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카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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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카살스(Pablo Casals, 1876년 12월 29일 ~ 1973년 10월 22일)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첼리스트, 지휘자, 작곡가다. 본명은 파우 카살스 이 데피요(Pau Casals i Defilló).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왜냐하면 저는 지금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죠"
— 95세 때 기자가 아직도 6시간씩 매일 연습하는 이유를 묻자

첼로의 성자

카잘스는 1876년 12월 29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악기를 접할 수 있었다. 4세 때부터 오르간,피아노,플룻,바이올린을 연주했고 6세 때는 대중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그가 본격적으로 첼로를 연주한 것은 11세 때부터였다. 12세 때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입학한 카잘스는 첼로와 음악이론 등을 배우기 시작했고 13세 때 중고 악보 상점을 뒤지던 중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집을 발견하게 된다. 돈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그는 카페 토스트라는 작은 가게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 그러던 중 작곡가 이삭 알베니즈의 눈에 띈 카잘스는 스페인 왕비의 비서에게 추천장을 써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리드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의 관계[편집 | 원본 편집]

많은 사람들이 알기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카잘스가 처음 발견하고 초연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다만 지금처럼 모음곡 형태가 아니라 연습곡 정도로만 인식이 되었다. 카잘스가 이를 발견한 이후 약 1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를 완전한 모음곡 형태로써 그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카잘스가 이 곡에 대해 한 일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그가 가지고 있던 악보(바흐의 아내인 막달레나의 필사본)에는 활쓰는 법이라던가 템포 등이 적혀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한 템포를 지정하고 운궁법을 지정함으로써 이 곡에 대한 이해와 연주를 좀 더 쉽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는 5번이나 6번 모음곡은 일반적인 형태의 첼로로 작곡되지 않았다. 5번 모음곡의 경우는 스코르다투라를 이용해 가장 높은 현인 A현을 G음으로 낮춘 채 연주하라고 써 있었고, 6번 모음곡인 경우는 비올라 폼 포사라고 하는 바흐가 고안한 5현 악기를 위해 만들어진 모음곡이다. 5번 모음곡의 경우, 카잘스는 바흐가 지시한대로 음을 낮추는 것이 연주하는 것은 편하지만 음색이 둔해지고, 현재의 테크닉으로는 일반적인 조현으로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바흐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연주를 한다. 또한 6번 모음곡의 경우에는 5현으로 된 만큼 음역대가 더 높고 연주가 불가능한 부분도 일부 있는데 이를 연주가 가능하게끔 정리를 했다.

레퍼토리[편집 | 원본 편집]

주 레퍼토리는 바흐베토벤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브람스슈만과 같은 낭만파 음악이 많은 편이다. 또한 첼로로 편곡한 소품들도 꽤 연주한 편이다.대표적으로는 스페인 민요를 편곡한 '새의 노래'가 있다

디스코그래피[편집 | 원본 편집]

그가 남긴 음반들은 1920년대에서 그가 사망하기 전인 1970년대에 녹음이 되었다. 그 중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첼리스트로써의 녹음이 대부분이며 이후의 녹음들은 주로 지휘를 한 것들이 남아 있다.

일단 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가장 유명하며 그밖에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나 조지 셸과 같이 연주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그리고 엘가의 《첼로 협주곡》도 추천할만하다. 그밖에 그의 친구들인 자크 티보(바이올린)와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니스트)와 함께 작업한 트리오 음반도 많다. 또한 그가 백악관에서 초청받아 연주한 실황 음반도 존재한다.

다만 대부분의 음반이 레코딩 초창기에 이뤄져서 음질이 조악한 것들이 많은 편이다.물론 최근에 리마스터된 앨범은 꽤 나은 편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