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밀그램의 복종 실험

심리 실험계의 양대 산맥[원본 편집]

 과학이나 심리학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한 번쯤은 투톱을 달리는 두 실험을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둘 다 수많은 논란거리를 남겼으며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 주었다.
 1961년 예일대학교 조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이 했던 일명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라고 불리는 것과
 1971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수였던 필립 짐바르도박사가 했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에 의한 포로 학대 사건이 터지면서 재조명 받게 되었고 또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유명한 실험이 되었다.

스탠리 밀그램[원본 편집]

 Stanley Milgram (1933-1984),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
 그의 이름을 딴 '밀그램의 복종 실험'으로 유명하다.1960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예일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다. 그의 복종 실험도 이곳에서 진행하였다.
 또다른 유명한 실험으로는 길거리에서 세 명 정도만 하늘을 쳐다보아도 다른 사람도 모두 따라서 하늘을 본다는 것도 있다.
 대략 19분 30초 부터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담으로 꽤 괜찮은 다큐이니 한 번 쯤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원본 편집]

실험의 목적[원본 편집]

 밀그램은 사람들이 아무리 잔혹한 명령이라도 복종하는 이유가 그 사람의 성격에 있다기 보다는 어떠한 상황에 처하느냐에 따른다고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에서는 교육을 잘 받고 이성적인 사람도 그 상황에 따른 권위에 굴복해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이 악명 높은 실험을 구상하고 실행했다.

실험 과정[원본 편집]

3-2-1. 실험준비[원본 편집]

   먼저 밀그램은 지역신문에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연구하는데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광고를 냈다. 한 시간 정도되는 실험에 4달러와 교통비 50센트를 준다는 조건이었다. 곧 지원자가 나타났고 밀그램은 지원자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그 실험과정이란
 1. 지원자들을 교사와 학생으로 무작위로 나눈다.
 2.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의자에 묶여 '징벌'을 받을 준비를 한다.
 3.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은 간단한 질문을 하고 학생이 틀리면 약간의 전기 충격을 가한다.
 가 전부였다. 간단한 질문이란 암구어같이 하나의 단어를 말하면 사전에 그 단어와 연결되어 있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화랑 - 담배처럼.
 전기 충격은 처음에는 15볼트, 그 다음은 30볼트, 45볼트... 하는 식으로 늘어나 최고 450볼트까지 가할 수 있었다.
 이제 준비는 끝났고, 실제 실험만이 남아있었다.

3-2-2. 실험 개시[원본 편집]

파일:/api/File/Real/578ca6e95e1a20ee46f02953

위와 같은 상황을 만들고 실험을 하였다.

처음에는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잘 맞추는 듯 하더니 이내 답을 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은 15볼트 레버를 당겼다......

 별로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 다들 자원해서 온 것이고 15볼트, 30볼트의 충격을 잠깐 받는 것은 인체에 해가 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120볼트 쯤 되자 이내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학생 역할을 맡은 사람이 고통을 호소하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교사 역할을 맡은 사람은 잠시 머뭇거렸다. 150볼트에서는 실험을 못 견디겠다며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레버를 당길 때 마다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쯤되자 '교사'는 옆에 앉아 있는 책임자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그만 해야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책임자는 계속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고 말했다.....
 330볼트쯤 되자 비명마저 없어졌다. 375볼트를 표시한 레버 밑에는 '위험, 극도로 높은 충격'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책임자의 말을 믿고 375볼트도 당기고 결국에는 최고 충격인 450볼트까지 당기고 말았다...

3-2-3. 실험의 실체[원본 편집]

 사실 이 실험은 교사 역할을 맡은 지원자 빼고는 모두 사전에 실험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전기 충격은 없었고 모두 '학생'의 연기였다. 실험이 끝나자 실험팀은 사실을 밝혔다.

실험 결과[원본 편집]

 밀그램이 처음에 실험을 설계했을때, 450볼트 레버를 당길 것이라고 예상한 비율은 0.1%내외였다. 아무리 책임자의 말이 있더라도 사람이 죽을 정도의 전압까지는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65%, 즉 2/3정도의 사람이 450볼트의 레버를 당겼다. 밀그램은 당연히 충격을 받았고 그 실험에 참여한 모두가 그랬다. 그 뒤로도 그는 여러 강연을 하며 실험을 자세히 설명하고 청중들에게 결과를 예상하게 했지만 대부분은 150볼트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잔혹한 실험은 1961년 밀그램이 행힌 최초의 실험 이후 여러가지로 변형된 형태로 이루어졌으며 그때마다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심지어는 '학생'의 손을 잡고 고압전류가 흐르는 금속판에 대라고 했을때도 1/3의 사람은 450볼트까지 갔다. 또한 다른 실험에서 책임자가 전화로 지시했을때는 1/5정도가 지시에 따랐다.

실험 이후[원본 편집]

 그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논란에 휩싸이며 수많은 곳에서 비슷한 실험이 행해졌다. 아직도 사람들이 통제된 실험실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할까라는 문제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또 밀그램 자신은 항상 이 실험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동조했던 사람들의 행동과 연관지어서 생각했다. 밀그램은 전쟁이 끝난 후 홀로코스트(대량학살)에 대한 설명을 찾던 중 행해진 이 실험이 보여준 것 처럼 권위에 복종하는 성향이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확신했다.
 이 실험은 또한 실험윤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최초의 실험이며, 이 실험 이후 엄격한 윤리 지침이 모든 대학에 부과되게 되어 이러한 류의 실험은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략 천여 명의 사람이 이 실험에 참가하여 자신도 명령에 따라서는 잔혹한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심한 경우 PTSD[1] 를 앓는 경우도 있었다.

이 실험을 다룬 영화도 있다.

파일:/api/File/Real/578ca75a5e1a20ee46f02960

밀그램의 실험을 자세히 다룬 영화로 평은 좋으나 재미있게 보기에는 힘든 영화. 밀그램에 대해 궁금하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괜찮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