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산드로

수원의 전설적 트리오인 --'로' 라인의 일원

프로필[원본 편집]

  • 이   름: 산드루 카르도주 두스 산투스 (Sandro Cardoso dos Santos)
  • 출생일: 1980년 3월 22일
  • 국   적: 브라질
  • 출생지: 상파울루
  • 포지션: 공격수
  • 신   체: 182cm, 78kg
  • 소속팀: AA 포르투게자 (1998~2000)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2002) →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  (2003~2004)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5~2007) → 전남 드래곤즈 (임대) (2007) → 창사 진더 (2007~2008) → FC 툰 (2009) → 산둥 루넝 (2009) → 창사 진더(2010) → 산투 안드레 (2013)

선수 경력[원본 편집]

브라질 시절[원본 편집]

1998년에 브라질의 AA 포르투게자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정식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주로 U-18경기와 리저브 경기에서만 활약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원본 편집]

2000년 특급 외국인 선수였던 샤샤를 내주고 데려왔던 황선홍이 1경기만 뛰고 시즌 아웃이 되는 바람에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수원 삼성은 샤샤, 비탈리를 모두 방출하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하리와 루츠 외에 외국인 공격자원을 보강하길 원했다. 이 때 데려온 선수가 루키와 산드로였던 것. 당시 수원 프런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선수는 루키였고, 산드로는 그냥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심정으로 데려온 선수였다. 당시의 이적료와 연봉에서 산드로는 임대료로 10만 달러 루키는 60만 달러로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던 것도 그 때문. 하지만, 뚜껑을 열고보니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루키는 나오는 경기마다 삽질을 일삼으며 5경기에서 고작 1골만을 넣었고, 산드로는 정규리그에서 8경기에 나와 4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결국 루키는 정규시즌 도중 퇴출, 산드로는 완전 이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었고, 2000 아디다스컵에서는 3경기에 모두 나와 1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0년 가능성을 보인 산드로는 김호 감독의 전폭적인 믿음아래 2001시즌을 맞았고 2001시즌을 산드로의 해로 만들었다. 앞선 2001 아디다스컵 결승전에서 산드로가 결승골을 기록하며 우승을 거둔 수원은 비록 성남 일화에 밀려 정규리그 우승을 하지는 못했지만, 고종수데니스와 함께 만들어낸 고데로 트리오는 99년에 이은 최강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산드로는 이 해 정규리그에서 22경기에 선발출장, 13골 3도움이라는 활약을 보이며 11골을 기록한 경쟁자 파울링요와 우성용을 따돌리고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산드로의 진가는 국제무대에서 더욱 더 두각을 드러내었는데, 2001년 제20회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산드로는 전반 14분 통렬한 슈팅으로 결승골을 기록, 팀의 아시아 재패에 큰 공을 세웠고, 이어 제7회 아시안 수퍼 컵에서도 맹활약, 팀의 우승에 앞장섰다.

2002년에도 산드로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당시 알렌과 미트로와 함께 주전 경쟁이 예고되었지만, 산드로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주전 자리를 따냈다. 2002년 정규시즌에서 산드로는 22경기에 출전 8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한 반면, 미트로와 6경기 무득점, 알렌은 경기에 나오지도 못한채 방출당하고 말았다. 산드로의 활약은 FA컵에서도 이어졌고, 수원은 창단 처음으로 FA컵을 제패했다. 이러한 산드로의 활약에 당연히 J리그는 군침을 흘렸고, 산드로는 2003년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로 이적했다.

제프 유나이티드[원본 편집]

산드로는 일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최용수와 함께 짝을 맞추며 23경기 8골로 활약했고, 이듬해인 2004년에도 22경기 9골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3년 5월 자신의 집에서 약혼녀의 친구를 성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되었다. 첫 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받았으나, 지방법원에서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원본 편집]

결국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혀 일본 축빠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받았고, 산드로 본인도 더 이상 일본에서 생활하고 싶지 않았기에 수원 복귀를 강력히 희망했다. 이에 수원은 이미 전력 외 판정을 받은 가비와 15만 달러를 추가로 내주는 대신 산드로를 다시 데려왔다.2 3 

이 시즌 주빌로 이와타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교체 투입된 뒤 결승골을 기록해 2:1 승리를 견인하며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해으며, 이후 매북과의 K리그 컵대회에서 다시 교체 투입되어 결승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공헌하며 슈퍼 서브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곤 하지만 후임 차범근 감독의 축구는 김호 스타일의 축구가 아니였고, 2001년에 비해 살도 쪄 제대로 기량을 펴지 못한 산드로는 22경기에 나와 3골을 기록하는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 산드로의 부진과 함께 수원의 성적도 추락을 거듭, 리그 10위로 추락한다.

2007년에는 15경기에서 3개의 어시스트만을 기록하며 부진환한 활약을 보였다.

전남 드래곤즈[원본 편집]

결국 산드로는 전남으로 임대 이적한다. 그런데 전남에는 산드로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바로 산드로 히로시. 덕분에 한 팀에 같은 이름의 외국인 선수 두 명이 소속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구분을 위해 임대로 들어온 산드로는 등록명을 산드로 C4 로 바꾸었다... 기대와는 다르게 산드로 히로시가 돌아오면서 주전 경쟁이 시작된 산드로는 연이은 부진을 기록하며 히로시와의 주전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산드로C는 4경기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한국 무대를 떠나고 말았다.

6. 이후[원본 편집]

2007년 후반기 산드로는 중국 슈퍼 리그의 창샤 진더5 로 팀을 이적한 산드로는 2시즌 동안 36경기 6골로 활약했고, 2009년 스위스 리그의 FC 툰에서도 활약하며 13경기 5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9년 중국의 산동 루넝으로 돌아온 산드로는 28경기 5골을 기록한뒤 산둥 루넝을 거쳐 다시 창샤 진더로 이적했고, 이후 4경기 3골을 기록한뒤 방출. 이후 브라질 팀인 산투 안드레로 이적했지만 거기서도 방출. 이후 커리어가 몇 년이 지나도 갱신이 없는 걸 보면 사실상 은퇴한 듯.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듬직한 체격에 강력한 파워와 팀 플레이 능력을 보유했으며, 브라질 출신 특유의 유연한 드리블과 정확하고 묵직한 슈팅력, 순간적인 돌파력을 가졌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수원 1기 시절 활약으로 인해 한 때 축협에서 2002 FIFA 월드컵에 대비해 산드로를 귀화시켜 국가대표팀에 선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 샤샤와 마찬가지로 산드로 역시, 해트트릭에 힘입어 득점왕에 오른 대표적인 선수이다. 당시 우성용, 파울링뇨와 9골로 공동 선두에 올랐던 산드로는 2001년 9월 9일 매북의 홈경기에서 전반 35분, 후반 19분, 23분 골을 성공하며 해트트릭을 달성해 득점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고, 결국 2001년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 주빌로 이와타에 굉장히 강했던 선수인데, 2001년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상대도 주빌로였고, 다시 수원에 돌아온 2005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유일한 골을 넣은 팀이 주빌로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참 좋았는데....
  • 2001년 11월 24일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스리랑카 사운더스 SC와의 아시안클럽축구선수권대회 예선전에서 8골을 넣으며 수원의 개인통산 최다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경기는 수원이 18: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 당시 매북 소속이자 지금은 아산의 감독인 박동혁과 강렬한(?) 입맞춤을 한 적이 있었다... 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