |||
* 굴저장 방법 | * 굴저장 방법 | ||
* 가열식저장법 | * 가열식저장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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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이 식용으로 소비되었으나, 최근에는 부식용이나 삶은 고구마, 튀김, 군고구마 등 간식으로 주로 이용된다. 녹말용으로 30% 정도 사용되고 엿·포도당·과자류·식용가공품·의약품·화장품 등 다방면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알코올, 위스키, 소주 등의 원료로서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쌀이 소주를 빚는데 금지되었을 때에 고구마로 주정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소주]]가 화학주로 오해 받기도 하는데, 고구마로 에탄올을 만들기 때문에 고구마가 한국의 희석식 소주의 주원료이다. [[동물]]의 사료로도 이용이 되기도 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이 식용으로 소비되었으나, 최근에는 부식용이나 삶은 고구마, 튀김, 군고구마 등 간식으로 주로 이용된다. 녹말용으로 30% 정도 사용되고 엿·포도당·과자류·식용가공품·의약품·화장품 등 다방면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알코올, 위스키, 소주 등의 원료로서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 특히 한국에서는 쌀이 소주를 빚는데 금지되었을 때에 고구마로 주정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소주]]가 화학주로 오해 받기도 하는데, 고구마로 에탄올을 만들기 때문에 고구마가 한국의 희석식 소주의 주원료이다. [[동물]]의 사료로도 이용이 되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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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식품]][[분류:채소]] | [[분류:식품]][[분류:채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