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검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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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총 33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격법 12개와 자법 9개로 나누어 진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총 33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격법 12개와 자법 9개로 나누어 진다.


기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일각에서 [[신라]] 시기에 만들어진 검법이라고 주장하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으며 본격적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시기의 무술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황창 관련한 칼춤이 본국검법의 시작이며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오래되었다는 근거로 사용된다.
황창은 신라인으로 속설에 따르면 나이 일곱에 백제의 시중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사람들이 그를 담처럼 둘러싸 구경하였다.
백제왕이 그에대한 소문을 듣고 칼츰을 추게 하자 그는 기회를 보아 백제왕을 찔러 죽이니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다.
이에 신라인들은 슬퍼하며 그의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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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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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수) 14:58 판

틀:토막글 본국검법(本國劍法)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검법 중 하나로 《무예도보통지》 3권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의 환도로 하는 검법이며 본국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자국의 무술이며 한민족 고유의 검법이라는 의미가 있다.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총 33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격법 12개와 자법 9개로 나누어 진다.

기원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다.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황창 관련한 칼춤이 본국검법의 시작이며 그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오래되었다는 근거로 사용된다.

황창은 신라인으로 속설에 따르면 나이 일곱에 백제의 시중에 들어가 칼춤을 추니 사람들이 그를 담처럼 둘러싸 구경하였다.
백제왕이 그에대한 소문을 듣고 칼츰을 추게 하자 그는 기회를 보아 백제왕을 찔러 죽이니 백제인들이 그를 죽였다.
이에 신라인들은 슬퍼하며 그의 가면을 쓰고 칼춤을 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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