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기무사령부 쿠데타 기도 사건

기무사 쿠데타.jpg

국군기무사령부 쿠데타 기도 사건은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 사건이다.

배경[편집 | 원본 편집]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소야대(당시 새누리당이 여당임) 정국이 형성되고, 최순실 게이트에서 촉발된 촛불시위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이어져 정권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위수령계엄령을 악용해 국민을 진압하고, 박근혜 정권의 연장을 꿈꾸며 문건을 작성했다.

타임라인[편집 | 원본 편집]

  • 2016년 촛불시위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박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라는 발언을 했으며[1], 시위 현장에 리퍼트 당시 주한미국대사가 이따금씩 산책을 한다며 모습을 드러냈다[2]. 후일 추 대표의 첩보는 反쿠데타 세력으로부터 입수한 첩보였음이 알려졌으며, 리퍼트 대사의 경우 군 정보기관에 몸담고 있었던 경력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거나 추측했을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 2017년 3월 3일, 국군기무사령부에서 국방부에게 계엄령 문건 보고
  •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탄핵 인용
  • 2018년 1월 25일, 국군기무사령부에서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을 실시했다. 전 기무부대에서 모든 장병이 손을 씻으며 고강도 개혁을 해야한다고 생쇼다짐했다.[3]
  • 2018년 7월 5일,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8쪽) 문건 폭로[4]
  • 2018년 7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에 대한 특별수사 지시[5]
  • 2018년 7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대비계획 세부자료>(67쪽) 공개[6]

쿠데타 주요 계획[편집 | 원본 편집]

  • 위수령 관련
    • 경찰력만으로 집회 통제가 어려워져 광역지자체장이 군 병력 출동을 요구할 것이라 가정
    • 육군총장이 위수사령관을 발령하고, 위수사령관은 위수령을 발령
    • 위수령 선 조치 후 합참총장에게 후 보고(육군 단독으로는 병력 이동명령 불가)
  • 계엄령 관련
    • 사회 혼란으로 경찰력만으로 집회 통제가 어려워질 것이라 가정
    • 국방부의 제청으로 NSC에서 협의, 대통령(또는 권한대행)을 통해 계엄령 선포
    • 계엄군으로 기계화보병사단 6개, 기갑여단 2개, 특전여단 6개 투입
    • 주요시설(청와대, 국회, 헌법재판소 등)에 여단급 병력 파견
  • 기타 정권 안위를 위한 조치
    • 당정 협의체를 통해 여당(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계엄령 해제 투표 출석 방지
    • 반정부 행위를 방지한다는 구실로 야권 국회의원 체포, 계엄령 해제 시도 저지

논점들[편집 | 원본 편집]

  • 역사인식과 민주사회 위협
    국군기무사령부는 본래 국군보안사령부가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안사는 12.12 사태의 주역이자 민간인 사찰로 얼룩진 조직이었다. 관련 문건에서 제주 4.3 사건을 “제주폭동”으로, 부마민주항쟁을 “부산소요사태”라고 부르고, 자신들에게 대적할 민주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무력화하겠다는 계획을 담아 이름만 바꾸고 본질은 그대로라는 것이 드러났다.
  • 누가 지시했는가?
    국군기무사령부의 역할은 방첩 및 군대보안 업무로, 계엄은 합동참모본부의 소관이다. 기무사에서 계엄령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월권이자 쿠데타 행위에 해당한다. 문건 공개 초반에는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이 ‘내가 주도했다’라고 모든 것을 안고 가려고 했지만, 국회에서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7] 문건에 권한대행 명의로 된 계엄령 공고문 등이 있는 것으로 미뤄봤을 때 정치권 등에서는 청와대도 이에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있다.
  • 머릿속이 꽃밭
    계엄으로 넘어가기 전에 서울지역 위수령으로 기초를 다지고자 했는 데, 당시 서울시장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봤을 때 위수령 발동협조 조차 얻지 못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또한 북한과의 대립이 최고조였던 시점에서 육군의 주축인 기보사단과 기갑여단의 총구를 국민에게 돌려 국가의 적이 누구인지 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설사 실제로 계엄령이 실행되어 전국 각지에 계엄군이 파견되어도, 병력의 절대다수가 원래 일반 시민이었던 징병 병사들이고 시민들도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았을 터였기에 소련 8월 쿠데타처럼 전개되었을 것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