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예레미야(ירמיהו , Jeremiyah)는 기원전 626년(요시야 13년)부터 남유다의 멸망 때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그는 유대인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서열왕기서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예레미야가 살던 시대는 아시리아가 멸망하고, 고대 이집트와 신바빌로니아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을 두고 격돌하고 있었다. 예레미야가 처음 활동했을 때 남유다의 왕 요시야는 한동안 야훼의 말씀을 거역했던 유다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켜 야훼 신앙을 회복시킨 한편, 백성들의 고충을 잘 돌봤던 임금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백성들이 야훼 신앙을 버리고, 지배층들이 사치하면서 일반 민중들을 착취하는 등의 부조리를 행하는 모습이 만연했다.

이후 요시야 왕이 이집트 파라오 네코 2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다음에 즉위한 아들 여호야하스는 왕 위에 오른지 석 달만에 이집트로 끌려갔고, 그 다음에 즉위한 여호야킴의 제위기간 11년 동안 지배층들이 야훼의 말씀에 반역하면서 백성들을 괴롭히고, 정의를 굽게 했다. 이에 예레미야가 지배층들의 부조리를 규탄하면서 눈물로 호소하였다. 예레미야가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이후 여호야킴이 죽고 아들 여호야킨이 즉위 석 달만에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그 후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느부갓네살)에 의해 제위한 제데키야(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의 신랄한 비판에 부글부글 끓던 고관들 눈치 보면서 얘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다가 병 주고 약 주듯이 예레미야를 풀어주기도 하면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들어보고자 했다. 예레미야는 왕에게 바빌로니아에게 항복하라고 권했으나 제데키야는 간신배들고관들 눈치를 보면서 예언을 듣지 않았고, 예레미야에게 절대 자신한테 한 예언을 고관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네부가드네자르 왕에게 함락될 때까지 예루살렘 감옥 뜰에 갇혀 있었고, 결국 예루살렘 성은 바빌로니아 군대에 함락되었고,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죽임을 당하고 제데케야 왕도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빌로니아로 끌려간다. 이후 예레미야는 석방돠었고, 이후 이집트로 가서 이집트의 남유다 사람들에게 계속 야훼의 예연을 선포했다.

예언[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