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편집하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적으로 기록됩니다. 계정을 만들고 로그인하면 편집 시 사용자 이름만 보이며, 위키 이용에 여러 가지 편의가 주어집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정치== === 5공 청산 === 취임 첫해인 [[1988년]] [[10월 4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에 나선 노태우는 '''5공화국 비리 연내 청산''', '''북방외교 적극추진''', '''서울 올림픽 이후 국정운영'''을 천명했다. 특히 그 자신도 5공화국 창설에 기여했고, 정치적으로도 자신을 밀어준 5공화국 수장 [[전두환]]을 포함하였기에 당시에는 파격적인 정치적 행보로 비쳐졌다. 사실 이런 파격적 행보의 이면에는 당시 정치역학이 작용한 것으로, [[1988년]] [[5월 30일]] 출범한 제13대 국회는 여당인 [[민주정의당]]보다 야당인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등의 의석수가 많은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국회 출범후 야당은 연합하여 5공비리특별위원회를 결성하여 [[신군부]]의 독재정치와 비리를 청산하려는 의도를 보였다. 헌정사상 최초의 [[청문회]]이자 권력비리를 조사하는 의미가 컸고, 이 청문회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등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청문회에는 5공의 실세들이 대거 소환되어 야당의 집중적인 추궁을 받았고, 특히 당시 초선의원인 [[노무현]]은 5공 실세인 [[장세동]]을 비롯, 증인으로 소환된 [[현대그룹]]의 [[정주영]], 5공의 우두머리인 [[전두환]] 등에게 논리적이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하며 궁지로 몰아넣어 일약 청문회 스타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원래 5공 출신인 노태우는 5공 청산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던 입장이었으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5공 청문회가 열리는 등 정치적으로 큰 압박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5공 청산을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5공 청문회가 시작되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은 [[설악산]]에 위치한 [[백담사]]에서 은거에 들어가는 등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이자 군대 동기인 노태우에게 배신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었던 노태우의 소속정당이자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5공 청문회 내내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으며, 증인으로 출석한 5공 실세와 관련인사들 역시 불성실한 증언과 위증 등으로 문제가 되었다. 특히 우두머리인 전두환은 일절 청문회에 응하지 않다가 겨우 나와서는 제대로된 증인선서도 없이 준비된 연설문을 낭독하며 불성실한 태도<ref>이런 전두환의 안하무인격 처사에 분노한 노무현은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명패를 바닥에 던지며 크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ref>로 청문회를 빠져나왔다. 청문회 전후로 비리가 밝혀진 전두환의 측근들이 구속되어 처벌을 받았으나, 결국 5공의 핵심인 전두환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5공 청산의 원대한 계획은 용두사미로 마무리 되었다. ===공안정국 조성=== 취임 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긴 노태우는 이를 타개할 발판을 마련하고자 고심했다. [[1989년]] 들어서 [[문익환]], [[서경원]], [[임수경]]이 임의로 방북을 감행했으며, 이를 정국전환의 기회로 여긴 노태우는 민주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을 발본색원한다는 취지아래 방북을 마치고 [[판문점]]을 통해 귀국하던 임수경을 체포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여 구속 수감하였다. 또한 [[평화민주당]] 소속 의원인 서경원이 방북한 것과 관련하여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며 사태진화에 나섰으나, 검찰은 김대중 총재가 서의원의 자금중 1만 달러를 수수하였고, 서의원의 방북을 알면서도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기소하고 수사에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방북했던 문익환, 서경원, 임수경은 모두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사를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다. ===[[3당 합당]]=== [[1990년]] [[1월 22일]], 당시 노태우가 소속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 야당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통합되어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였다. 이는 여소야대로 인해 정치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노태우가 보수 대연합을 내세우고, 내각제 개헌을 밀약으로 삼아 야당과 밀실회동을 하였던 것이다. 이에 김대중은 단호히 거절하였고, 김영삼과 김종필이 노태우와 야합하며 출범한 민주자유당은 일약 218석을 차지한 공룡 여당으로 탈바꿈하여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특히 군부세력에 항거하며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김영삼이 노태우와 한가족이 되는 모습은 민주화 세력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반응이 많았다.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며 일거에 여소야대를 타파하며 주도권을 쥘거란 노태우의 예상과는 다르게, [[1992년]] [[3월 24일]] 치러진 제14대 총선에서는 계파갈등의 내분이 발생하는 내홍을 겪었고,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이 반발하며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하거나 [[정주영]]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영입을 받아 선거에 출마하는 악재가 겹쳤다. 결국 총선 결과 218석의 공룡여당은 온데간데 없고, 전체 299석중 149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이후 김영삼은 당권을 장악하고 노태우의 정치적 기반인 민정당계를 대거 축출시키며 사실상 민주자유당은 김영삼의 색깔로 바뀌게 되었다. 당권을 장악한 김영삼은 노태우를 강하게 압박하며 급부상하였고, 마땅히 이를 견제할 수 없었던 노태우는 결국 차기 대선후보를 김영삼으로 밀어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의 오른팔인 [[박철언]]을 차기 대선후보로 밀어주려던 그였지만, 김영삼은 격렬하게 반발하며 집단탈당과 반정부 투쟁을 거론하며 노태우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려고 하였기에 결국 노태우는 김영삼에게 민주자유당 총재를 이양하였다. 이후 정치적 중립성을 위하여 스스로 민자당에서 탈당하였고, 이후로 퇴임시까지 자신만의 정치적 색깔을 지닌 계파<ref>노태우 이후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상도동계, 김대중은 동교동계, 노무현은 친노, 이명박은 친이라는 계파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고, 퇴임 이후에도 현실정치에 이들 계파의 입김이 꾸준히 작용했음을 생각하면, 아무런 계파를 만들지 않고 조용히 물러난 노태우의 이런 정치적 행보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ref>를 만들지않고 조용히 정치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