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의 내기

파스칼의 내기(프랑스어: Pari de Pascal)는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을 믿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지로 제시한 변증법이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사람은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신이 실존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가정할 때, 다음과 같은 도식이 가능해진다.

  신이 있을 경우 신이 없을 경우
신을 믿을 경우 천국에 간다. 살아서 약간 손해를 본다.
신을 믿지 않을 경우 지옥에 간다. 아무것도 없다.

이를 정리하면 신을 믿을 경우엔 약간의 손해를 보거나 천국에 간다는 엄청난 이득을 보게 되며, 신을 믿지 않을 경우 아무것도 없거나 지옥에 떨어지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고로 총합의 크기가 더 큰 신을 믿는 쪽이 더 유리하므로 신을 믿어야 된다는 것이다.

반박[편집 | 원본 편집]

실제로 이러한 논리로 전도를 하는 기독교인이 종종 있기도 하다. 하지만 파스칼의 내기는 매우 불완전한 토대 위에 쌓아올린 탑과 같은 것이다.

일단 신이 존재한다는 어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며, 보장도 해줄 수 없다. 파스칼의 내기는 경우에 따라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득실을 따진 것일 뿐, 어떠한 것도 증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한화 이글스가 진다면 어차피 질 것이었으니 실망이 적지만 이긴다면 엄청난 기쁨을 누릴 것이다. 고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해야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나 신을 믿는 사람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의 비판은 별 실효성이 없다. 이 논증은 애초에 신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지와는 전혀 무관한 논증이다. 또한, 어떤 존재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무슨 생각을 해 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무슨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과정이다. 즉 존재와 부존재를 나누어 본 것뿐, 동등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존재에 대한 근거가 없다느니, 존재를 보장할 수 있냐느니 하는 질문이 왜 나오는 것일까? 만약 그런 질문이 나와야 한다면 똑같은 이유로 부존재에 대한 근거가 없다느니, 부존재를 보장할 수 있냐느니 하는 질문도 해야 옳다. 그렇게 되면 위의 비판은 실효성이 사라진다.

파스칼의 내기는 신을 증명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신을 믿는 게 유리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있다. 애초에 이 내기 자체가 신의 존재증명을 위해 있지 않기에 이 논증은 신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신의 존재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건 관련 논증에게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총합을 구하는 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하거나 신을 믿는 게 불리하다는걸 증명하는 게 낫다.

다만, 신이 실존하더라도 그것이 기독교의 신이 아닐 경우에는 저 내기가 성립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믿는 사람이 죽으면 천국으로 보내주는 기독교의 신'을 전제로 저 주장을 펼쳤지만, 신이 실존하더라도 그러한 기독교인에게 편리한 성격을 가진 신이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보니 야훼 대신에 힌두교비슈누가 기다리고 있는다든지……. 심지어는 '자신을 믿는 자를 지옥에 보내는 신'이라는 것을 가정한다고 해도 반박할 수가 없다.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파스칼의 내기는 사소한 말장난으로도 철처하게 궤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파스칼의 내기는 신앙을 수단화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한 목적으로 야훼를 믿는 것은 진실된 야훼에 대한 신앙이 아니므로, 저런 부실한 논리에 따라 야훼를 믿어봐야 야훼가 천국에 보내줄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물론 기독교의 입장에 따르면 '누가 천국에 갈지는 야훼만이 안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만약에 신이 진짜 존재하고 그 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라고 한다고 쳐도, 성서 그 어디에도 자기 안 믿었다고 지옥으로 보낸다고는 안 써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말은 개독들이 자기 멋대로 꾸며대는 말이다. 즉, 위의 논증 다 필요없고 그냥 헛소리라는 이야기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