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승우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선수 커리어[편집 | 원본 편집]

청주 출신, 청주기계공고 야구부와 성균관대를 거쳐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그러나 LG에서 있던 4시즌(상무 복무기간 제외)동안 1군 출장경기가 총 50경기에 불과했고, 그중 38경기가 2006시즌에 몰려 있을 정도로 팀에서 전혀 중용받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그 이용규가 주전에서 밀려 이적한 것이 LG다.물론 이땐 이용규가 아직 터지기 전이긴 했다. 추승우의 플레이 유형도 빠른 발에 중점을 두는 데, 같은 부분에서 이대형에 밀렸고 수비나 타격에서도 딱히 이점이 없었다.

결국 2007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는데 하필 마해영, 진필중과 같은 쟁쟁하지만 노쇠화된 스타플레이어들과 같이 방출되는 바람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직후 김인식 감독이 전격적으로 영입하여 2008시즌부터 한화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이후 2008~2010시즌에 김인식 감독의 중용을 받으며 3시즌 연속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해내며 한화 외야진의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타율은 세 시즌 공히 2할 3~4푼으로 높지 않았지만 2009~2010시즌에는 연속으로 2홈런을 쳐내기도 하였고 전체적으로 발빠른 선수가 없는 한화에서거의 유일한 준족이었기에 꾸준히 기용되었다.

문제는 2010시즌 이후였다. 2010시즌 최진행의 발견으로 외야수 슬롯 하나가 찬 상태에서, 역시 10시즌중에 트레이드로 김경언이 영입되었고 09~10시즌 군 복무로 팀을 떠나있던 고동진이 복귀했으며 2011시즌 중에는 카림 가르시아가 대체용병으로 합류하면서 외야 포지션에서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준족형 선수 기준으로도 내야에서 오선진, 하주석 등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며 추승우의 이점이 사라졌고 그 결과는 1군 경기 11시즌 19경기, 12시즌 18경기 출장에 그친 걸로 나타난다.

이후 피나는 훈련으로 2013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맞이하는데, 8월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까지 72경기 158타수 48안타(1홈런) 0.304 17타점 12도루로 맹활약했다. 특히 득점권 타율도 3할이었고 대타시에도 4할을 넘는 타율을 기록해, 주전으로나 백업으로나 요긴하게 잘 쓰이며 팀의 상위타선을 이끄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8월 16일 경기에서 엄지발가락 골정상을 입은 것이 너무 불운했다.

2014시즌에는 더 불운했는데 부상 회복 후 본인의 2군에서의 경기력도 안 좋았던데다가, 이용규와 정근우라는 두 리드오프가 팀에 합류하면서 추승우의 쓰임새가 많이 애매해진 것. 결국 시즌 막바지에나 몇 경기 출장했지만 인상적이진 못했다.

이후 2015시즌에도 1군으로 올라오지 못하다가, 김경언의 부상 직후 신고선수 신성현을 1군에 올리면서 엔트리 65명이 초과되자 방출되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 성실한 노력파로 소문나있다. 훈련량에서는 LG 시절부터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훈련량에 비해 기량이 올라오는 시기가 너무 늦었고, 기량이 올라오나 했더니 부상을 입고, 부상이 회복되나 싶더니 훨씬 잘하는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자리를 잃어버렸다. 여러모로 불운...
  • 한화 시절 가끔 내야수 포지션을 맡기도 했다. 주로 1루수로 나섰고, 간혹 3루수로 출장했는데 수비력은 신통치 않았다. 특히 1루수로 출장하며 마치 외야수마냥 몸을 날리다보니 정작 1루 베이스커버를 못하는 장면은...
  • 김경언, 고동진과 함께 13시즌 한화 외야를 책임지는 김고추 트리오로 불렸다.
  • 별명으로는 미남형 얼굴덕에 추간지, 그리고 좋은 플레이를 보일때 한정으로 추추 트레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