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돌초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울진군 후포항 동쪽 약 23km지점에 있는 수중암초로 맞잠, 중간잠, 셋잠[1]으로 불리는 3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남북으로 길게 돌출된 형상으로 크기는 남북으로 6~10km, 동서로 3~6km정도이며 전반적인 수심은 5m정도이다.

이 주변 해역은 울진지역 어민들을 중심으로 한 활발한 어업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2006년 이쪽 해역의 생물조사 결과 126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기록[편집 | 원본 편집]

왕돌초에 관한 최초 관한 기록은 1907년 5월13일 원산에서 부산으로 항해하던 일본 선박이 북위 36도 48분, 동경 129도 47.5분 위치에서 선저(船底)가 암초에 접촉한 흔적을 보고한 적이 있고, 일본해군수로부에도 죽변만 동남방의 암초 발견을 알렸으나 1908년 확인측량에 실패하여 공식화되지는 못했다

이후 1914년 3월 러시아 기선이 나가사끼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항해 중 화모말(花母末) 인근의 현저한 지형지물인 금장산 정상에서 88도 방향 21.3해리 해상에 암초가 있음을 보고했고, 1918년 8월 군함 대화[2]에 의해 확인된 후 1920년 4월 발행한 한반도의 동해안과 남해안을 다룬 「일본 수로지 제10권 상」 49쪽에 간단히 설명되면서 공식화된다.

이것이 왕돌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왕돌초라는 고유명칭은 수로지(水路誌)에 1990년에 나타난다. 왕돌초는 이 해산(海山)의 맨 꼭대기 부분으로, 항해하는 선박에게 위험을 초래하는 부분이므로 왕돌초 하부까지 포함하여서 이 부근 해저 돌출부를 전체적으로는 왕돌해산(王乭海山)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참고로 초(礁)는 암초(暗礁)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항해 안전에 위협을 주는 소규모의 수중장애물을 일컫는 말이고 순수한 우리말로는 ""가 되는데, 이는 초(礁)보다 규모가 더 작은 것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이후 2002년 11월 이 해저지형에 대한 지명이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지명위원회에서 왕돌초로 공식 명명되면서 대한민국 최초로 확정 고시된 해양지명에 등재되게 되었다.

왕돌초 등표[편집 | 원본 편집]

이 일대가 천혜의 어장이고 주변에서 조업하는 선박들이 워낙에 많은데 비해 왕돌초의 수심이 상당히 얕은 편에 속해 해난사고의 위험성이 늘상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2003년 11월경 15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왕돌초 등표를 암초 위쪽에 건설하였다.

이 등표는 직경 1.2m기둥 4개 위에 높이 36m짜리 구조물을 올려놓은 형상으로 흑-홍-흑 도색의 사각 강관조 구조물의 고립장애표지이다. 광파신호는 16m높이에서 5초에 2회의 백색 섬광(Fl(2)W 5s)을 주변 10해리까지 발신하며, 레이콘장비가 병설되어 있다. 이외에도 각종 해양․기상관측장비를 병설해 왕돌초 일대의 풍속과 풍향, 기온, 습도, 기압, 수온, 염분도, 파고, 조위, 수질 등을 모니터링하여 실시간으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각주

  1. 삼형제의 개념이다
  2. 야마토(大和)
  3. 울진신문 내용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