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무관의 시대와 중흥을 위한 노력 (1987-2009) === 1986년 귄터 네처 단장에 이어 1987년에 볼프강 클라인 회장과 에른스트 하펠 감독마저 떠나면서 HSV는 다시 위기를 맞았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무려 7명의 회장과 8명의 감독들이 팀을 거쳐갔다. 안정감이 부족하기는 선수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활을 위해 팀은 계속해서 이적시장을 두드렸지만, 그 결과는 보잘 것이 없었다. 가령 1987년에는 골키퍼 믈라덴 프랄리야(Mladen Pralija)를 영입했으나 불과 1년만에 다시 팀을 떠났고, 1988년에는 11명의 선수들이 합류했으나 얀 푸르톡(Jan Furtok) 정도만이 성공적인 영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구단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성적 또한 당연히 바닥을 쳤다. 1986-87 시즌에 팀은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다음 시즌에는 곧바로 6위로 추락했고, 이듬해 잠시 4위로 반등하기도 했지만 1989-90 시즌에는 11위로 추락했다. 1990-91 시즌에는 신입생 [[토마스 돌]](Thomas Doll)과 프랑크 로데(Frank Rohde)가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5위까지 올라갔으나, 이때를 제외하면 1989-90 시즌부터 6년 동안 팀은 매년 10위권 바깥을 맴돌았다.<ref>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토마스 돌은 한 시즌만인 1991년 여름에 AS 로마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돌은 역대 레코드인 1,700만 마르크의 이적료를 남겼는데, 이 거금은 팀이 경제적으로 회생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ref> 마찬가지로도 대외적으로도 1989-90 시즌 UEFA 컵 8강이 이 기간 동안에 그나마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물론 긍정적인 신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레전드 [[우베 젤러]]가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팀은 채무를 청산하고 5백만 마르크의 예비금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그해 10월 베노 묄만(Benno Möhlmann)의 후임으로 취임한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팀을 리그 5위 자리에 올려 놓음으로써 수년 만에 UEFA 컵 출전권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시기의 HSV가 긍정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이어진 1996-97 시즌에 마가트는 UEFA 컵 8강과 DFB-포칼 4강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고, 절치부심한 HSV는 1997년 여름, 프랑크 파겔스도르프(Frank Pagelsdorf)를 새로 감독으로 선임하고 이적 시장에서 7백만 유로가 넘는 거액을 투자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그 기대가 무색하게 21라운드까지 팀은 5승 5무 11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한때 리그 꼴찌까지 추락했다가 막판 뒷심으로 간신히 9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1999-2000 시즌에 13년 만의 최고 성적인 리그 3위를 기록하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확보하기도 했으나, 그때를 제외하면 파겔스도르프와 함께한 4년 동안 팀은 전반적으로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 뒤를 이은 쿠어트 야라(Kurt Jara) 역시 별다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파일:Hoffmann und Beiersdorfer.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디트마 바이어스도르퍼(좌)와 베른트 호프만(우)]] HSV의 중흥은 2002-03 시즌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즌에 팀은 분데스리가를 4위라는 호성적으로 마무리지었으며, 이어진 DFB-리가포칼에서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4:2로 꺾고 16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이때 있었던 운영진의 변화였는데, 2002년 8월, 1986-87 DFB-포칼 우승 멤버였던 디트마 바이어스도르퍼(Dietmar Beiersdorfer)가 단장으로 팀에 돌아왔으며, 2003년 2월에는 베른트 호프만(Bernd Hoffmann)이 새로 운영이사회장에 선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이 함께 일했던 2009년까지를 HSV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먼저 호프만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HSV의 재정 규모를 크게 키웠으며, 바이어스도르퍼는 그 돈으로 다수의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이 다시 분데스리가의 강호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클라우스 토프묄러(Klaus Toppmöller) 감독이 팀을 이끈 2003-04 시즌에 이어 토마스 돌(Thomas Doll)이 지휘봉을 잡은 2004-05 시즌에도 HSV는 8위라는 그저 그런 성적에 그쳤다. 당시 수비 쪽에서는 새로 영입된 [[다니엘 반 바이텐]](Daniel van Buyten)과 [[칼리트 불라루즈]](Khalid Boulahrouz)가 눈부신 활약을 펼쳐주었으나, 반대로 공격 쪽에서는 야심차게 데려온 벤야민 라우트(Benjamin Lauth)가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리면서 아쉬움을 남겼다.<ref>그해 DFB-포칼에서는 문제적인 사건이 있었다. 1라운드에서 HSV는 북부 레기오날리가(Regionalliga Nord) 소속의 [[SC 파더보른 07]](SC Paderborn 07)에 4:2로 충격패를 당했는데, 당시 심판이었던 로베르트 호이처(Robert Hoyzer)는 음펜자에게 납득할 수 없는 퇴장을 명령하고 파더보른에 두 차례 페널티킥을 주는 등 노골적으로 HSV에 불리한 편파 판정을 내렸다. 수사 결과 이 경기를 포함하여 DFB-포칼 및 하부 리그 일부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마피아가 개입한 승부 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독일 축구계에 커다란 상처로 남았다. 한편, 독일 축구협회는 이후 사과의 의미로 HSV에 50만 유로의 보상금을 주었고 폴크스파크 슈타디온에서 국가대표 경기를 치러주기로 약속하였다.</ref> <s>함께 영입된 에밀 음펜자(Emile Mpenza)에 대해서는 그냥 언급하지 않도록 하자.</s> 그러나 이어진 2005년 여름, HSV는 [[AFC 아약스]]의 영스타 [[라파엘 반 더 바르트]](Rafael van der Vaart)와 <s>흥부자</s> 티모시 아투바(Thimothée Atouba), 그리고 만능 수비 자원 기 데멜(Guy Demel) 등을 영입하며 탄탄한 전력 보강을 이루었고, 그 효과는 놀라웠다. UEFA 인터토토 컵 우승자 자격으로 [[UEFA 컵]]에 진출한 HSV는 오랜만에 8강이라는 호성적을 거두었고, 분데스리가에서는 6년 만의 최고 성적인 3위에 올랐다. 특히 [[다니엘 반 바이텐|반 바이텐]]과 [[칼리트 불라루즈|불라루즈]]가 중심이 되고 라이트백으로 변신한 [[메흐디 마다비키아]](Mehdi Mahdavikia)와 왼쪽의 [[티모시 아투바|아투바]]가 버티는 포백 라인은 리그 최소 실점인 30골만 허용하며 최고의 짠물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회 뒤에는 위기가 따라오는 법이다. 시즌이 끝나자 수비의 버팀목이었던 [[다니엘 반 바이텐|반 바이텐]]과 [[칼리트 불라루즈|불라루즈]]가 나란히 [[FC 바이에른 뮌헨|바이언]]과 [[첼시 FC]]로 이적했고, 공격진을 먹여 살리던 노장 [[세르게이 바르바레스]](Sergej Barbarez) 또한 계약이 만료되어 팀을 떠났다. 물론 거액의 이적료를 챙긴 팀은 곧바로 당대 최고의 수비 유망주로 손뽑히던 [[뱅상 콤파니]](Vincent Kompany)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후안 파블로 소린]](Juan Pablo Sorin)을 비롯하여 공수에서 여러 선수들을 영입하였으나, [[요리스 마타이센]](Joris Mathijsen)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만족스러운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 팀은 챔스 광탈과 더불어 리그에서도 강등권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당연히 감독 교체였다. 19라운드를 끝으로 [[토마스 돌]] 감독은 경질되었고, 네덜란드 출신의 [[휩 스테벤스]](Huub Stevens)가 선임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기적적인 반전이 시작되었다. 단 1승 12무 6패로 꼴찌던 달리던 HSV는 15경기에서 9승을 챙기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7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였고, 반전의 주역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는 곧 강팀들의 위시 리스트에 올랐다. <s>그리고 그의 징징거림 또한 본격화되기에 이르는데...</s> [[파일:VdV.jpg|300픽셀|섬네일|왼쪽|이랬던 반 더 바르트는 발렌시아가 아닌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어진 2007-08 시즌에도 스테벤스 감독의 지도력은 빛을 발했다. [[라파엘 반 더 바르트|반 더 바르트]]가 여전히 폭발적인 활약을 이어가는 가운데, 4-4-2에서 4-2-3-1로 포메이션을 바꾼 이후 [[다비트 야롤림]](David Jarolim)과 [[나이젤 데 용]](Nigel de Jong)이 3선에서 [[안드레아 피를로|피를로]]-[[젠나로 가투소|가투소]]를 연상케 하는 환상의 하모니를 자랑하였고 팀은 한때 리그 2위를 구가하기에 이르렀다.<ref>국내 팬들 사이에서 야롤림과 데 용은 야를로와 데축소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다.</ref> 그러나 막판 뒷심 부족으로 팀은 4위로 밀리며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였고, 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이 만료된 [[휩 스테벤스|스테벤스]] 감독은 [[크론병]]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보살피고자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말았다. 스테벤스 감독이 떠나고, <s>불과 일 년 전에 그 유니폼까지 들어 보이며 [[발렌시아 CF|발렌시아]] 사랑을 숨기지 않았던</s> 주장 반 더 바르트마저도 <s>발렌시아가 아닌</s>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변화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스테벤스의 후임으로 취임한 [[마틴 욜]](Martin Jol)은 그러한 우려 속에서도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기존 선수들과 신입생들이 골고루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가운데 팀은 리그와 [[UEFA 컵]], 그리고 [[DFB-포칼]]까지 세 개 대회에서 모두 쾌조의 성적을 보이며 사상 최초로 한 시즌 3개 메이저 대회 제패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s>단, 신입생 중 [[치아구 네베스]](Thiago Neves)는 음펜자와 같은 이유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s> 그러나 또 다시 부족한 뒷심을 보이며 HSV는 막판 세 대회 모두에서 라이벌 [[SV 베르더 브레멘|브레멘]]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고, 결국 UEFA컵과 DFB-포칼 4강, 그리고 리그 5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