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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은 그야말로 천지개벽했다.<ref>농담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인들의 선진화된 모습은 이런 대 변화를 경험했기에 등장한 것이다. 간단한 예로 1950년대에는 노예가 법적으로 존재했고, 흑인에 대한 인체실험도 국가적으로 행해졌었다.</ref> 이런 변화는 미국학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냉전의 책임이 미국의 잘못된 대외정책의 결과'''라 보는 관점이다. 이 들을 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수정주의자들의 등장으로 인해 미국학계에서는 한국전쟁 논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정주의자들은 자료의 부족<ref>한국전쟁 관련 미국 공문서가 풀리는 1970년대 까지는 미국정부나 소련정부에서 공개한 자료에만 의존해야 했으니 전통주의자들에 비해 자료가 매우 부족했다.</ref>으로 전통주의자들에게 얻어터지기만 했다. 뭐 병신같은 주장도 있어서기도 했지만<ref>예를 들자면, 굽타의 경우 일명 "해주진공설"을 제시하였고, 콜코 부부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이게 다 맥아더와 이승만이 전쟁을 야기했기 때문이다]]라 주장했다. 당연히 전통주의자들은 이것을 신나게 털었다.</ref> 미국 학계는 수정주의자가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 전통주의자가 까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주의자들이 우세하였다. 그러다가 브루스 커밍스가 등장하면서 대세가 기울어지는데, 왜냐면 여기서 커밍스는 전쟁의 원인은 미국 탓도 소련 탓도 아닌 한국 탓!!!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학자들이 수정주의 노선을 타게되어, 전통주의자들의 위세가 꺽였지만 그래도 그냥 살짝 꺽인거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7:3이었던 것이 한 5:5가 되었던 것이다. 이 논쟁은 냉전이 끝났어도 이어지고 있고, 심지어 냉전이 끝난지 25년이 지난 지금(2015년)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한국전쟁 원인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한다면 <S>영어의 압박이 있지만</s>미국 자료를 참고해야한다. 그것도 필수적으로 해야된다. <s>위키러가 한국어로 발간된 논문으로만 참고문헌 작성했다가 교수한테 신나게 털려서 그런거 아니다.</s> ====국내 한국전쟁 원인 연구에 대해서==== 국내의 한국전쟁 원인 연구는 매우 상당히 늦게 시작되었다. 이는 분단의 상황이라는 환경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1980년대 이전에 학계에서 한국전쟁 원인에 대한 연구는 없었다. 국내에서 한국전쟁 원인의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 김학준<ref>김학준. 『한국전쟁: 원인, 과정, 휴전, 영향』. 서울: 전영사. 2010.</ref><ref>이 책은 1980년대 낸 논문을 수정 보완 증보판이다.</ref>이 미국에서 연구된 “한국전쟁 원인”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한국사회는 1950년대 미국사회와 같이 이념의 대립이 하드코어해서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또 자료의 부족, 특히 북한의 문서고나 소련의 문서고가 봉쇄된 상태에서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1993년 옐친이 김영삼에게 한국전쟁 관련 구소련 문서를 넘겨준 것이다.<ref> 1993년 6월 25일 경향신문 1면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62500329101008&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6-25&officeId=00032&pageNo=1&printNo=14794&publishType=00010]</ref> 당연히 한국 학계에서는 이제서야 저놈의 빨갱이(소련)의 음모가 속 시원하게 들어나겠구만이라 장담했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옐친이 준 자료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맺어<s>아 이 뭐병</s> 국내에서는 원자료를 보기 어려웠고, 오로지 국방부 발간 해석본을 참고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했다.<ref>국내에서 소련 공개 원문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에 반해 우드로 윌슨센터에 가면 러시아 극비문서가 인터넷에 스캔본으로 잘 올라가져 있다.</ref><ref>이게 학문적 논문의 경우 원문에 의거 자신의 논리를 제기해야하기 때문에 해석본을 인용하는 경우 신뢰성이 떨어진다. 아 물론 이는 석박사 급 논문을 말한다.<s>그래서 한국전쟁 전문가가 적은 것일지도....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최소 3개국어는 해야되니....</s></ref> 그러나 국내에서도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하는 등불같은 존재들이 계신다. 양영조의 『남북한 군사정책과 한국전쟁,1945-1950』(2007), 정병준의 『한국전쟁: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2006), 박명림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이 대표적인 한국전쟁 원인을 연구한 학문서적이다. 그러나 한국 학계 내에서 한국전쟁 원인을 다루는 학자가 부족하여 자료나 신뢰성이 살짝 떨어진다. 예를 들어 본 "한국전쟁"에 대한 글도 수많은 위키러들 토론하면서 높은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토론을 하다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이를 상대편이 시정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보니 글의 수준이 점차 성장하는 것이다.<s>이러다가 논문쓸 거 같다.</s> ====한국전쟁의 원인 연구에 대한 평가====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이념과 신념 그리고 생각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면 '''스탈린이 김일성의 전쟁요구를 49번이나 거부하였고, 전쟁 승인 때 마오쩌둥의 의견을 들었다는 사실이다.'''<ref>참고로 이것만 있지 회담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ref> 전통주의자는 이를 소련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김일성이 눈치없이 와서 한다고 하니 반려시킨 것이고, 이후 기회를 포착하자 김일성을 불러 전쟁을 승인하고 중국조차 끌어들인 것이라 보았다.<ref>대표적으로 김영호가 있다.</ref> 수정주의자는 이를 소련은 전쟁의 의도가 없었는데 김일성이 땡깡 부려서 전쟁을 승인해 준 것이라 보았다.<ref>대표적으로 웨더스비가 있다.</reF> 둘 중 누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왜냐 기록이 없다. 그냥 김일성이 왔는데 거부했다. 이런 정도이지 무슨 회담의 내용이 없다. 특히 스탈린과 마오쩌둥 간의 회담 내용은 공개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스탈린이 처음에는 생각이 없다가 그래 한 번 해볼까? 이거일 수도 있고(전통주의 의견), 아니면 정말로 김일성이 땡깡부려서 스탈린이 귀찮아서 아 그래 전쟁 해!!! 라 한 거일 수도 있다. (수정주의 의견) '''결국 한국전쟁의 원인은 해석의 문제이고, 누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 이 문서는 다음의 숨은 분류 1개에 속해 있습니다: 분류:유튜브 영상이 포함된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