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성씨)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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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 역사 ===
[[공자]]의 10제자 가운데 하나이자 [[노나라]]의 학자인 [[민자건]](閔子騫)의 후손 '''민칭도'''(閔稱道)가 [[고려]]에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하여 [[여주|여흥]]에 정착한 것이라 여겨지며, 그 외로 경기도 여주 향리에 있는 영월루 민굴(閔窟 마암굴)에서 나온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역사 기록에 시조 민칭도(閔稱道) 이전에도 민씨가 등장하지만, 지금의 여흥 민씨와 같은 민씨인지는 불확실하며, 단지 조상 가운데서 민칭도를 시조로 추대하여 삼은 것이다.
[[공자]]의 10제자 가운데 하나이자 [[노나라]]의 학자인 [[민자건]](閔子騫)의 후손 '''민칭도'''(閔稱道)가 [[고려]]에 사신으로 들어와 귀화하여 [[여주|여흥]]에 정착한 것이라 여겨지며, 그 외로 경기도 여주 향리에 있는 영월루 민굴(閔窟 마암굴)에서 나온 것이 시초라는 설도 있다. 역사 기록에 시조 민칭도(閔稱道) 이전에도 민씨가 등장하지만, 지금의 여흥 민씨와 같은 민씨인지는 불확실하며, 단지 조상 가운데서 민칭도를 시조로 추대하여 삼은 것이다.  


민칭도 이후 4세조까지는 아들 하나씩만 전해지나, 5세조 증손 민영모(閔令謨)부터는 보첩이 자세하다. [[민영모]]는 [[고려 인종]] 16년(113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태자태사에 올랐고,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은 고려 명종 때 과거 급제 후 형부상서를 지냈으며, 차남 민공규(閔公珪)는 판병부사와 태자소보에 지내며, 그 둘의 후손들이 다수의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함으로써 고려 후기에 본격적으로 명문세족으로 성장하였다. 대체로 문반직을 역임하며 문반 사대부 가문으로서 위상을 갖추었으며,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재상지종 가문 중 하나로 꼽혔다.
민칭도 이후 4세조까지는 아들 하나씩만 전해지나, 5세조 증손 민영모(閔令謨)부터는 보첩이 자세하다. [[민영모]]는 [[고려 인종]] 16년(1138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태자태사에 올랐고, 민영모의 장남 민식(閔湜)은 고려 명종 때 과거 급제 후 형부상서를 지냈으며, 차남 민공규(閔公珪)는 판병부사와 태자소보에 지내며, 그 둘의 후손들이 다수의 고위 관료를 지속적으로 배출함으로써 고려 후기에 본격적으로 명문세족으로 성장하였다. 대체로 문반직을 역임하며 문반 사대부 가문으로서 위상을 갖추었으며, 왕실과 혼인이 가능한 재상지종 가문 중 하나로 꼽혔다.  


가계별로는 민식의 가계가 민공규의 가계보다 관료배출수나 고위직 역임자의 수에서 우세했다. [[조선]] 전기에는 각 가문의 분파가 확대되며 내부에서 가계가 번성하는 파와 그렇지 못한 파로 확연히 구별되었고, 일반적으로 여흥민씨를 거족이라고 칭할 때 정말로 거족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가문은 적어도 조선 전기에 한정해서 보면 구체적으로 민식의 계열에서는 증손 민지의 장자 민상정 가계와 차자 민상백 가계가, 민공규 계열에서는 증손 민종유의 장자 민적의 가계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민적의 3자 민변-민제(문도공파)로 이어지는 가계는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조선 전기에서 여흥민씨 가문 가운데 가장 명문으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 여흥민씨 가문은 이들 가계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과거급제자와 고위관료의 배출, 공신책봉, 왕실과의 통혼으로 외척으로서의 위상 등 권력의 핵심에 근접하는 요인이나 자손의 번성 등의 요건을 두루 갖춤으로서, 조선 건국 이후에도 여전히 고려 후기 이래의 명문 거족가문으로서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가계별로는 민식의 가계가 민공규의 가계보다 관료배출수나 고위직 역임자의 수에서 우세했다. [[조선]] 전기에는 각 가문의 분파가 확대되며 내부에서 가계가 번성하는 파와 그렇지 못한 파로 확연히 구별되었고, 일반적으로 여흥민씨를 거족이라고 칭할 때 정말로 거족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가문은 적어도 조선 전기에 한정해서 보면 구체적으로 민식의 계열에서는 증손 민지의 장자 민상정 가계와 차자 민상백 가계가, 민공규 계열에서는 증손 민종유의 장자 민적의 가계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민적의 3자 민변-민제(문도공파)로 이어지는 가계는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조선 전기에서 여흥민씨 가문 가운데 가장 명문으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 여흥민씨 가문은 이들 가계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과거급제자와 고위관료의 배출, 공신책봉, 왕실과의 통혼으로 외척으로서의 위상 등 권력의 핵심에 근접하는 요인이나 자손의 번성 등의 요건을 두루 갖춤으로서, 조선 건국 이후에도 여전히 고려 후기 이래의 명문 거족가문으로서의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왔다.  


계열별로 보면, 과거급제자수는 민지의 계열이 민종유의 계열보다 압도적 다수를 배출하였으나, 3품 이상의 고위직자의 배출은 오히려 민종유 계열이 월등히 우세하였다. 이는 민종유 계열 인물들의 고위직 진출 요인은 과거 외의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였음을 의미하고, 이 계열에서 배출된 공신책봉과 왕실혼의 핵심인 왕비배출과 관련된다. 통혼권에서도 조선 건국 이후 여흥민씨 가문 민지 계열은 왕실과 연결되며, 왕비의 외조부가로서 가문의 위상을 높여 갔고, 민종유 계열 또한 태종의 즉위로 인해 왕실의 외척가문으로서 가문의 위상이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왕비로 간택된 민지 계열 출신 외손녀들의 불운이 이어지면서, 또한 태종의 왕권강화책과 정치운영방식에 따른 외척세력 제거에 의해 여흥민씨 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제의 네 아들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면서 조선 전기 여흥민씨 가문의 위세는 잠시 추락하였으나, 세종 중반 이후 완전히 복권되어 그후로도 지속적으로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조선의 최고 명문 중 하나로 여겨진다.<ref>[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7046486&ndsCategoryId=10102 여말선초 여흥민씨 가문의 동향]</ref>
계열별로 보면, 과거급제자수는 민지의 계열이 민종유의 계열보다 압도적 다수를 배출하였으나, 3품 이상의 고위직자의 배출은 오히려 민종유 계열이 월등히 우세하였다. 이는 민종유 계열 인물들의 고위직 진출 요인은 과거 외의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였음을 의미하고, 이 계열에서 배출된 공신책봉과 왕실혼의 핵심인 왕비배출과 관련된다. 통혼권에서도 조선 건국 이후 여흥민씨 가문 민지 계열은 왕실과 연결되며, 왕비의 외조부가로서 가문의 위상을 높여 갔고, 민종유 계열 또한 태종의 즉위로 인해 왕실의 외척가문으로서 가문의 위상이 급부상하였다. 그러나 왕비로 간택된 민지 계열 출신 외손녀들의 불운이 이어지면서, 또한 태종의 왕권강화책과 정치운영방식에 따른 외척세력 제거에 의해 여흥민씨 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제의 네 아들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면서 조선 전기 여흥민씨 가문의 위세는 잠시 추락하였으나, 세종 중반 이후 완전히 복권되어 그후로도 지속적으로 왕비를 배출함으로써 조선의 최고 명문 중 하나로 여겨진다.<ref>[http://academic.naver.com/view.nhn?doc_id=47046486&ndsCategoryId=10102 여말선초 여흥민씨 가문의 동향]</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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