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철 (1892년)

徐丙哲. 대한민국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2년 8월 4일 경상북도 달성군 화원면 천내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1920년경 북만주로 망명했다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해 귀국한 손병선을 대구에서 만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특파원 허영원(許永元)과 함께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했다. 이들은 영남지방의 부호인 박소용(朴韶鏞)에게 군자금 6천원의 헌납을 요구하는 등 4차례에 걸쳐 부호들에게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고, 이후에 상하이로 탈출을 꾀하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2월 1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공갈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했지만 1921년 5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다.[2] 이에 불복해 상고했지만 1921년 6월 23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3] 이후 대구에서 조용히 살았으며, 1970년 2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병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그의 유해는 1991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