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청학

權淸學. 대한민국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899년 4월 15일 경상북도 현풍군 유가면 음지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8일 경북 달성군 동화사 지방학림에 재학하던 중 동창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다가오는 장날인 3월 30일 대구 남문 외 시장에서 의거를 단행하기로 약정하고 비밀리에 태극기를 만들면서 준비를 갖추었다.

1919년 3월 29일 학생들은 준비물을 감추고 동화사를 출발하여 대구로 가서 동화사 출장소에서 유숙하고, 3월 30일 큰 태극기를 장대에 달아 들고 남문 외 시장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2시가 되자 군중이 약 3,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학생들은 시장 중앙에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군중은 일제히 호응하여 시장을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급보를 받고 달려운 일본 군경은 시위대를 총검으로 위협하여 해산시키고 동화사 지방학림 학생 전원을 검거하였다. 권청학은 체포되어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1] 이에 불복하여 공소했지만 1919년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되었다.[2] 이에 불복해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징역 10개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3] 이후 서울로 올라와 조용히 지내다 1981년 12월 1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권청학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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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