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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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의 모습>

인간보다 먼저 우주를 비행한 동물이 있었다. 소련의 라이카라는 개가 그 주인공인데 '생물체가 우주에 적응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1. 개요[원본 편집]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냉전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극도로 싫어했던 두 진영은 모든 것에 대해 라이벌이었다. 특히 적보다 더 무서운 무기를 만들어 적이 아예 우리를 침략할 엄두도 못내게 하자라는 사상은 과열된 무기 경쟁을 낳게 되었는데, 그 무시무시한 무기 중엔 대륙간 탄도탄도 있었다. 이는 폭탄의 성능과 더불어 로켓 기술을 발달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로켓 기술이 우주 시대의 개막을 열었고 두 진영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갖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벌였고 마침내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보내게 되면서 최초의 타이틀은 소련이 가져갔다. 그리고 이어서 스푸트니크 2호가 11월 3일에 발사되는데 이것이 라이카가 탄 세계 최초의 '생명체가 탑승한 우주선'이 되었다.

실험과정[원본 편집]

실험동물의 선택[원본 편집]

소련은 단순히 위성을 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구 궤도 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무사귀환한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이를 위해 먼저 준궤도 로켓으로 대기권밖의 방사능, 온도, 밀도, 기압 등을 측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우주 비행이 생물체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떠돌이 개들을 모았다. 떠돌이 개들을 실험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그들이 장시간동안 활동에 제약을 받아도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군대도 버티지 못한 러시아의 끔찍한 겨울을 견뎌낸 이들은 생존력 하나는 인정받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개들 중에서도 암캐일 것, 무게는 5~7kg일 것 등이 있었는데 무게는 단연 로켓의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었고 암캐는 번식능력의 변화와 대소변을 처리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라이카라는 이름은 이 개의 품종이름이다. 말티즈나 푸들같은 단일 품종이라기보단 북부 러시아에서 사냥개를 부르는 전반적인 이름에 사용된다. 정확한 품종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개의 이름은 쿠드랴프카(Кудрявка)로 떠돌이 개를 구한 뒤 붙여준 이름이었다.

훈련[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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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가 입었던 우주복을 재현한 사진>

우주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훈련시켰다. 이 훈련에는 라이카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도 있었다. 알비나(Albina)와 무쉬카(Mushka)라는 개들이 그들이었는데 이들 중 라이카가 가장 온순하고 적응도 잘했기 때문 말하자면 라이카는 이들 중 최종 선발된 정예요원(...)인 셈. 이들의 훈련은 대표적으로

  1. 장시간동안 꼼짝하지 않고 있는 훈련.
  2. 위의 사진에 있는 우주복을 착용하는 훈련.
  3. 모의 로켓 발사 훈련.
  4. 원심력 적응 훈련.
  1. 좁은 공간에서의 적응 훈련.
  2. 우주식 섭취 훈련.

등을 거쳤다.

그리고 라이카 이전에 비슷한 훈련을 받았던 개들 중 데지크(Dezik)와 츠간(Tsygan)이라는 개들이 있었는데 우주궤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 110km까지 고고도비행이 무사히 마치고 귀환한 개들이 있었다. 보통 100km까지를 대기권이라고 하니까 엄밀히 말하면 최초로 우주로 나간 (그리고 무사히 귀환한) 개들은 이들이라고 말해야 옳다.

스푸트니크 2호[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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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2호의 내부 모습, 가장 밑의 구조물에 라이카가 탑승했다. 이 밀폐실은 길이 80cm, 직경 64cm로 환장할 정도로 좁다.>

스푸트니크 2호 프로그램은 소련으로써는 최초의 생물체 우주선이라는 타이틀도 따내어 미국을 제대로 엿 먹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이미 한번 엿을 먹였으니 한 방 더 먹이면 미국의 자존심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 2호는 최상단부 원자외선과 X선을 측정할 수 있는 장비, 두번째 무선 송신부, 최하층부에 밀폐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번째에 있는 장비는 스푸트니크 1호의 장비를 재활용한 것이다. 이는 주파수 20MHz~40MHz를 사용했으며 무선전신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주파수였다. 물론 전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주파수를 선택한 것.

밀폐실 앞에는 창문이 달려 있었으며 각종 생명 유지 장치와 라이카를 관찰할 관찰 장비들이 설치되었다. 주로 호흡과 심장박동을 측정하기 위한 장비였다. 이밖에도 자동 먹이 공급 장치와 공기 정화 장치등이 있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1957년 11월 3일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전 5시 30분 42초에 R-7로켓에 실려 발사되었다.

실험 결과[원본 편집]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이카는 귀환하지 못했다. 많은 문제가 발생했으며 애초에 일주일 간 살아있을 것이라고 예정되있던 라이카는 발사 5시간 후 사망하기에 이른다. 스푸트니크 2호는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라 각종 관측 결과를 지구에 전송해 스푸트니크 2호 프로그램 자체는 성공적이었으나 라이카에게는 그렇지 못한것 같았다.

발사 전 과학자들은 라이카의 가슴둘레의 변화로 호흡률을 측정하는 장비를 착용시켰다. 또한 흉부에는 심박수를 측정할 수 있는 전극을 심었으며 목에는 혈압을 측정하는 패드를 끼웠다.

발사하자마자 라이카의 심박수는 분당 260이라는 경이적인 숫자로 치솟았다. 평소의 3배정도 되는 수치였다. 이것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설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호흡도 4~5배로 가빠졌다. 궤도에 진입하여 진동이 덜해지자 안정적으로 돌아왔지만 라이카에게는 엄청난 공포였을 것이다. 그리고 약 일주일 간의 실험이 끝난 뒤 라이카는 '공식적으로' 자동 약물 주사 장치에 의한 안락사로 끝을 맺었다. 이후에 스푸트니크 2호는 총 162일 동안 지구를 2370회나 돌며 활동 하다 결국 1958년 4월 14일에 대기권으로 진입해 라이카와 함께 불타 없어진다.

라이카는 '공식적으로'는 안락사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진실은 5시간만에 사망. 2002년 디미트리 말라센코프 박사는 수십년동안 비밀에 붙여져 있던 라이카에 대한 죽음을 알리기에 이른다. 이 사람은 라이카를 포함한 우주 실험 동물 양성 프로그램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2002년 10월 10일부터 19일까지 치뤄졌던 국제 우주 비행 회의에서 진실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 내용이란게...

밀폐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과열로 인해 라이카는 이 열기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한것으로 보이며 공식적인 사인은 질식사라고 말하고 있다. 또 지구를 4바퀴 정도 돌았을 무렵 라이카의 신호가 완전히 끊겼다고 한다.

소련이 처음부터 진실을 밝히지 않았던 이유는 냉전 시대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 싶었던 소련의 상황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우주 실험 동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 사실을 수십년 동안 숨긴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험 이후[원본 편집]

물론 그 이후 우주 시대가 개막되어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궤도 비행을 하고 미국이 달에 사람을 착륙시키는 등 엄청난 발전을 했다.

또한 다른 실험 동물들, 벨카, 스트렐카, 무쉬카는 라이카의 희생을 딛고 우주 궤도를 선회한 뒤 무사히 러시아로 돌아오기도 했다. 또한 우주에 나간 최초의 동물이라는 타이틀을 확보한 라이카는 이후 추모식이 열린다던지 우표가 발행되고 추모곡이 만들어지는 등 라이카의 희생을 잊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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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 발행된 라이카 추모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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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 있는 라이카 추모 기념비>

<리듬 게임 팝픈 뮤직에 수록된 추모곡>

<라이카의 추모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