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몽골피에 형제의 기구

최초로 하늘을 난 사람은 누구냐 하고 물어보면 보통 그 유명한 라이트형제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겠지만 그 이전엔 몽골피에 형제의 기구가 있었다. 또 몽골피에와 라이트 형제 사이에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라는 사람이 무동력 글라이더를 만들어 하늘을 난 기록을 갖고 있다.

즉, 인간이 하늘을 날아다닌 비행기구의 역사를 훑어보면 몽골피에의 기구(1783) → 릴리엔탈의 글라이더(1891) → 라이트 형제의 동력 비행기(1903) 순이 되겠다.

개요[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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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형 조제프 미셸 몽골피에(Joseph-Michel Montgolfier, 1740 ~ 1810)

오른쪽 동생 자크 에티엔느 몽골피에(Jacques-Étienne Montgolfier, 1745 ~ 1799)

1783년 9월 19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그들은 인공적인 탈 것을 만들어 동물들을 하늘로 올려보내는데에 성공한다. 최초의 '생물체가 탄' 시험비행에는 물의 동물인 오리, 땅의 동물인 , 그리고 공기의 동물인 이 탑승했다. 그 후 두 달 뒤인 11월 21일엔 사람이 탄 기구가 최초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실험과정[원본 편집]

실험 구상[원본 편집]

이 형제는 이 역사적인 날로부터 대략 1년 전 이미 주머니를 만들어 비슷한 실험을 했었다. 물론 아무것도 없이 풍선만으로. 이 괴상한 실험을 구상하게 된 경위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벽난로 선반에 걸쳐놓은 아내의 속치마가 따뜻한 공기로 부풀어 올랐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불더미에 집어넣은 종이봉지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구상했다고 하기도 하고, 하늘로 피어오르는 연기나 구름을 보고 떠올렸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현상들을 본 조제프는 주머니에 기체를 집어넣어 하늘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아직은 뜨거운 공기로 기구를 떠오르게 한다는 생각을 못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연인지 조제프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상하던 중 불을 피워 연기를 낸 다음 그 연기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종이공장을 운영하던 동생을 찾아갔다. 그리고 자크는 형의 아이디어에 탄복하며 기구 개발에 매진한다.

실험 시작[원본 편집]

1782년 12월 14일에 몽골피에 형제는 마을 근처의 들판에서 열기구로 실험을 한다. 이 최초의 열기구는 2km정도 비행하다가 착륙했다. 그리고 1783년 6월 4일에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공개실험을 하기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기구는 2km 상공까지 날았으며 이 소식은 곧 프랑스 각지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베르사유 궁전에서 역사적인 실험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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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비행의 순간

왕의 앞에서 벌인 이 실험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만들어둔 기구가 뇌우에 맞아 부서지는 바람에 며칠사이에 기구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시범 날 아침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기구를 파리로 운송한 자크는 드디어 정오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몽골피에 형제는 그때까지도 뜨겁게 달궈진 공기가 기구를 띄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단지 고약한 냄새가 나는 기체가 기구를 띄운다고 확신하여 이때 연기를 만들기 위한 땔감은 짚 80파운드, 양털 8파운드 낡은 신발과 썩은 고기 등이었다.

18m에 달하는 기구에 양, 닭, 오리가 올라타 이륙을 준비했다. 이륙 직후 불어온 바람에 기구가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기구는 개의치 않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지상에서 약 440m 높이에 도달한 기구는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실험 시작 약 8분 후 기구는 3km 떨어진 곳에 내려 앉았다. 이때 기구가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기구가 약간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긴 했지만 닭을 제외한 동물들은 멀쩡했다. 그리고 그 부상을 입은 닭 마저도 기구의 문제가 아니라 출발 30분 전에 양에게 발길질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최초의 생물이 탄 열기구 실험은 대성공을 거뒀다. 사람 대신 동물실험을 먼저 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당연히 위험성에 대한 우려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상공에는 산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견

세 번째는 종교적인 이유로 신의 영역인 하늘을 나는 것은 불손하다는 의견에 대해 하늘을 날아도 천벌은 내리지 않는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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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작된 열기구. 이 열기구는 제작에 참가한 벽지 제조업자의 이름을 따 ‘레베이용(Réveillon) 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 달 뒤, 11월 21일에는 사람이 직접 탑승하여 최초의 유인비행에 성공했는데 이 실험에 성공하여 프랑스는 본격적인 기구에 대한 지원을 쏟기 시작한다. 여담으로 이 최초의 유인비행선에는 사형수를 태울 예정이었지만 필라토르 로제와 프랑소와 달란드 남작이 이 역사적인 일을 죄수에게 줄 수 없다는 이유로 자원하여 25분에 걸쳐 9km 거리를 비행하였다.

몽골피에 형제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이 비행을 다른 사람한테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실험 이후[원본 편집]

실험 열흘 후에는 쟈크 샤를이라는 사람이 수소 기구를 만들어 비행에 성공한다. 샤를 -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그리고 1785년 1월 7일에는 존 제프리스, 장 프에르 블랑샤르가 기구를 이용해 영국 해협 횡단에 최초로 성공한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발명할때까지 하늘은 오직 기구만이 정복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폭발사고라던지 비극적인 사고가 있긴했지만 비행기술을 점점 발달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지금도 캐나다의 퀘백주에서는 매년 '몽공피에 국제 열기구 축제'를 열고 있으며 40만명이 찾고 있는 굉장히 큰 축제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