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

순장(殉葬)은 장례 풍습의 하나로 고대에 왕을 비롯한 고위층의 장례시 그의 신하나 노비, 가족 중 일부[1]를 함께 매장하는 행위다. 이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 들어가서도 생전의 생활을 그대로 할 것이라는 의미로 그가 생전에 함께 하였던 것을 부장품으로 함께 넣어주는데 그 중에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순장의 풍습은 인류 문화권이 있었던 지역에서 거의 전반적으로 행해졌던 기록이나 흔적이 있으며, 이후 고대 왕국 등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국가 인력 손실 등의 문제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점차 다른 대용품[2]을 넣거나 법으로 금지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각 문화권별 순장 기록[편집 | 원본 편집]

한국[편집 | 원본 편집]

한국의 순장 풍습은 원삼국시대~삼국시대 초기까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상으로는 부여에 순장 풍습이 있었음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기록하고 있으며, 실제 고고학적 발굴은 창녕과 고령 일대의 가야 고분군에서 순장된 시신과 순장곽 공간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고구려의 경우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동천왕의 붕어 당시 왕을 따라 죽으려는 사람이 많아 중천왕이 이를 금지시켰으나 많은 사람들이 왕의 장례식날 자결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의 경우 지증왕 3년[3]에 순장 금지령을 내림으로 공식적으로 순장을 폐지한 기록이 있다.

중국[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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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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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편집 | 원본 편집]

인도의 풍습 중 사티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남편이 죽었을 경우 그의 아내도 산 채로 화장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 "사티"리는 이름의 여신이 그렇게 죽었다는 종교 전승에서 유래한다고. 정확한 시작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근대까지 행해져 오다가 1829년 영국 식민지 정부에서 법으로 금지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정신나간 사람들도 존재한다.

스키타이[편집 | 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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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편집 | 원본 편집]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던 우르에서 발굴된 왕실 분묘에서는 침구, 악기 등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사마드 여왕으로 알려진 무덤에서는 각종 부장품과 함게 시녀 28명의 시신이 함께 발굴되었었다. 이외에 이 무덤의 수직 갱도에서는 6마리 소가 이끄는 2대의 수레와 병사, 시녀, 마부, 악사 등의 63명의 시신이 순장되어 있었고 또 다른 수직 갱도에서는 74명의 순장된 시신이 발견되었다.

각주

  1. 보통 처자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
  2. 이를테면 흙인형 같은 것
  3. 5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