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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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貞範(또는 金禎範). 이명은 김상률(金尙律).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00년 9월 4일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화풍동[1]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2년 만주로 망명한 뒤 통의부에 가담하여 무장 항일투쟁에 착수했다. 그해 평북 초산으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일경찰대와 총격전을 벌였다. 또한 1924년 5월 초산군에 잠입하여 남면 송묘동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친일분자를 척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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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7월 17일 경성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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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2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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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6월 1일 경성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그러나 1932년 8월 22일 집안현에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국내로 이송된 뒤 1933년 2월 13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및 강도상인(强盜傷人)·살인미수 등으로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8년 10개월의 옥고를 겪다가 1941년 6월 15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사후[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김정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런데 그가 건국훈장을 서훈받게 된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가보훈처는 1968년 김정수가 통의부 소속으로서 국내로 잠입해 임무를 수행하다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오랜 기간 옥고를 치렀다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서훈했으며,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그러나 실은 김정수가 김정범의 공적을 자신이 한 것으로 위조한 것이었다.

그 후 독립유공자 김진성의 장남 김세걸씨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진실이 드러났고, 결국 국가보훈처는 2018년이 돼서야 김정수에게 서훈되었던 건국훈장 애국장을 취소하고 김정범에게 서훈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김정수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남아 있어서 비판이 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수 일가 건국훈장 서훈 취소 사건 참조.

외부 링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현재의 자강도 초산군 화건리. 현재는 초산군이 자강도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