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철

劉熙哲.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3년 3월 13일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유봉진(劉鳳鎭) 목사 등이 주동하는 독립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했다. 이때 조종환이 경성에서의 3.1 운동 상황을 설명하며, 강화도에서만 침묵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고 격려하자 이에 찬동하여 염성오, 장흥환 등 십여 명과 함께 행동대원으로 발탁되었다. 3월 17일 황일남, 황윤실, 장동원, 장명순, 조상문과 함께 직산리 장윤백의 집에 만나 독립시위운동을 할 때 각자 태극기를 가지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군중을 이끌기로 하였다. 다음날인 3월 18일 황일남, 황윤실, 장동원, 장명순 등과 함께 강화읍 장터에 가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 1만여 매를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선두에서 시위행진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미결구류일수 180일 본형에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1] 1942년 8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유희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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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