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앙 아벨란제

아벨란제.jpg

주앙 아벨란제(포르투갈어: João Havelange 주앙 아벨란지, 1916년 5월 6일~2016년 8월 16일)[1] 또는 장마리 포스탱 괴드프루아 드 아블랑주(프랑스어: Jean-Marie Faustin Goedefroid de Havelange)[2]브라질의 축구인으로, 전 FIFA 7대 회장이다.

FIFA라는 스포츠 단체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만드는 데 공헌했지만 특유의 꼰대와 부심, 그리고 탐욕으로 순수 스포츠단체를 비리로 얼룩지게 한 주범. 가히 제프 블라터의 선배격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16년 5월 8일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에서 벨기에에서 브라질로 이민온 무기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벨기에에서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의 포르투갈어에도 프랑스 억양이 녹아들어갔다. 그의 이름이 브라질식, 프랑스식 전부 존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고 플루미넨시주 대학의 법학과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고 24세에 졸업했다.[3]

대학 졸업 후 그는 버스를 판매하는 자바콰라 자동차(Auto Viação Jabaquara)사의 법무보좌관으로 일했고 화학과 금속 전문 회사인 오르웩 화학 야금 유한책임회사(Orwec Química e Metallurgia Ltda)에서도 근무했다.[3]

아벨란제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스포츠를 즐겼는데 특히 수영수구 등 수중 스포츠 실력이 뛰어나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수영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땐 수구 국가대표로 출전했다.[4] 즉 아벨란제는 축구와는 별 인연이 없었던 사람이다! 반면 수중 스포츠는 수영, 수구 둘 다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잘했던 듯.쓸데없는 부분에서 대단하다

이후 이 선수시절의 활약을 인정받아 브라질수영연맹의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그 자격으로 브라질 올림픽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브라질 올림픽 부위원장을 거쳐 1958년 브라질 올림픽 위원장에 취임하여 1973년까지 역임하게 된다.[5] 자, 여기까진 정상적인 은퇴한 국가대표 선수의 출세가도라 치자...

FIFA 회장에 취임하다[편집 | 원본 편집]

그는 뛰어난 수영, 수구 선수였을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브라질 올림픽 위원장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브라질스포츠연맹 재정을 거덜낼 정도로 운영을 하도 개판으로 해서 1974년 브라질 스포츠계의 높으신 분들한테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대체 어느 정도였길래 시민권을... 죽창을 맞고 위기에 몰렸는데 그가 찾은 돌파구가 FIFA.전설의 시작

그는 1974년 그 전 FIFA 회장이자 6대 회장이었던 스탠리 라우스를 꺾고 FIFA 회장에 당선되게 된다! 이게 왜 문제냐고? 상술했듯 그는 물속에서 헤엄치던 인간이지 잔디밭에서 공차던 사람이 아닌데 국제축구연맹의 회장을 맡은 것.

이게 더 문제인 이유는 선거 자체가 문제가 많았기 때문인데 후술하겠지만 그야말로 축피아의 비리로 얼룩진 더러운 선거였다.[6]

1974년 카이로에서 열린 아프리카축구연맹 총회에서 폭로된 사실에 의하면 아벨란제가 아프리카축구연맹의 회장인 이드네카체브 테세마(Ydnekatchew Tessema)의 도움을 받아 아프리카 임원들을 매수하려 했었다고 한다.[7]

그의 선거유세는 박수를 쳐줘야 할 정도였는데 약 86개국을 순회하며 월드컵에 참여하지 못하는[8] 축구 약체 국가들을 위해 월드컵 참가국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호언장담, 필요한 경우 경기장 건설, 기술교육, 의료 지원에 아낌없이 돈을 퍼부어주겠다고 약속하기까지 했다.그게 축구랑 무 슨상 관?

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국가들의 환심을 사려고 언플까지 했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인종차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건 잘한 거 아니냐고? 자기가 지분을 가진 회사가 남아공 정부와 무기거래를 한 사람이 그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참고로 이 사실이 밝혀지자 아벨란제는 눈 하나 꿈쩍 안하고 철판 시전.

그뿐인가? 타임즈지의 기자는 1974년 피파 회장 선거가 벌어지는 프랑크푸르트에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외교관들이 몰려오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 외교관들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초특급 엘리트들로 아벨란제의 아버지가 쓰던 언어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이 외교관들은 애초에 축구랑 별 상관도 없는 사람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선거인지...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축구계 원톱이었던 당시 아디다스 사장 호르스트 다슬러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다. 아벨란제는 당연히 다슬러에게도 뇌물을 넘겼는데 월드컵 개막 직전 선거가 열리기 직전에 투표를 위해 슈타이겐베르거(Steigenberger) 호텔에서 묵고 있던 다슬러의 방으로 돈봉투를 보냈다.

작은 갈색 봉투는 형재애 정신을 듬뿍 받아 전달되었다. 마치 '모자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 당시 선데이 타임스의 기사.[9]

호르스트 다슬러: 짜식...좋아 뽑아주지ㅇㅇ
다슬러는 아프리카에 펴놓은 넓은 인맥[10]을 무기로 아프리카 국가 대표들을 설득해 아벨란제에게 몰표를 주는데 성공한다.

이 지랄을 떨었는데 떨어지면 섭하겠지? 투표 결과 아벨란제는 라우스를 1차 선거에서 56:62, 2차 선거에선 표차를 더욱 넓혀 52:68로 관광보내고 FIFA 회장에 당선되면서 축피아 보스는 1974년부터 1998년까지 약 24년이라는, FIFA 역대 회장 중에서도 두 번째로[11] 긴 시간 동안 FIFA를 쥐락펴락하게 된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 별로 자랑할 만한 건 아니지만 혼혈인이 많은 브라질에서 홀로 정통 벨기에계 백인의 순혈통을 자랑하며 외모부터의 포스가 다른 사람들을 압도한다. 날카로운 주걱턱과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을 정도로 매서운 푸른색 눈동자의 눈빛, 사진만 봐도 자동음성지원이 되는 낮고 탁한 중저음의 소리는 과연 FIFA 축피아들계의 최종보스라 할만한 압도적인 포스를 풍겼다. 실제로 FIFA의 비리를 조사하던 사람들도 그의 포스에 압도당했다고.
  • 아들로는 히카르두 테이셰이라가 있는데... 누가 부전자전 아니랄까봐(...)

각주

  1. 브라질식 이름.
  2. 프랑스식 이름.
  3. 3.0 3.1 http://biografias.netsaber.com.br/biografia-480/biografia-de-joao-havelange
  4. http://www.sports-reference.com/olympics/athletes/ha/joao-havelange-1.html
  5. http://www.mylaw.net/Article/Joao_Havelange_The_swimmer_who_revolutionised_World_Football/
  6. 최악은 아니다. FIFA에서 이 정도는 일상다반사다.
  7. 『빌트』Bild, "뇌물로 회장 자리를?", 1974.3.1
  8. 참고로 당시 월드컵 출전국 수는 18개국이었다. 지금의 절반 수준이니 그만큼 참가도 어려웠고 격도 높은 대회였다.
  9. 키스 보스워스(Keith Bosworth),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 다음 책에 인용된 것을 재인용함. 앤드루 제닝스(Andrew Jennings), 『피파의 은밀한 거래』Foul!, Hinter der Fsssade der Fifa, 2006
  10.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의 지도자들인 독재자들에게 꾸준한 선물 공세만 해주면 넓은 인맥은 금방이다.
  11. 1위는 쥘 리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