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서정원

수원 삼성의 레전드 서정원 국가대표 서정원

축구수도를 이끄는 감독1 

날쌘돌이

쎄오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서정원 (徐正源, Seo Jung-Won)
  • 출생: 1969년 12월 17일
  • 출생지: 경기도 광주군 2  
  • 국적: 대한민국
  • 신체: 173cm, 67kg
  • 포지션: 미드필더
  • 선수: 안양 LG 치타스 (1992~1997) - 상무 축구단 (1994~1995) - RC 스트라스부르(1997~1998)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9~2004) - SV 잘츠부르크 (2005) - SV 리트(2006~2007)
  • A매치: 87경기 16골
  • 지도자: 대한민국 U-20 전력분석가 (2009~2010) - 대한민국 U-23 전력분석가 (2009~2010)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0~20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12) -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 (2013~2018)

선수 시절[원본 편집]

유소년 시절[원본 편집]

1970년 경기도 광주 출생인 서정원은 다니던 초등학교에 축구부가 없어 효창운동장으로 축구를 하러 다녔다. 그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이천중학교 2학년 재학시절인 1983년 소년체전 선발전에서였다. 당시 거제고등학교 감독이었던 유기흥 감독은 서정원의 빠른 발을 보고 스카웃을 결정하였고, 서정원은 중학교 졸업 후 거제고등학교로 진학, 기량을 쌓아 나갔다. 유감독의 지휘 아래 서정원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였고, 마침내 86년 대통령배 고교축구선수권대회 에서 11골을 쓸어담는 괴력을 뽐냈다. 이를 바탕으로 서정원은 득점왕에 오르며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보였다. 서정원은 이를 인정받아 U-20 청소년 대표로 발탁되기에 이르렀고, 각 급 대표팀에 밥먹듯이 발탁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갔다. 이런 서정원을 각 대학들이 외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대우 로얄즈에서도 입단 제의를 할 정도로 서정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러나 서정원은 장고 끝에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였고, 대학 무대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며 1990년 월드컵 예비 엔트리에 들었으며, 1992년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당시 대표팀은 3무로 8강진출에 실패했지만, 스웨덴 전에서 골을 성공시키는 등 맹활약한 서정원은 유럽팀들의 러브콜을 한몸에 받았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레버쿠젠과 입단 성사단계까지 갔으나 병역문제로 인하여 아쉽게 꿈을 접고 말았다.

안양[원본 편집]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서정원은 1992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가 확실시 되었으나, 구단간 계약금 담합에 불만을 품고 신태용, 정광석, 김병수와 함께 드래프트 거부를 선언했다. 천신만고 끝에 기존 계약금 연봉외 약 1억 2천만원의 계약금과 연봉을 추가로 받아 이 문제가 해결되었고, 서정원은 드래프트에 참가 당연히 1순위로 LG 치타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팀 사정이 좋지 않아 프로 첫 시즌부터 붙박이 주전으로 낙점된 서정원은 21경기에 출전하여 2골과 4도움으로 연착륙하였고, 6위였던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993년부터 서정원은 LG에서 뛴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1994년과 1995년에는 각 2경기 출장에 그치게 되는데, 이유는 바로 국가대표 차출과 방위병 복무 때문이었다. 월드컵 예선과 월드컵 본선, 아시안컵 예선이 있던 3시즌 동안 서정원은 제집 드나들듯 대표팀에 들어가야 했고, 가뜩이나 홈경기만 출전할 수 있는 방위병 신분에 국가대표 소집이 걸려버리니 서정원은 LG의 경기에 출전할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결국 LG는 서정원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암흑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1995년 10월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국가대표 차출이 다소 완화되자, 서정원은 96년 안양 LG에서 27경기를 출전하면서 다시 핵심멤버로 자리잡는 듯 하였으나 1997년 부터, 98 프랑스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면서 6경기만을 출전하게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원본 편집]

1997년 월드컵 예선이 끝나자 서정원은 해외진출을 선언하였고, 98년 이적료 100만달러에 프랑스 리그앙의 SC 스트라스부르크로 진출하게 되었다.3 4 안양 구단은 계약조건에 따라 서정원에게 이적료의 절반인 50만달러를 주었고, 서정원은 국내복귀시 안양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12경기에서 4골을 넣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당시 강등권이 돼서 서정원을 급하게 영입한 스트라스부르의 강등권 탈출에 일조했다. 그런데 서정원이 스트라스부르로 영입됐던 때 리그 경기가 12경기 남았을 때였는데, 그 적절한 시기에 12경기를 모두 출전했고 팀의 상승세를 주도해 일약 스타로 떠오르며 다음 시즌 배번 11을 받았다. 여담으로 서정원은 프랑스 리그 데뷔전이었던 올림피크 리옹 전에서 데뷔골을 넣었고, 지롱댕 보르도 전에서는 당시 보르도의 신예 윙어 키키 무삼파5 와 서로 1골씩 주고 받으며 4-4 경기를 연출하기도 했다.6 

당시 스트라스부르의 감독이 뒤게페로(Jacky Duguépéroux)를 거쳐서 르네 지라르7 였다. 그러나 지라르가 다음 해에 프랑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가면서 감독이 바뀐 후 아시아 선수라는 이유8 로 기용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정원을 기용하지 않자 구단 수뇌부도 서정원에게 스위스 리그에 강팀으로 임대가는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당시에 본인 폼이 좋았던건 알았던 서정원은 거부. 실제로 그럴만도한게 당시에 잘 나가는 스트라스부르의 핵심 선수들이 서정원, 올리비에 다쿠르, 이스마엘 정도였다.9 서정원이 한국으로 왔을 때도 스트라스부르 서포터들이 편지를 보내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후로 팀은 부진에 빠져 결국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서정원은 그 시즌을 벤치에서 보냈으며, 계약기간이 끝난 후에도 발렌시아 C.F., 바이에른 뮌헨의 오퍼가 있었지만 에이전트의 업무미숙(...) 때문에 K리그로 복귀하게 된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다시는 볼 수 없는 그의 시원한 어퍼컷 한 방-

비록 해외 진출 때 잡음이 있긴 했지만, 많은 축구팬들은 서정원이 친정팀인 안양 LG 치타스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8년 12월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환한 미소를 드러낸 서정원에게는 수원의 파란색 용비늘 저지가 입혀져있었다. 어찌된 영문일까? 사정은 이랬다. 1998년 우승을 차지한 수원은 고종수, 데니스와 짝을 이뤄줄 테크니션을 찾고 있었고, 국내 복귀를 모색하던 서정원을 타깃으로 삼았다. 수원은 서정원에게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이적료 50만달러(한화 약 6억원), 연봉 2억원을 제시하였고, 결국 서정원은 수원과 입단계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안양을 배신한 것이었다.10 서정원의 수원 입단이 결정되자. 수많은 안양팬들은 분노하였고, 1999년 슈퍼컵에서 서정원의 유니폼을 불태우며 화끈한 국내 복귀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서정원은 이에 감사하다는 듯 후반만을 뛰고도 안양의 수비진을 휘저으며 수원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지지대 더비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자. 서정원의 제2 전성기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국가대표 차출이 더 이상 서정원을 향하지 않게 되자. 서정원은 수원에서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샤샤와 비탈리, 박건하도 서정원의 공격을 마무리 해주며, 수원은 1999 시즌 언터쳐블 팀으로 불리며 독주했다. 27경기 11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전관왕을 이끈 서정원이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된건 당연지사. 2000년에는 리그에선 다소 부진하였지만, 컵대회에서 3골을 몰아치며 컵대회 우승을 이끌었으며, 2001년에는 33경기에 나와 11골 2도움을 기록하며, 2001년 K리그 베스트11에 뽑힘과 동시에 아시아클럽컵과 아시아클럽챔피언쉽에서 결정적인 승부처마다 골을 집어넣으며 수원의 아시아 재패를 이끌었다. 2002년에도 서정원은 꾸준한 기량을 보여주며 32경기 9골을 기록하였으며, 2003년에는 자신의 시즌 최다 출장인 43경기에 출전하여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시즌 베스트11에 뽑히는 기쁨을 누렸다. 2003년이 끝나고 김호 감독이 물러나고,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서정원의 입지는 다소 좁아졌고, 플레잉 코치의 자격을 달고 2004 시즌을 시작했지만, 25경기에 나와 수원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우승 직후 서정원은 오스트리아 진출을 선언하면서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말년, 다시 해외 진출[원본 편집]

2005년에 은퇴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오스트리아 SV 잘츠부르크로 축구 연수를 겸해서 자유계약으로 이적하였는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12경기 2골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올렸고, 다음 해에는 SV 리트로 이적하여 리그에서 7골을 기록하면서 막 2부에서 올라온 팀을 인터토토컵 종합우승을 거두게 하면서 UEFA 컵에까지 출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덕분에 오스트리아 유명 일간지 <쿠리어>나 <슈포르트보헤>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외국인선수로 선정11 됐다. 그 활약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1·2부리그 팀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나 나이와 지도자 공부 문제로 은퇴하였다. 은퇴 직전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있던 은사 김호 감독이 선수로 뛰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했다.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100m를 11초에 끊는 준족의 빠른 스피드를 활용 좌우측 측면을 휘젓는 플레이를 선호하며 체력이 좋아서 가끔은 윙백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90분 내내 미친듯이 움직였다. 한국의 윙 스페설리스트 계보를 이을 만한 선수.12 특히 1994년 월드컵 당시 스페인전과 독일전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백미.

또한 가끔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기도 하는 등 발을 활용한 능력은 나이를 먹어도 최고 수준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가 죽자 맨유의 라이언 긱스처럼 중앙과 측면으로 움직이며 상대 수비수를 속임수로 벗겨먹는 플레이를 선호하였으며 K리그 말년에는 차범근 감독 부임 이후에 윙백으로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에는 SV 잘츠부르크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하다가 SV 리트로 이적,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윙으로 돌아가서 2년 더 활약하다 은퇴했다.

지도자 경력[원본 편집]

코치 시절[원본 편집]

오스트리아에서 선수생활과 지도자 수업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서정원은 200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서정원 축구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거기에서 감독을 맡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정원은 곧바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U-20 청소년 대표팀의 코치로 들어가게 되었고 대한민국의 U-20 월드컵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서정원은 이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도 역입하였으며, 2011년에는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4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코치에 선임되었지만, 동년 11월 조광래 감독이 불명예 퇴진함에 따라 자진사퇴13 하여 12월 수원의 수석코치로 부임하게 되었고, 1년이 지난 2012년 12월 12일 사퇴한 윤성효 감독의 후임으로 수원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원본 편집]

2.1. 2013 시즌[원본 편집]

윤성효 감독이 2012년을 끝으로 팀을 떠남에 따라 수원의 제4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리그 초반에 신선한 선수 기용으로 수원 팬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특히 번외지명으로 들어온 김대경이나 그동안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조지훈을 중용하고 있으며, 곽희주나 에디 보스나의 노쇠화로 인한 수비 불안으로 수비진의 세대교체 필요성을 느꼈는지 민상기나 연제민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인하여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지도자로서의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개의치 않고 있는 듯 하다. 코칭 스타일은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고 오랜 시간 중용하는 편으로, 정대세의 북패 전의 퇴장 이후에도 그를 격려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코칭 스태프와의 의견 교환을 중시하는 편으로, 이병근, 최성용 코치와의 토의 장면이 눈에 많이 띈다. 

결국 2013 시즌 수원은 리그 5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샀다. 그러나 서정원 감독의 탓만은 아니다. 사실 전전임 차범근 감독 시절부터 리빌딩 필요성을 제기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그때마다 분노의 현질과 반짝 성과를 올리면서 흐지부지 묻혔다. 덕분에 묵혀둔 유망주들이 주전을 뛰어넘는 발전을 보이지 못하고 정체했는데, 2013 시즌 내내 주전들이 줄부상에 시달린데다 구단의 지원이 전례없이 줄어들면서 외부에서 전력보강도 힘들었고, 결국 상위권으로 치고나갈 동력이 없다시피했다. 결국 홈 최종 경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를 했다. 초보 감독으로써 혹독한 수업을 치뤘다고 봐야 할 듯 하다. 감독 뿐만 아니라 코칭 스태프들 또한 초보티를 벗어나지 못한 40대가 주축이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서정원 감독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내년 시즌을 지켜봐야 할 듯.

2.2. 2014 시즌[원본 편집]

시즌 초반부터 3백을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적극 나타냈다. 또한 모기업의 지원이 예전과 같지 않고, 주전 선수들이 이탈하는 등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전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도전자로써 K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 개의 우승컵 정도는 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K리그 미디어 데이에서 밝혔다. 

FA컵은 상주 상무에게 발목을 잡혀 어처구니 없이 32강에서 광탈. 리그에서는 미숙한 교체 전략으로 숱한 승점을 날려먹으며 많은 지탄을 샀으나 월드컵 휴식기 이후 자신이 원하던 팀의 색깔을 대충 구현해내며 안정적으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도 더럽게 안 뛰고 롱볼 로또만 노리던 예전과 비교하면 공격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이 충실해졌으며, 질 땐 지더라도 2012 시즌 포항전 0:5 대패나 2013 시즌 가시와전 2:6 대패 같은 안드로메다 관광 스코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연무나 연패의 비중도 확연히 줄어들어 수비가 안정됐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안 그래도 팀에 대한 지원이 팍팍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에 감독을 맡아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옛날이라면 좀 한다 싶은 선수를 몸값을 거하게 불러 데려오기 일쑤였으나 지금은 유스 출신 비중을 늘림과 함께 서정원 감독이 직접 대학 축구나 2부 리그, 실업 리그, J리그 등을 살펴보며 인재를 고르고 있다 한다.

2.3. 2015 시즌[원본 편집]

여전히 구단 투자는 요원한 가운데 2015년 8월 현재 줄줄이 이어진 주전급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가용선수 19명이라는 악조건에서도 고군분투하며 1위 전북을 상대로 승점 7점차로 추격하고 있다. 감독 3년차에 접어들어 경험도 쌓이고 전술도 안정되었으며 유스 선수들을 성장시키는 능력만큼은 대단하다는 평가다. 권창훈, 민상기, 연제민, 구자룡 등 젊은 수원 선수들이 급격히 성장한게 바로 그 예. 특히 권창훈은 서정원 감독이 지도하면서 출장수를 늘리기 시작해 지금은 대표급으로 성장했다. 압도적인 지원에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전임 감독들에 비하면, 반토막 이상으로 잘려나간 예산에도 불구하고 리그 2위를 수성하고 있는 데에는 서정원 감독의 지도력이 그만큼 훌륭하다는 반증. 항간에는 구단 지원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면서 고군분투하는 서감독을 보며 찡하다는 반응이 많다. 

하필이면 홈에서 열리는 슈퍼매치를 앞두고 스승 크라머 감독의 부고가 날아왔다. 세상을 떠난 스승에게 승리를 바치기 위해 검정색 정장을 입고 슈퍼매치에 임했지만, 북패에게 3:0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동안 삼성의 스포츠단이 제일기획으로 넘어가면서 투자가 줄어든 걸로 과도한 쉴드를 받았지만, 2015년 K리그 연봉 공개 현황에서 전북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구단은 나름 해줄만큼 해줬다는 것이 드러났다. 다만, 이 시즌이 서정원 감독 커리어에서 가장 우승권에 근접한 시즌이었고, 정대세를 헐값에 J리그로 이적시키는 병크를 저지른 끝에 막판에 힘이 모자라 준우승에 그친 것을 보면 결코 구단이 잘했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시 1위였던 매북 또한 매두를 허베이 종지로 팔았고, 무엇보다 그 염기훈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

2.4. 2016 시즌[원본 편집]

조나탄의 맹활약으로 후반기 도약과 함께 FA컵 우승으로 6년 무관을 깨다14 

정성룡이 빠지고 그 자리를  노동건, 양형모로 돌려막고 있지만 둘다 상태가 안좋다. 

또한 1골 먼저 넣은 뒤 어설픈 잠구기로 이겨놓다가 정신빠진 모습을 보이며 80분 이후 실점이 공식으로 자리잡고 무승부 혹은 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34라운드까지 무려 무승부를 17차례 기록하면서 성적 또한 급전직하, 하위 스플릿으로 밀려난 것도 부족해서 10위를 기록했다. 11위 인천과 승점 5점차, 12위 수원FC와 승점 7점차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승강 플레이오프나 곧장 강등까지도 가능한 판국이다. 

초여름부터 팬들 사이에서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루머가 나돌았는데, 팀이 심각할 정도로 곪았다는 폭로 기사가 터져나왔다. 단, 워낙 과장으로 악명높은 남장현 기자다보니 어느 정도는 걸러 읽을 필요가 있다. 그 와중에 1번 사례는 이정수였다고.

33라운드 수원 더비에서 수원FC에게 4:5로 역전패하며 10위를 기록,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졌다. 전반 종료까지 3:2로 앞서고 있었으나  후반 잇달아 3골을 내주며 역전을 당하며 똑같은 패턴으로 패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성난 수원팬들이 모여 단장 퇴진을 외쳤지만, 대다수 축구팬들은 팀 사정 이전에 서정원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있다. 몇년째 일상다반사로 임금 체불 사태를 겪는 인천도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심지어 인천은 같은 날 울산을 3:2로 대파하면서 더욱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조나탄이 영입된 이후엔 서정원 감독이 구상했던 플레이가 나오게 되었고 막바지 팀을 추스려 팀을 하위스플릿 최고 순위까지 올려두고, 기어코 FA컵 결승까지 진출했다. FA컵 결승 상대는 숙명의 FC 서울이었고 쉽지않은 경기를 치룬 결과 승부차기에 돌입, 스코어 9:9 상황에서 골키퍼들이 차는 순번이 되었는데15  결국 마지막 키커인 양형모가 골을 성공시켜서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려서 수원의 6년 무관을 끊고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 FA컵 우승으로 인해 k리그 최초 FA컵 MVP출신으로 FA컵 우승컵을 들어올린 감독이 되었다. 동시에 수원을 맡은 4명의 감독 모두 FA컵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16 

2.5. 2017 시즌[원본 편집]

시즌 시작 전에는 그리 많은 돈은 쓰지 않았지만 여러 곳에 알맞은 보강으로 지난 시즌보다는 성적이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저번 시즌을 그래도 답습한 데다 다른 상황이 악화된 모습이었다. 리그에선 첫 5경기에 4무 1패,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약체 이스턴 원정에서 1:0으로 신승한 경기를 빼면 역시나 무승. 그래도 근근히 팀을 먹여살리던 조나탄마저 부진하다. 그래서인지 관중 수도 줄어들고 야유로 심해지는 등 총체적 난국이다.

단연 백미는 4월 1일 있었던 인천과의 경기로, 70분까지 3:1로 이기고 있던 경기를 3:3으로 따라잡혀 무승부를 기록했다. 70분부터 양팀이 교체 선수를 투입하며 전술의 묘를 살리던 시점이었다. 서정원은 걸어잠그기 위해 골을 넣었던 장현수와 조나탄은 교체 아웃하며 주도권을 내주기 시작했고 인천의 이기형 감독은 82분 박용지를 투입, 2분 뒤인 84분에 문선민의 골을 도우며 동점으로 따라잡는 등 용병술로 완패했다. 이에 인천의 팬들은 SEO TIME이라는 걸개를 걸었고, 이것이 수원팬들과 타팀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서정원 감독에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다.

4월 16일 광주 FC전 홈경기에서 졸전끝에 0:0 무승부로 2경기 연속 0:0, 시즌 5무 1패까지 몰리자 급기야 폭발한 서포터들에게 쎄오 아웃!!!!이란 콜까지 듣고 말았다. 하지만 이게 각성제가 되었는지 이후 3연승 행진 등 차츰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가며 5위까지 올라왔다.

6월 18일 14라운드 북패전 홈경기에서 1:2로 역전패당했다. 근래 북패가 굉장히 성적이 나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분노는 한층 더했다.

6월 21일 15라운드 광주 FC전 광주 원정경기에서 0:3으로 압승을 거두며 분위기를 반전했다.

6월 25일 16라운드 강원 FC전 홈경기에서 전반 3:1로 여유롭게 앞서나가다  세오타임이 발동되었다. 후반 77분 89분 잇달아 골을 내주면서 무승부에 그쳤다. 특히 89분의 골은 조원희의 자책골이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그 강원전 이후로 재계약한 조나탄의 확실한 동기부여로 득점력이 가히 폭발하기 시작하면서 6승 1패로 선방 중이다. 팀 순위 역시 2위로 급등,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희망을 이어갔다.

다만 조나탄이 8월 슈퍼매치 이후 부상 당하면서 7월의 무시무시했던 기세는 온데 간데 없게 됐고, 그나마 상위권에서는 잘 잡던 제주17 에게 마저 신화용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홈에서 패배하면서 올시즌 상위 스플릿 팀 모두에게 패배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 중에 특히 전북, 서울, 울산에게는 아예 승리가 없다. 다만, 작년 시즌과는 달리 수원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팀들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중이다.

상위 스플릿만 남은 현 시점에서 ACL 티켓이 현실적 목표가 된 상황이고, 재계약 마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시즌 후에 논의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라18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다. 과연 강팀 판독기의 오명을 벗고 상위 스플릿 선전과 FA컵 2연패 도전에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상위 스플릿 첫 경기인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조나탄의 화려한 복귀와 함께 2:0 완승을 거두며 2년 2개월만에 울산전 승리를 신고했다. 10월 18일, 슈퍼매치를 앞두고 재계약 기사가 올라왔다. 계약기간은 2+1년. 팬들 사이에서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2.6. 2018 시즌[원본 편집]

홈에선 부진한 성적과 OME급 경기력으로 세오 OUT! 원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원정만 나가면 깡패짓을 하며 꾸역꾸역 승점을 벌어오기 때문에 원정서로 불린다. 이러한 갭 때문에 수원 경기를 꾸준히 챙겨보지 않는 타팀 팬들은 어쩌다 한번 본 수원 경기를 보고 '이런 경기력으로 어떻게 리그 상위권이지?'하고 혼란하다 혼란해를 외치게 된다.

수비 안정을 위해 3백을 사용하지만 잇단 수비 불안을 노출하며 승점을 날리고 있다. 특히 전북과 서울의 승점자판기나 다름없는 신세라 팬들의 분노가 더하다. 네이버 스포츠 뉴스의 댓글을 보면 타팀 팬들이 쎄오 종신을 외치며 조롱하고 있다(...).

3월 1일 리그 첫 경기에서 전남에게 1:2로 패하며 좋지 않은 출발을 했지만, 그 후 어찌어찌 꾸역승을 거두며 리그 2위로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전반기 성적은 7승 4무 3패, 승점 25점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문제는 라이벌 서울을 상대로 1무 1패로 부진했고, 리그 1위 전북을 상대로도 패하면서 여전히 강팀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 그래도 어쨌든 전반기를 꽤 괜찮게 마무리했기에 후반기를 기대할 만 하다고 생각했으나...

월드컵 브레이크 이후 경기력이 매우 저조하다. 7월 7일, 후반기 첫 경기인 제주전에서 상대 팀에 3어시(...)를 해주는 예능 축구를 선보인 끝에 2:3으로 패했고, 이후 이번 시즌 부진하고있는 전남을 2:0을 잡아냈으나, 7월 14일, 전북과의 경기에서 명백한 실력차를 드러내며 3:0으로 완패했다. 분명 리그 1위와 2위의 경기였는데, 이 날의 경기만 보면 그 격차가 어마어마했다. 그것도 플랜 A만 고집하다 맞춤전술에 두들겨 맞는 기존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했기에 팬들은 그저 한숨만 나올 뿐.

7월 18일, 인천과의 경기를 5:2로 대승을 거두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상대가 전남과 마찬가지로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인천이었기에 도취될 만한 승리는 아니었다는 평.

7월 21일,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던 경남과의 경기는 2:2로 비겼다. 이 경기를 잡았더라면 경남을 따돌리고 2위를 굳힐 수 있었던 수원으로서는 아쉬운 결과.

7월 29일, 강원을 2:0으로 잡아내며 승점을 추가했는데, 문제는 이제 팀에 녹아들어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바그닝요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 버렸다. 빡센 일정으로 갈길이 바쁜 상황에서 서정원 감독의 고민이 깊어질 듯.

8월 4일, 매번 호구잡던 상주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거뒀는데, 이번에도 '상대의 맞춤전술 + 임기응변 부족'이라는 패턴 반복을 보여주며 승리를 놓쳤다.

8월 12일, 울산과의 경기에서는 답답한 경기력을 보여주다 막판 황일수의 한방을 얻어맞고 0:1로 패했다.

8월 15일, 북패와의 광복절 슈퍼매치에서 1:2로 역전패했다.  한눈에 보이는 전술에 늦은 교체로 후반 추가시간에 안델손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 올 시즌 북패 상대로 1무 2패를 기록하게 되었고, 반대로 북패 입장에서는 이 경기로 13경기 연속 슈퍼매치 무패기록을 갱신했다. 팬들은 그저 혈압이 오를 뿐. 

거기다 8월 19일, 리그 최하위 전남에게 무려 4:6으로 패배했다. 그동안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서정원 감독이지만, 이 경기의 패배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상대는 리그 최하위이자, 성적부진으로 감독이 사임한 상태의 전남이었다. 이로서 8월에만 1무 3패, 4경기 10실점을 기록하며 리그 3~4위권팀 답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팬들은 이제 경남과의 2위 싸움은 커녕,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중.

게다가 이 경기에서 서정원이 모 소모임을 향해 째려보면서 버스를 탔다는 것이 알려져 수원팬들의 실망을 더하게 했다.19  결국 서포터즈인 프렌테 트리콜로는 제주 원정을 보이콧했고 상황에 따라 매남 홈경기 보이콧도 고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8월 25일, 경남과의 경기를 1:0으로 이기면서 한숨 돌렸다.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일정도 꼬이고 부상 악재까지 겹친 상황이라 걱정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신화용의 선방쇼에 힘입어 후반에 터진 곽광선의 벼락골을 잘 지키내면서 승점 3점을 챙겼다. 이 경기마저 패했다면 본인도 팀도 위험해질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승리를 거두면서 4위를 굳힐 수 있었다. 다만 이 승리가 반등의 계기가 될 지는 지켜봐야 할듯.

그러나 8월 27일, 결국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다음 날인 28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두고 나온 갑작스러운 사퇴 기사라서 수원 팬들은 물론 타팀 팬들도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후속 기사에 의하면 경남전 이후 사퇴 결심을 굳혔고 바로 사퇴 의사를 전달하였으나 구단 측은 당황하여 어떻게든 서정원 감독을 만류하였지만 8강전이 열릴 전주에도 동행하지 않았고 이미 클럽하우스의 짐을 다 정리하고 나왔다고 한다. 더군다나 27일에 예정된 8강 기자회견에서 갑자기 감독이 사라지면 그것 또한 논란이 되기 때문에 수원 구단 측은 결국 그 전에 사퇴 기사를 발송하였다고 한다. 대행으로는 서정원이 감독 자리를 비웠을 때 임시로 메꾸었고 기자회견에도 동행한 이병근 코치가 맡을 예정이다. 기사

10월 15일, 서정원 감독의 복귀가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서정원 감독의 복귀전은 17일 남패와의 FA컵 8강전 부터라고 한다. 기사 다만 팀을 맡는건 이번 시즌 까지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기사

10월 17일, 복귀 후 첫 경기인 남패와의 FA컵 8강전에서는 또 쎄오타임이 작렬하며 앞서던 경기를 2:2로 승부차기까지 끌고갔으나 신화용의 선방쇼로 남패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10월 20일, 포항과의 리그 33라운드 경기에서는 주전들에게 휴식을 주고도 2:0으로 승리하며 정규 라운드를 4위로 마무리했다. 또한 이어지는 ACL 4강 가시마와의 2차전도 마음 편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0월 24일, 가시마전에서는 3:3으로 비기면서 종합 스코어 5:6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전반에 선제골을 내준 이후 후반에 3골을 몰아치는 저력을 발휘했지만 흥분한 선수들이 냉정함을 잃어버리면서 또 쎄오타임이 작렬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팬들은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격려해주자는 평. 

ACL을 놓쳤으니 기대할 것은 FA컵 뿐이었는데, 4강에서 울산에게 패배해 FA컵 우승마저 물건너갔다. 거기다 리그에서도 5위 포항에게 3:1로 패배해 4위 자리마저 내주었다. 팬들도 ACL 탈락때까지는 격려하는 분위기였으나 리그, FA컵, ACL 세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눈앞에 오자 여론은 사퇴 이전 이상으로 급격히 나빠졌고, 이럴꺼면 왜 돌아왔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리그에서 이어진 울산과의 리그 리벤지 매치 역시 0:2에서 3:2로 뒤집는데 성공했으나, 감독 커리어 내내 따라붙던 뒷심부족으로 또 쎄오타임이 작렬하며 추가시간 실점끝에 3:3 무승부. 이로써 복귀이후 1승 3무 3패를 기록중이며 5경기 무승의 늪에 빠졌다. 답이 없다

결국 2018년 11월 20일 수원 구단측에서 더 이상 재계약하지 않고 새 감독을 선임할 계획을 밝혔다.기사

11월 25일 리그 37라운드 매남전도 역시나 또 쎄오타임이 작렬해 쿠니모토에게 극장골을 허용. 2:1로 지면서 6경기째 무승행진 중이다. (...) 경기 종료 후 이어진 4위 포항의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이 완전히 좌절되었고 순위마저 6위로 추락. 팬들을 해탈의 경지로 내몰았다. 

마지막 경기인 남패전에서도 19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한골도 못 넣는, 영 안 풀리는 경기 끝에 2:0으로 완패하며 고별전을 씁쓸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다. 포백을 보호하기 위한 수미로 뜬금없이 기용된 조지훈은 역시나 구체적인 전술지시가 없었던 탓인지 생각없이 앞으로 치고나가며 포백 라인 위에 허허벌판을 만드는 극발암축구를 구사했다.

최종 성적은 13승 11무 14패, 리그 6위. 상위 스플릿 무승이라는 초라한 기록으로 내년 ACL 진출권조차 따내지 못했다. 경기 후 고별행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이 날 경기장을 찾아온 관중은 4000여명뿐. 과거 팀의 레전드 선수였던 서정원이 감독으로서 보여준 답답한 행보에 얼마나 많은 팬들이 실망하고 등을 돌려버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후 사간 도스에서 서정원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했다는 기사가 뜨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사간 도스측만 결정을 내렸을 뿐 아직 서정원 본인의 의사는 불명.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자기소개서 형식으로 작성된 인터뷰에서 트와이스 팬이라는게 드러났다. 딴 감독들이야 아이돌 아닌 이승철, 임창정을 써내거나 요즘 아이돌을 써놓되 "애들이 좋아한다"라고 했지만 이 분은 그런거없이 딱 트와이스라고 써놓았다.20 21 

  •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는 정원을 가꾼다고 한다. 감독이 된 지금도 술, 담배는 물론 탄산음료까지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 아들인 서동한 역시 축구선수인데, 2018년 현재 매탄고 2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다.다만 아버지와 다르게 폭팔적인 스피드의 윙어가 아니라 공격 형 미드필더 또는 중앙 미드필더라고 한다.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로 뛰던 시절에 잠시 함께하였던 독일 출신의 데트마어 크라머 감독이 그의 롤 모델이라고 하며, 이는 올림픽 멤버였던 신태용도 마찬가지다. 수원의 감독으로 승격된 후 직접 독일로 건너가 크라머를 찾을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독일의 영향을 좀 받은 편이라 울리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서정원 본인은 현재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장본인으로 크라머를 꼽고 있다. 하필이면 북패의 슈퍼 매치를 앞두고 크라머 감독의 부고를 듣는 바람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22  
  • 여담이지만 이근호보다 먼저 "월드컵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 중 가장 연봉이 적은 선수"라는 씁쓸한 칭호가 붙었다. 1990년 병장 월급이 9,400원이니 진짜 작은 셈. 그 당시 서정원은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도중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 K리그 공식 유튜브 계정에 레전드 플레이어로 소개되었다.
  • 발이 하도 빨라 코흘리개 시절부터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3학년 때는 학년을 하나 속여 4학년 이상 출전하는 광주군(현 광주시) 학년별 육상대회에까지 나가 60m, 멀리뛰기, 높이뛰기 모두 3등 안에 들 정도였다.
  • 이런 서정원의 주력은 어릴 때부터 남한산성을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키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때 키워진 체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 최순호, 홍명보와 더불어서 90년대 유럽 진출에 가장 근접한 몇 안되는 선수이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끝나고 벤피카의 단장이었던 에우제비우가 직접 나서서 서정원을 영입하려 하였으나 축구협회가 이적동의서를 써주지 않아 무산이 된 것은 유명하다. 서정원의 영입실패가 굉장히 아쉬웠던지 이후 에우제비우는 2009년 홍명보를 만나 서정원의 안부를 물어보면서 아쉬움을 계속해서 나타낸 바가 있다. 이 때 국가대표 감독인 차범근도 축구협회가 시킨건지 월드컵 예선에서 서정원이 꼭 필요해서 그런지 언론 인터뷰에서 입단테스트일 뿐이라며 서정원이 속고 있다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결국 서정원은 대표팀에서 이탈했고 차범근이 사과를 하고 나서야 돌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