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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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혁(朴載赫, 1895년 5월 17일~1921년 5월 27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의열단 단원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5년 5월 17일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학생시절부터 반일단체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부산공립상업학교 졸업 이후에는 무역상을 하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당시 의열단에서는 일명 '진영사건(進永事件)' 등으로 인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계속 부산경찰서에 붙잡혀 고문, 투옥되자 부산경찰서 서장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를 암살하기로 계획하였다. 마침 의열단에 가입했던 박재혁을 눈여겨 본 의열단장 김원봉의 권유로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실행하였다. 싱가포르에 있던 박재혁은 김원봉의 호출을 받아 상하이에서 지시를 받고, 일본 나가사키(長岐)와 쓰시마 섬(對馬島)를 거쳐 부산에 잠입하였다.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은 하시모토 서장의 취미가 고서적 수집이란 것을 알아내고 중국인 고서적 상인을 가장하여 부산경찰서를 찾아갔다. 예상대로 하시모토 서장은 면회를 승낙하였고, 박재혁은 그 자리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로 하시모토 서장은 중상을 입은 뒤 사망하였고, 박재혁 역시 중상을 입고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옥중에서 자결하기 위해 단식을 하여 사형이 집행되기도 전인 1921년 5월 27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형편이 뜻대로 되어가니, 이 모든것이 그대가 염려해 준 덕분인듯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김원봉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2012년 7월 14일 부산 동구청에서는 그의 생가가 있는 조방로 630m 구간을 박재혁거리로 명명하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