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데니스

수원의 전설적 트리오인 -'데'-로 라인의 일원

신의손 이후 K리그 대한민국 국적 귀화 선수 2호

프로필[원본 편집]

  • 이름: 데니스 블라디미로비치 락티오노프 (Denis Vladimirovich Laktionov | Денис Владимирович Лактионов)
  • 등록명: 데니스 → 이성남 → 데니스 1
  • 출생일: 1977년 9월 4일
  • 국적: 러시아, 대한민국
  • 출신지: 소련 노보시비르스크
  • 포지션: 미드필더, 윙어, 공격수
  • 신체: 179cm, 74kg
  • 소속팀: FC 사할린 홀름스크 (1994~1995)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3) → 성남 일화 천마 (2003~2005) → 부산 아이콘스 (2005, 임대)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6~2007) →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 (2008~2009) → 톰 톰스크 (2011) → 강원 FC (2012~2013)
  • A매치: 2경기
  • 스태프: 매탄중학교 코치 (2013) → 리틀윙즈 코치 (2014, 2017) → 러시아 FSM 코치 (2018)

선수 경력[원본 편집]

러시아 생활[원본 편집]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득점자에 올랐으나 팀의 강등으로 인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1기[원본 편집]

1995년 12월 창단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창단 첫해 K리그 우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우선지명하며2 , 힘찬 시동을 걸었다. 수원은 이러한 호화 멤버에 걸맞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이에 바데아, 유리, 아디 등 해외에서 검증된 외국인 선수들을 보강했다. 데니스가 팀을 떠난 당시 러시아는 소련 해체 전후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수원의 창단 감독이던 김호 감독은 아직은 나이가 적은 편인 데니스를 데려와서 흔히 말하는 '육성형 용병'으로 써 보려 영입을 시도하였다. 당시 나이가 아직 19세에 불과했고, 그 당시 K리그에서 고졸 선수들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기에3 이 선수가 과연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96년 첫 시즌부터 20경기 출장 3골의 활약을 보이며 팬들에게 좋은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주었고, 1997년에는 20경기 출장 3골 6어시스트를 남기며 K리그 도움왕 타이틀을 획득해 팀 내 초특급 외국인 선수로 대성장. 또한 데니스의 전성기가 곧 수원의 화려한 전성기였다. 팀 전체가 부진에 빠졌던 1997년과 불미스러운 일4 로 6개월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1998년을 제외하고,5 데니스는 수원에서 매년 20경기 넘게 출장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득점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수원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는데 1등 공신이 되었다.

특히 2000년 산드로가 들어오면서 고종수 - 데니스 - 산드로 로 이어지는 고데로 트리오는 상대팀들을 벌벌 떨게하는데에 충분했고, 수원은 이 트리오를 바탕으로 2001년과 2002년 아시아 클럽 선수권과 아시아 위너스 컵을 연속으로 재패하는데 성공했다.

성남 일화 천마[원본 편집]

수원에서 성공적인 나날들을 보내던 데니스는 2002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수원과 연봉 협상 문제로 트러블을 보이게 되자 유럽 진출을 원하고 있었고, 이에 동의한 구단도 데니스를 놓아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데니스의 선택은 유럽이 아닌 성남 일화 천마였다. 이유는 역시나 돈. 당시 성남은 2001년, 2002년 K리그를 재패한데 이어, 2003 시즌을 앞두고 피스컵과 K리그 3연패를 위해 초호화급 스쿼드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성남은 매북에서 김도훈을 영입한데 이어 박충균과 이기형의 영입을 확정지었고, 급기야 데니스마저 이적료만 15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데려오는데 합의하였다. 계약 기간은 2년에 (계약료 50만 달러) 연봉 36만 달러 (연간 18만 달러), 경기 당 출전 수당 2천 500 달러.6 기존의 리그 2연패 멤버에 데니스까지 가세하자 성남은 K리그 최강의 위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바꾼 데니스는 윤정환, 신태용, 김상식, 김대의, 이싸빅, 샤샤 등 K리그 사기 유닛만 모아놓은 상황의 성남에서 부담없이 공격을 하며 38경기 출장 9골 10어시, 21경기 출장 4골 7어시 등의 활약을 보이게 된다.7 

부산 아이파크[원본 편집]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부산 아이파크는 AFC 챔피언스 리그와 K리그 플레이오프 준비를 위해 이성남을 6개월간 임대해 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데니스의 부산 입단 당시, 후술할 김주성 사건을 기억하고있었던 올드 부산 팬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팬들 의견 무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파크 측은 데니스를 영입했고, 이에 당시 POP 회장이 부산 서포터를 탈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 부산의 철벽 플랫 4의 주축이었던 박준홍이 시즌 아웃되면서, 부산 전술은 처음부터 엉켜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선수들도 전기 리그 우승 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제대로 된 유기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성남은 부산에서 후기리그 5경기에 출전했지만,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고 부산도 집중하던 두 대회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데니스는 짧은 부산 생활을 마치고 원 소속팀 성남으로 복귀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기[원본 편집]

성남으로 돌아왔지만, 주전 경쟁에서 승산은 없어보였고, 이에 이성남은 친정팀 수원으로의 복귀를 추진하게 되었다. 수원은 이성남의 영입을 위해 당시 주축 선수였던 안효연을 성남에 보내고 이성남을 데려오게 되었다. 이 때 등록명이 다시 데니스로 바뀌게 되었다.

2006 K리그 개막전 북패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출전한 데니스는 페널티킥을 이끌어내며 활약하였고, 후반기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후기리그 우승에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듬해 데니스는 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장기간 재활에 돌입했고, 끝내 재활에 실패하며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리고 말았다.

다시 러시아로[원본 편집]

수원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데니스는 2008년 당시 러시아 2부 리그의 FC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여 2시즌 동안 27경기에 출전하였으며, 시비르의 승격을 이끌었으나, '승격 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2012년 초까지 데니스는 니폼니시 감독이 지휘하고 있는 FC 톰스크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했으나, '승격후 외국인 선수 교체'로 인해 방출.

강원 FC[원본 편집]

2012년 7월 강원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학범 강원 감독은 데니스의 영입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2012년 7월 25일 연맹에서 수원 삼성에 등록되어있던 데니스의 등록 말소를 공시해 강원 FC 입단이 거의 기정 사실화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있다. 결국 모두의 기대대로(?)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데니스는 강원에 등록되는데 성공하였다. 무려 6년만의 K리그 복귀로 직함은 시비르 때와 마찬가지로 플레잉 코치라고 한다. 강원 입단 후, 김학범 감독의 조련 아래 교체 자원으로 강원 경기를 소화하였으며, 노장으로서의 관록과 팀 장악력을 앞세워 지쿠와 함께 강원 FC의 1부리그 잔류에 첨병이 되었다.

하지만 2013 시즌에는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던지,8 1경기 교체출장에 그쳤고, 결국 2013년 6월을 끝으로 강원 FC에서 퇴단하였다.

국가대표[원본 편집]

2002년 월드컵 이전에 러시아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도 있다. 당시 일본과 한 조였던 러시아는 아시아 축구에 해박하며 당대 아시아 깡패팀 수원의 일원으로 아시아 리그팀을 쳐바르고 다녔던 데니스의 실력을 시험하고자 불렀는데... 결국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만약에 데니스가 러시아 대표팀으로 일본전에 출전했다면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지도자 경력[원본 편집]

방출된 이후 뭐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추석을 앞두고 체조 유망주인 딸 카트리나가 뉴스를 타면서 그의 근황도 함께 알려졌다. 2015년 은퇴하고 친정팀 수원의 제의를 받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스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했다고.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한국에 와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한국 사랑이 레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코리안 드림' 카트리나, 최고의 선수를 꿈꾼다

2014년에는 수원 U-12팀 리틀윙스에서 코치로 일했고 2018년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역 아마추어 팀인 FSM에서 유소년 축구팀의 코치로 재직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http://mosff.ru/2018/04/7776/ http://football-trener.ru/trainers/laktionov-denis-vladimirovich/

플레이 스타일[원본 편집]

주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이나 중앙 공격수 역할 및 셰도우 스트라이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스피드가 좋고 몸싸움을 즐겨서 측면에 공간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치고 들어가며 골문 앞에서의 짧은 패스나 슈팅 능력이 좋아서 문전 앞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볼달고 펼치는 개인기 자체는 썩 좋은편이 못돼서 드리볼 돌파로 수비수를 벗겨내는 식의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고 클래식 윙어라기보단 측면에서 활동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축구 아이큐가 유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피지컬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고 때문에 노쇠화가 시작된 2005시즌부터는 전처럼 빠른 스피드로 측면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수비수들에게 막히는 경우가 급증했다. 또한 팀을 자주 옮겨다님에 따라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의 세밀함도 갈수록 무뎌져가 아쉬움을 남겼다.

이야깃거리[원본 편집]

  • 1998년 9월 23일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진 부산 대우 로얄즈와의 경기에서 데니스는 후반 김주성이 파울을 한뒤 넘어져 있던 이병근의 머리를 차자 이에 흥분. 김주성에게 보복폭행을 가했다. 이를 지켜본 주심은 데니스에게 다이렉트 퇴장을 명했고, 주심의 퇴장 명령을 받은 데니스는 정작 김주성은 카드를 받지 않은 것에 분노해 거세게 항의했다. 항의하던 데니스는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넘어져 있는 김주성의 목을 밟았다. 이에 흥분한 구덕 관중들이 물병을 던지는 등 그라운드는 난장판으로 변하고 말았다. 9  근데 하필 이 경기가 KBS를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는게 문제였다. 결국 K리그 상벌위원회에서 데니스는 7개월 출장정지에 벌금 350만원, 원인제공 당사자 김주성은 2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데니스는 너무 출장정지 처분이 과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고, 이에 연맹은 참작하여 6개월로 기간을 줄여주었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 벌어진 유상철과 김대수의 충돌사건에서의 징계 10  와 달리 데니스에 대한 징계가 너무 과해 외국인 차별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었다.
  • 위 사건으로 데니스하면 거친 이미지가 되었지만 저게 유일한 K리그 퇴장이다. 더욱이 이날 경기에서 김주성이 저지른 더티 플레이는 데니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화날만큼 심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고종수가 한방을 쓸때 밤에 홀로 엉엉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회상한걸 보면 플레이 스타일처럼 성격이 거친게 아니라 꽤 섬세하고 감상적인 성격인듯 하다.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곧바로 귀화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였고, 2003년 7월 21일 구단 관계자와 함께 당시 거주하던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사무소를 찾아 호적 등록을 마침으로써 정식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자신의 에이전트인 이영중 이반스포츠 대표의 성인 이氏에서 딴 성남 이(李)씨를 시조로 하여 이성남으로 귀화하였다. 이에 수원팬들은 데니스를 키워준 수원을 버리고 성남의 이름을 택하냐라고 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페이크로, 성남 이씨 운운은 성남 일화 측의 언플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데니스라는 이름으로 귀화했다고. 심지어 2007년을 끝으로 러시아로 복귀한 이후에도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여, 러시아 리그 내에서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고 있는 중이다. 11  어지간히 한국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결국 2012년 한국 복귀를 모색하면서, 한국에 아예 눌러사는게 아닐까 기대하고 있다. 결국 가족들까지 모두 한국으로 귀화하여 대한민국에 계속 눌러살게 되었다. 데니스의 딸이 체조선수이기 때문에 경쟁이 심한 러시아보다는 상대적으로 국가대표 경쟁이 덜한 대한민국에서 체조선수 생활을 하는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 가족들까지 귀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 성남으로 이적한 데니스는 유독 수원과의 경기에서 강했는데, 그때마다 수원 서포터들을 도발하는 세레모니를 보여주며 수원 팬들의 미움을 받았다. 근데 2006년 복귀.... 세상 일이란 정말 모르는 거다. 참고로 위 사진은 샤빠 만화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