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태 (1888년, 은율군)

朴龍泰(또는 朴容泰). 이명은 박혜관(朴慧觀), 호는 검산(劒山) 또는 일산(釰山).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88년 2월 14일 황해도 은율군 북면 동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2월 중국 텐진으로 건너갔고, 그해 4월 항일결사 불변단(不變團) 조직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일명 천진불변단으로 잘 알려진 이 단체는 1919년 4월 18일 텐진 프랑스 조계지에서 박용태를 비롯하여 명제세·박환(朴桓)·독고감 등이 ‘대한독립의 기초를 공고하게 함’을 목적으로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였다.

불변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깊게 연계되어 있었으며, 도산 안창호(安昌浩)와 연결되면서 단원들이 대거 국내에 파견되어 1919년 10월 31일 일제의 소위 ‘천장절(天長節)’을 기해 일으킨 ‘제2차 독립만세시위’를 추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1년 3월 26일 텐진에서 체포된 그는 국내로 이송되어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4년 4월 26일 출옥 후 국내에서 대종교진흥회(大倧敎振興會) 회장으로 활동했다. 1926년 7월 다시 텐진으로 망명해 텐진 한교동지회(韓僑同志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6월 대한독립당주비회(大韓獨立黨籌備會)의 기관지 <조선지혈(朝鮮之血)>을 창간하여 주간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매진하던 그는 중일전쟁이 발발되던 상황에서 임시정부의 김구·안경근 등과 연계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12월 2일 톈진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용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 독립유공자 공훈록[1]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