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하

朴贊夏. 창씨명은 마츠오카 히데아키(松岡秀明).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2년 7월 28일 강원도 춘천군 춘천읍 마산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1938년 4월 강원도 춘천군에서 춘천공립농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3학년생 이준환(李俊桓)의 가르침을 받고 민족주의 사상을 품고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여, 이준환이 조직한 독서회에 가입했다. 이후 1938년 10월 중순경 이준환의 하숙집인 춘천읍 대성정 김복순의 집에서 이준환이 한 다음의 말에 찬동했다.

조선민족은 세계의 민족 중 가장 열등한 취급을 받고 있지만, 민족의 역사가 존재하는 이상 그 민족의 국가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대다수는 조금도 이 점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에 우리가 그것의 자각을 촉구할 필요가 있고, 또 조선농촌의 현 상태는 극도로 피폐해 있는 바, 그 원인은 일본인의 압박과 착취에 있다. 저들 농민의 행복을 가져올 것은 저들에게 민족적 자각을 촉구하고 다시 더 나아가 조선을 독립시기키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장래 농촌의 지도자가 될 우리들이 농민을 지도 계몽할 필요가 있으므로, 우리는 그 준비로써 각자 회비를 각출하여 민족정신의 함양에 족한 조선민족주의 작가의 언문소설을 구입, 회독하여 민족주의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

1938년 11월 중순 이준환의 하숙집에서 여섯 동지와 함께 모여 각자 겨울 휴가를 이용하여 향리 농촌의 실상을 시찰할 것과 언문소설을 읽어서 다음 회합에서는 각자의 시찰담 도는 독후감을 발표할 것과 장래 더욱 더 단결을 견고히 할 것을 약속하였다. 1939년 5월 하순경 재차 회합을 가져 학교의 신교사 이전을 기회로 동지 포섭에 노력하기로 합의하였고, 7월 10일 춘천읍 마산리 춘천농업학교 기숙사 부근에서 모여 매일 아침 일찍 일정한 장소에 집합하여 성서를 낭독하거나 기도를 올리면서 최후까지 단결을 흩뜨리지 말고 친목을 도모하는 동시에, 조선의 독립이라는 최고의 목적을 향해 일치단결하여 매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1940년 2월 이같은 행적이 발각되면서 일제 형사에게 체포되었고, 2월 28일 춘천공립학교로부터 퇴학 통보를 받았다. 1942년 10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1]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21년 박찬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 독립운동사 제9권: 학생독립운동사 - 9. 춘천농업학교의 독서회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