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민

윤석민
尹錫珉, Yoon Suk-min
윤석민.jpg
인물 정보
출생 1986년 7월 24일 (37세)
경기도 구리시
국적 대한민국
학력 야탑고등학교
신체 185cm, 85kg, B형
소속사 제이디비엔터테인먼트
프로선수 경력
종목 야구
포지션 투수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5~2013)
노폭 타이즈 (2014)
KIA 타이거즈 (2015~)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오봉옥 (2004) 윤석민 (2005~2009) 조태수 (2010~2012)
KIA 타이거즈 등번호 28번
조태수 (2009) 윤석민 (2010) 고우석 (2011~2012)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손영민 (2010) 윤석민 (2011~2013) 송은범 (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20번
홍건희 (2015 1 3) 윤석민 (2015~) 현역

소개[편집 | 원본 편집]

2013년까지는 KBO 역대 우완투수 중 최고 레벨로 손꼽히던 투수

그러나 2015년 이후로 영...좋지 않다.[1]

신인 시절[편집 | 원본 편집]

성남시 출신으로 야탑고를 졸업하고 나서 2005년 2차 1지명으로 KIA에 입단하게 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신인답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2006년 구속하고 컨트롤이 붙으면서 서정환의 혹사로 투수에 이름을 알렸고 2007년부터는 선발로 전향했다.

2008년은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로 방어율왕을 기록했다.[2]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 원본 편집]

임태훈을 대신해 나가게 된 윤석민은 그다지 투구내용은 좋지 않았는데. 그 외 투수들이 너무 방화를 하다보니까 묻혔다.[3]

사실 이때 김경문 감독은 윤석민보다는 임태훈을 선호했고 반대를 하다가 임태훈의 대신 엔트리로 들었다.

2009 WBC[편집 | 원본 편집]

2009년 WBC에서는 중국전에 선발로 나와 무실점으로 호투를 하고

이후 멕시코나 일본적에서 중간계투로 활약해 무실점 평균자책점은 무려 0.00을 기록했다.

4강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타선을 6 1/3이닝 2실점으로 호투를 해 팀 승리에 기여를 했다.

2009년[편집 | 원본 편집]

불운 시즌

4월달에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9이닝 1실점을 기록해 승리도 없고 패전투수도 아니였다. 결국 그 게임은 패배를 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로페즈나 양현종이 대활약을 해주고 있어서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선발에서 주 특기인 마무리로 전환을 했는데도 그다지 성적은 좋지않았다. 4:4 상황에서 무려 4 1/3이닝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퍼펙트 경기를 했지만 타선이 안 터졌다.

어린이날에도 패전투수 먹였지만 다행히도 5월 15일 스승의날에서 드디어 첫승을 받았다고 한다.

마무리로써도 그법 괜찮은 성적을 냈지만 선발진들이 이번엔 구멍이 나자 다시 선발로 전환했다.

그 이후 꾸준히 승리를 먹고 있었다. 아무래도 10승을 기록했을 설레발을 기대했지만 마지막 경기인 3이닝 10실점이나 기록하면서 결국 시즌 아웃이 됐지만 포스트 시즌은 던질 수 있었다.

2009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이닝 0실점으로 호투를 해 승리를 했지만 6차전에서는 5이닝 3실점으로 패전이 됐다.

그러나 팀은 우승을 했다.

2010년[편집 | 원본 편집]

그다지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을 못하고 또 투수코치가 바뀐탓에 적응을 못한 탓도 있다.

그 투수코치가 일본인 투수 코치인 데스기모토라는 코치인데 일본에서도 워낙 평가가 안 좋은 코치였다.

5월 11일 넥센전에서 완투승을 기록했지만 이때 류현진이 청주에서 LG를 상대로 17K를 기록하면서 완투는 저절로 묻혔다.

그러나 LG전에서 2이닝도 못버티고 8실점으로 강판당했다. 이때부터 하락기를 맞이했는데… 2010년 6월 SK전에서 윤상균[4]에게 적시타를 맞아 완투가 날라갔다. 강판되는 도중에 화를 참지못하고 오른손으로 내려치는 도중에 새끼손가락 골절 부상을 입었다.

이때부터 롯데에게 가루가 될 것처럼 까이고 결국 금지어까지 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는데, 8월 15일 롯데전에서 무려 커리어하이 시즌을 달리고 있었던 홍성흔이 손등을 맞아 시즌 아웃을 당했다. 이때는 타점왕까지 가질수 있었는데…. 다만 결국은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응?

그러나 8월 24일 롯데전에서 등판을 하는데 이번에는 조성환의 커브볼이 빠지면서 헤드샷을 당하자 롯데팬들은 홍성흔도 시즌아웃을 당했는데 애까지 맞추나면서 오물 투척과 그 외로 경기가 10분정도 밀렸다.

2010년 윤석민이 맞춘 공은 3개였는데 3명 모두 롯데 선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2군에 내려갔는데, 몇몇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공황장애 때문에 내려갔다는 말은 죄다 허위 사실이다.[5]

그러나 그 외 경기도 그다지 좋은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승선을 하자 논란이 됐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 원본 편집]

어쨌든 승선에 한 윤석민은 11월 13일 대만전에서 류현진을 이어서 구원등판을 하러 올라가는데… 하필 이때 엔트리가 빠져서 퇴장을 당했다. 물론 대부분의 퇴장은 안좋은 의미인데 여기서는 윤석민 자체는 억울할 듯하다.[6]

사실 KBO면 몰라도 국제경기다 보니까 반응이 격해지면 몰수패를 당하거나 재경기를 할 수 있는데 하필 퇴장 당하고 나서 어필을 하는 모습이 적발됐다.

하필 이때 2010년 자체는 어떻게 보면 윤석민에게 있어 최악의 한해인데 여기까지 겹쳐서 주목을 받았다.

18일 중국전에 나와서 호투를 했고 19일 결승전에서는 5이닝 무실점을 던지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우승을 하자 비난은 적어졌다.

2011년[편집 | 원본 편집]

선동열 이후 투수 최초의 4관왕 커리어 하이 시즌

대체적으로 경기를 요약해보면 난타 당하는 경기는 2010년에 비해서 확실히 줄어들였다.

이때 최종성적은 172 1/3이닝 17승 5패 178탈삼진을 잡았다.

2012년[편집 | 원본 편집]

2011년보다는 성적이 좋진 않지만 무난하게 1선발로 활약해주던 시즌이였다.

2013년[편집 | 원본 편집]

어떻게 보면 2014,16,17 이전에 부상으로 제대로 못뛴 시즌이다.[7]

어깨부상으로 그다지 활약해주지 못했다. 불펜으로 굴리면서 계투로써는 쏠쏠한 활약을 했다.

메이저리그 시절[편집 | 원본 편집]

2013 시즌 종료후 FA를 선언하면서 다른 팀에 영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른 선수들은 2월까지는 계약을 했는데 윤석민 혼자 감감무소식이기에 유턴 가능성이 높았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했다.[8] 그러나 8월 31일 볼티모어 40인 로스터에 제외당했다. 본인은 2015년 시즌에 콜업을 도전한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성적도 안 좋으면서 다시 리턴이 됐다.

2015년[편집 | 원본 편집]

임창용에 이어 타이거즈 출신 30세이브 투수

마무리로써 70이닝을 던지고 3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부활의 다짐을 기록했는데…

2016년[편집 | 원본 편집]

혹사의 여파

90억이나 받고서 데뷔후 최소이닝을 먹어서 팬들은 대차게 까였다. 15시즌 중무리로 굴려진 탓도 있지만, 받은 돈도 돈일뿐더러 직구 구속이 130대로 떨어졌다는 게 굉장히 큰 불안요소. 1구당 242만원

2017년[편집 | 원본 편집]

2017년에는 아예 1군에 올라오지도 못했다. 그 덕에 팀의 2차 1라급 유망주 둘을 넥센에 팔아 마무리 투수 김세현과 대주자/수비요원 유재신을 사와야했다. 다행히 우승하기는 했다만...

농담이 아니라 이대로 KBO의 역대급 먹튀로 길이 남는 일만 남았다. 시즌 후 결혼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KBO 역대급 먹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9]

현재 팀 투수진이 헥터, 딘, 양현종, 임기영 외엔 썩 좋다고 보긴 어려우나 김윤동, 심동섭, 임기준, 이민우, 홍건희, 박정수 등 유망주급 선수들과 김세현, 임창용 등 베테랑들까지 아직 건재하다. 선발로도 불펜으로도 그의 자리는 없어보인다.

여담[편집 | 원본 편집]

원래 KIA에서는 등번호가 20번이었으나 28번은 말 안 해도 알 것이고. 21번을 거쳐 20번으로 돌아왔다.

국제대회에서는 주로 28번을 쓰는데 이유는 이승호와 진갑용이 20번을 쓰면서 겹치기 때문이다.

게임 《마구마구》를 엄청나게 잘 한다. 2009년 올스타전에서도 김현수와 《마구마구》 대결에서 승리했다. 주 투수는 임창용이라고…. 한때 자신의 카드로 썼으나 3엘리트를 싹 다 갈아엎고 잡덱으로 변환했다. 이때는 이병규 엘리트를 얻었다. 휴일에는 가끔식 《마구마구》에서 팬들과 플레이한다고 밝혔다.

각주

  1. 2016년은 아예 통채로 쉬고 2017년 6월 23일까지는 기사가 없다. 결국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2. 사실 이때 김광현이랑 대결중이였는데 마지막 두산경기에서 엄청나게 활약해 결국 김광현은 평균자책점 2위로 마감하게 된다.
  3. 대표적으로 팀 동료인 한기주와 삼성의 오승환 선수가 영 좋지 않았다.
  4. 지금은 KT 선수인 윤요섭 선수다.
  5. 나중에 밝힌 사실으로는 윤석민 자체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6. 그 이후 대체선수는 봉중근이 올라왔다. 그러나 몸이 덜 풀렸는지 난타를 당했지만 그 게임은 승리했다. 프런트가 대사고를 친 것이다.
  7. 2014년은 부상때문에 보다는 2013년에 후유증으로 성적이 대폭 하락된 것도 있다. 2016,17은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8. 지금 김현수가 뛰고 있는 팀이다.
  9. FA 최대금액은 이대호도 경기는 뛰었고 충분한 홈런을 때려주었지만 연봉대비 성적이 좋다고 보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