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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嚴)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32,99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0위이다. 본관은 대종인 [[영월 엄씨]] 등 9본이 있다. | 엄(嚴)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32,990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50위이다. 본관은 대종인 [[영월 엄씨]] 등 9본이 있다.<ref>{http://www.surname.info/eom/eom.html}</ref> | ||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 [[현종]](712~756)의 파락사(波樂使)로 [[영월 신씨]](寧越 辛氏)의 시조인 신시랑(辛侍郞)과 함께 [[신라]]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본국에 정변이 일어나자 지금의 영월인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여 한국 엄씨의 시원이 되었다. [[고려]]조에서 그를 내성군(奈城君)에 추봉하고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하면서 후손들이 영월을 세거지로 삼았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39_405_0269|영월 엄씨}}</ref> 그의 아들 '''엄태인'''(嚴太仁)은 영월에 살면서 군기공파(軍器公派), '''엄덕인'''(嚴德仁)은 한양으로 이주하여 복야공파조, '''엄처인'''(嚴處仁)은 [[함경도]]로 이주하여 문과공파조(文科公派祖)가 되었다. |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시조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 사람으로 [[신라]] [[경덕왕]] 때 [[당나라]] [[현종]](712~756)의 파락사(波樂使)로 [[영월 신씨]](寧越 辛氏)의 시조인 신시랑(辛侍郞)과 함께 [[신라]]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본국에 정변이 일어나자 지금의 영월인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여 한국 엄씨의 시원이 되었다. [[고려]]조에서 그를 내성군(奈城君)에 추봉하고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하면서 후손들이 영월을 세거지로 삼았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139_405_0269|영월 엄씨}}</ref> 그의 아들 '''엄태인'''(嚴太仁)은 영월에 살면서 군기공파(軍器公派), '''엄덕인'''(嚴德仁)은 한양으로 이주하여 복야공파조, '''엄처인'''(嚴處仁)은 [[함경도]]로 이주하여 문과공파조(文科公派祖)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