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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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함나.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민함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1888년 10월 20일 경기도 부평도호부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확한 주소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1] 1914년 1월 20일 차이나호를 타고 하와이로 이민가서 민의식의 '사진신부'가 되었다.

그녀는 1938년 하와이에서 대한부인구제회 와히아와 대표를 역임했고, 1939년 5월에 부인구제회 부회장 및 힐로 지방대표를 역임했다. 또한 1940년 1월 하와이 한인기독교회 평신대 대표회 대표원을 맡았으며, 1941년 5월에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준비위원회 부인구제회 대표 및 동회 의사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에는 독립금 수봉위원을 맡았고 1941년부터 1943년까지 대한인부인구제회 중앙부장을 역임했다.

1941년 4월 19일부터 5월 1일까지 13일 동안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해외한족대회에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 대표로 참석했으며,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가 하와이에 조직되었을 때 강상호, 심영신과 함께 의사위원이 되었다. 1943년 12월 23일 이승만이 이끄는 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하자, 그녀는 동지회와의 인연을 끊고 위원회에 잔류했다. 1944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 외교위원이 되었으며, 1944년에 대한부인구제회 회장을 맡았다.


민함나는 1945년 3월 10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내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해 결성된 전후조선구제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8.15 광복 후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을 위해 많은 물품을 모아 국내에 보냈다. 또한 하와이에 온 이후로 1945년까지 독립금 등 각종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1952년 9월 4일 6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으며, 호놀룰루 시내 오아후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민함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부평은 지금의 인천광역시 서구, 부평구, 계양구와 경기도 부천시 및 서울특별시 구로구 서부, 강서구 오곡동, 오쇠동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범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정확한 면, 동이 전해지지 않는 이상 위치를 특정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