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서

개요[편집 | 원본 편집]

구약성경 선지서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가장 분량이 많은 책이다. 총 6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다 임금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이사야가 신의 계시를 받아서 기록하였다고 나와 있다. 이사야서의 내용은 방대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도록 신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약의 내용인 율법을 무시하고 신을 외면하여, 스스로가 신이 되어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면서 개판 5분 전이 되어 버린 이스라엘 사회, 더 나아가서는 중근동의 여러 나라들을 향하여, 신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고, 그렇듯 스스로가 신이 되려 함에 따라 신의 저주 가운데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메시아가 내려와서 인류를 죄[1]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것이고, 모두가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공평하게 신이 준 생명과 평화를 누리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내용[편집 | 원본 편집]

1장부터 39장까지는 이스라엘 사회와 주변 민족들이 자행하고 있는 죄악을 규탄하면서 심판을 예언하고 있고, 40장부터 66장까지는 그런 속에서도 신이 메시아를 통해 이렇게 미쳐 버린 세상을 다시 일으키고 보듬어 신의 생명과 평화를 실현할 것이라는 희망을 예언하고 있다. 후반부는 다시 둘로 나뉘는데, 40장부터 55장까지는 신의 위로와 용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56장부터 66장까지는 신이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구원의 약속을 보증하면서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세부 구조를 다시 뜯어보면 다음과 같다.

  • 1-12장: 이사야 사역 초기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시대에 선포된 신의 계시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정치, 사회적 죄악(공평과 정의를 행하도록 신이 준 정치적 권력을 남용하여 독재정치를 벌이고, 신이 공평하게 나누어 준 땅과 가옥을 한 사람이 독점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짓밟고 착취하며, 빈부격차를 해결하려는 어떤 노력도 벌이지 않고, 사회 지도층은 온갖 성적 타락과 초호화 사치 생활을 일삼음)과 종교적 죄악(신에 대한 예배는 엄청 열심히 드리면서 정작 신이 원하는 건 하나도 행하지 않음)을 규탄하면서 심판을 경고하고 있으며, 사이사이에는 신의 구원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도 제시되어 있다.
  • 13-23장: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에 대한 신의 계시들.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워 이스라엘에 대해 온갖 폭력을 휘두르는 주변 국가들이 언젠가 신의 심판을 받아 와장창 박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 24-27장: 온 세상에 임하게 될 신의 심판과, 생명과 평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 신약의 요한묵시록과 유사한 내용 때문에 '이사야 묵시록'이라 하기도 한다.
  • 28-33장: 히스기야 시대를 배경으로 이스라엘 사회에 선포된 신의 계시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르는 정치, 사회적 죄악과 종교적 죄악에 대하여 비판하고 신의 심판을 경고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이 베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
  • 34-35장: 온 세상을 향한 신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생명과 평화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 36-39장: 히스기야 시대 앗수르(아시리아)의 침공과 거기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을 다루고 있다.
  • 40-55장: 바빌론의 침공을 받아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신의 위로와 용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 56-66장: 포로에서 돌아와 본토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포로 생활 이전의 죄악을 버리지 못하고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모드에 빠져서 막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신의 구원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며 언젠가 반드시 신이 생명과 평화의 새 세상을 열어 줄 것이라고 희망을 주면서, 어두움 가운데 머무르지 말고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여기에서 1-39장과 40-55장, 56-66장의 독자가 완전히 다르다. 1-39장은 바빌론 침공으로 멸망하기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고 있으며, 40-55장은 바빌론의 침공으로 나라가 망하고 바빌론에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고 있고, 56-66장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중대한 떡밥이 하나 투하되는데...

종교개혁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이사야서는 전체를 이사야 혼자서 다 썼고, 연대가 다른 것은 40-55장과 56-66장은 자신의 후손들에게 전하는 계시라는 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계몽주의 사상이 서구 세계에 등장하면서,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이성을 성경보다 더 중요한 계시의 원천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40-55장은 이사야라는 이름의 또 다른 예언자가 바빌론 포로 기간에 써서 1-39장 뒤에 덧붙인 것이고, 56-66장은 또 다른 이사야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써서 그 뒤에 또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이사야서를 제1부, 제 2부, 제 3부로 나누고, 각각의 저자를 제1 이사야, 제 2 이사야, 제 3 이사야 이렇게 지칭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제 개혁주의(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키배가 시작된다. 보수주의자들은 문체는 다를 수도 있는 것이고 이사야가 계시를 받아서 먼 미래의 일까지 내다보고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유주의자들은 이걸 근거로 이사야서(더 나아가서 성경 전체)는 오류가 있으므로 텍스트 자체를 신의 계시라 할 수는 없으며 이성이 더 중요한 계시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키배는 자유주의 신학이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 이성이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됨이 드러나면서 몰락하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모두에 대한 안티테제로 신정통주의 신학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신정통주의에서는 성경 비평은 인정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성경을 신의 계시로 여기고 이성보다 우위에 둔다. 그래서 신정통주의자들은 이사야서를 이사야 혼자 1-66장까지 다 썼든 아니면 셋이 나눠서 썼든 그게 뭔 상관이냐고 믿는다. 어차피 성경은 신의 계시를 인간의 언어로 전달한 것이고, 텍스트에 오류가 있더라도 그 속에서 제시되는 신의 계시는 오류가 없으며 충분히 믿을 만한데, 뭐가 그렇게 문제냐는 것이다. 이사야서를 셋이 나눠서 쓰면 그건 신의 계시가 아니고, 혼자서 다 쓰면 신의 계시냐는 것이다. 셋이 나눠 쓰든 혼자 쓰든 신의 계시를 전달한 건 마찬가지이므로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현재 신학계에서는 스펙트럼에 따라 두 학설이 팽팽하게 대립 중인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신정통주의적 입장이 우세하지만 한국은 근본주의 신학이 워낙 강세인 관계[2]로 이사야 혼자 다 썼다는 설이 강세를 얻고 있다.

이사야서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공평과 정의: 신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웃과 바른 관계를 맺고 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성전에서 아무리 신에게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성전 밖에서 신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욕망과 이기심에 사로잡혀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삶을 살면 그 예배는 죄다 빠꾸 먹는다. 아무리 신에게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2. 신의 통치: 공평과 정의는 단순한 윤리 덕목이 아니라 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원칙이다. 신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은 멸망하겠지만, 신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 오히려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이스라엘이 잘나가서 강대국으로 성장함으로써 신이 영광받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망함으로써 오히려 신의 주권이 강력하게 선포될 것이다.
  3. 신의 종: 40-55장에 보면 네 번에 걸쳐서 신이 자신의 종이라고 부르는 누군가에 대한 노래가 네 번 나온다. 42:1-4에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온 세상에 정의를 세우는 신의 종이 나온다. 49:1-6에서는 이 종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을 받아 잘 훈련이 되었지만 정작 한 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삽질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런 속에서도 이 종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천하 만민을 신에게로 이끄는 영도자이며 천하 만민의 빛으로 세워졌다. 겉보기에는 그냥 삽질로 끝난 것 같지만 신이 보기에는 정말 엄청난 업적을 거둔 것이다. 50:4-9를 보면 이 종은 연약한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신의 말씀을 잘 깨닫고, 마치 메다카 박스히토요시 젠키치처럼 어떤 모욕과 수치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52:13-53:12를 보면 이 종은 극심한 고난 속에서 찌질이 취급을 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런데 이 종이 당한 극심한 고난은 알고 봤더니 마마마카나메 마도카가 이 세상의 모든 마법소녀들을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주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스스로 마법소녀가 된 것처럼 전 인류를 대신하여 받았던 고난이었다. 이 종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존재였지만, 그의 삶을 살펴보면 문자 그대로 찌질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결국에는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그런 속에서도 이 종은 신의 사랑과 능력 속에서 진정한 신의 종으로 살아갔다. 이게 누구냐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바로 이 종이라고 해석한다.
  4. 새 하늘과 새 땅: 욕이 절로 나오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향해, 언젠가 신의 뜻이 실현되어 만민이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생명과 평화를 누리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한다.

참고문헌[편집 | 원본 편집]

  • 김근주, 구약의 숲, 대장간, 2014, pp. 326-336

각주

  1. 서로 섬기고 사랑하면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함이라는 존재 목적을 무시한 채,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을 완성시키려 하고 이에 따라 타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하는 경향을 유대교와 기독교에서는 죄라고 한다.
  2. 메이저 교단들 중에는 신정통주의를 수용하는 예장통합, 기감, 기장, 기성, 성공회 이렇게 다섯 교단을 제외하면 죄다 근본주의 신학 노선을 따르거나 그게 주류라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