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국 라이히스마르크

독일국(獨逸國) 라이히스마르크
Deutsches Reich Reichsmark(도이치스 라이히 라이히스마르크)de
화폐 정보
사용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기호 ℛ︁ℳ︁
보조단위
1/100 ₰ 페니히 (ℛ︁₰, 라이히스페니히)
지폐 5 ℛ︁ℳ︁[1], 10 ℛ︁ℳ︁, 20 ℛ︁ℳ︁ 50 ℛ︁ℳ︁, 100 ℛ︁ℳ︁, 1,000 ℛ︁ℳ︁ (+ (렌텐마르크) 1 ℳ︁, 2 ℳ︁)[2]
동전 1 ℛ︁₰, 2 ℛ︁₰, 4 ℛ︁₰[3], 5 ℛ︁₰, 10 ℛ︁₰, 50 ℛ︁₰, 1 ℛ︁ℳ︁, 2 ℛ︁ℳ︁, 3 ℛ︁ℳ︁, 5 ℛ︁ℳ︁
중앙은행 국가은행 (Reichsbank, 본토)
국가신용저축은행 (Reichskreditkassen, 식민지)
이전 화폐
이후 화폐
독일국 파피어마르크 (1조 : 1)
독일국 렌텐마르크 (병행통용)
구 오스트리아 실링 (1.50 : 1)[4]
기타 점령지 통화 (본문 참조)[5]
자르 프랑 (1 : 0.1645)[6]
AM 마르크 (병행통용)
서독 마르크 (10 : 1)[7]
동독 마르크 (10 : 1)[8]
AM 실링 (1 : 1)[9]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독일국 라이히스마르크(별칭, '제국마르크')는 1924년 바이마르 공화국(전간기) 시절에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폭망한 파피어마르크를 대신하여, 훗날 기적의 화폐개혁의 사례가 된 렌텐마르크(토지기반 고정환)를 기초로 하여 다시 짜여진 중앙은행권(금태환)이다.

1945년 독일 패망과 함께 사실상 고정환으로서 효력은 잃었고, 1948년 6월 20일(서독) 및 23일(동독)에 신 마르크화(불환화폐)로 완전히 전환시킴에 따라 폐지되었다.

본 항목에서는 서술 편의상 「라이히스마르크」, 「제국마르크」, 「마르크」를 섞어서 표기한다.

명칭[편집 | 원본 편집]

사실 정식 국명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 19세기 이후 독일에서 '제국(Kaiserreich, 카이저라이히)'이라는 어휘는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그 프로이센도 왕국(Königreich, 쾨니히라이히)으로 지칭하였고, 20세기 초에 있었던 독일 제국도 본래 명칭은 '독일국(Deutsches Reich, 도이치스 라이히)'이었다. 기존의 '독일국(-Reich)'이 '독일 제국(-Kaiserreich)'으로 지칭이 변경된 건, 다름아니라 후대 역사학계에서 편의상 나치 독일과의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흔히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이라 지칭하는 독일의 전간기 시대 당시 공식 국호가 마찬가지로 '독일국(Deutsches Reich)'인 것과 같다.

여기서 언급되는 독일어 'Reich(라이히)'는 영어의 Realm(렐름)[10]에 해당하는데, 가까운 예시로 오스트리아쪽을 살펴보면 현존하는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Republik Österreich(레푸블리크 외스터라이히), 흔히 '오헝제국'이라 불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원어명은 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 (외스터라이히-엉가리셔 모나키), 그리고 오스트리아 제국은 Kaiserthum Oesterreich (카이저텀 외스터라이히)이다. 즉, 이와 동일한 패턴으로서 '라이히스마르크(Reichsmark = Reich + -s + Mark)'를 직역하자면 '영지마르크(-화)' 쯤 되며, 의미가 통하게끔 의역하자면 "우리나라 돈"쯤의 의미이지, 해당 단어 내에 통치방식(제정, 공화정 등)을 직접적으로 포함하지는 않기 때문에 '제국 마르크'로 번역하는 것은 엄밀하게는 오역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계속해서 언급하는 이 '라이히(Reich)'라는 어휘 자체가 독일을 포함한 게르만족 발전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까닭에[11] 단순히 '땅(유의어로 Land)' 정도로 퉁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본문에서 서술하는 이 '라이히스마르크'가 주로 쓰인 시대가 제국주의를 넘어 패권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나치 독일이었던 까닭에, 그 분위기의 의미를 넣어 '제국 마르크'라고 번역하는 것이 의미 전달면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므로 완전히 오역이라고도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가장 적절한 의역이 될 수 있다.

유통 및 환율[편집 | 원본 편집]

1924년 도입 당시 설정된 제국마르크의 대미환율[12]은 4.2ℛ︁ℳ︁(/US$)이었는데, 이는 제국마르크가 당시 최상의 신뢰도를 자랑한 렌텐마르크와의 고정 환율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똑같이 대입 적용시킨 결과이다.

1939~1940년 경 2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하면서 화폐량 폭증이 불가피해지자 마르크(ℛ︁ℳ︁)값의 하향패치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상대국(연합측) 진영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전쟁 초창기엔 2.5ℛ︁ℳ︁ 정도로 제국마르크의 상대적 가치가 높게 잡혔었다. 그러나 점차 독일측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제국마르크의 가치 하락폭이 달러-파운드에 비해 더 커졌으며, 1945년 전후에는 3.3ℛ︁ℳ︁ 내외, 유통 마지막 해인 1948년에는 10.0ℛ︁ℳ︁까지 떨어지게 된다. 이 최종값이 서독/동독 각자의 신 마르크화와의 교환비로 참조되었다.

위 내용에서 볼 때, 나치 독일 시절에 의외로 인플레이션이 크지 않았다는 부분은 좀 의아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전쟁 준비 및 진행 한바탕 중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기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걸 가능케 한 건 첫째론 (표면상 얄마르 샤흐트가 고안한-) 사실상 아돌프 히틀러의 지시로 기업형 단기채권인 외파 어음(Öffa-Wechsel, Arbeitsbeschaffungswechsel)과 메포 어음(Mefo-Wechsel, Metallurgischen Forschungsgesellschaft)의 위압적 돌려막기[13]로 메꿔왔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지급수단을 현금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배급제와 병행한 까닭이며[14], 셋째로는 점령지를 본국과 철저히 분리된 경제환경으로 만들어둔 뒤 물자와 노동력을 열심히 본국 및 군대로 털어와 조달했기 때문이다. 즉, '라이히스마르크'가 직접적으로 유효하게 작용하는 본토(독일 및 오스트리아)에서 경제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발견되면, 그걸 각종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바깥으로 떠넘겨서 무마한 것이다.

그 후폭풍은 1945년 독일 패망부터 1948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신 통화 도입 당시 교환액에 필수로 제약을 두어야 했고, 미국이 소련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답시고 서독지역에 쏟아부은 금액 자체가 천문학적 값에 달한 원인 중 하나로도 작용하였다.

현찰 시리즈[편집 | 원본 편집]

동전[편집 | 원본 편집]

연방 페니히(위) / 제국 페니히(아래)

유로화 이전까지 쓰인 현대 마르크화(1948~2001)의 동전 패턴은 사실 제국마르크 시절, 정확히는 1936년(나치 독일)에 정립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독일 내 6개 조폐소(베를린(A), 뮌헨(D), 드레스덴(E), 슈투트가르트(F), 카를스루에(G), 함부르크(J))에서 생산하였고, 오스트리아 합병 후 빈(B) 조폐소도 동원되었다. 당연하게도 제도(帝都)인 베를린에서 생산된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기본적으로 동화(銅貨)로 발행했으나, 훗날 독일의 2차대전 전황(戰況)이 악화됨에 따라 고액권은 생산비용이 훨씬 저렴한 지폐로 대체하고, 저액권은 소재 자체가 저렴한 아연화(亞鉛貨)로 대체된 바가 있다. 단, 50페니히(알루미늄화) 한정으로는 알루미늄 자체가 비싼 소재가 아니었던 이유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지폐[편집 | 원본 편집]

부속 통화[편집 | 원본 편집]

점령지 관련[편집 | 원본 편집]

특수 통화 및 군표류[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5마르크 지폐는 막바지 시기인 1942년에 발행되었다.
  2. 1제국마르크 및 2제국마르크 지폐는 렌텐마르크의 명의를 그대로 가져와 대체하였고, 일종의 코인노트(coin note) 혹은 국고통화(國庫通貨, Treasury Currency) 형태로 사용되었다.
  3. 1931년 12월 8일 특별 발행, 1933년 10월 1일 유통 중단.
  4. 1938년 독오합병(안슐루스)으로 인함.
  5.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명목상으론 독제의 정책 압박에 따라 라이히스마르크(ℛ︁ℳ︁)를 법정 통화로 채택해야 했으나, 어디까지나 본국 편입이 아닌 점령지 취급이었으니 해당 지역 시민들은 제국마르크의 실물 공급 대신 고정비율값에 따른 기존 통화 지급 혹은 군표나 신용권(ℛ︁ℳ︁)으로 대신 지급받아야 했고, 때문에 해방 후에는 대부분이 브레튼우즈 체제의 영향력에 놓인 본래 통화로 자동 복귀하였다.
  6. 역수는 6.079프랑/RM, 자를란트의 국제 연맹 보호령 시절(1920~1935) 기준. 이후 1947~1956년 자르보호령때 병행 도입된 자르 마르크와는 1Mk=20Fr(역수 0.05Mk = 1Fr), 이후 서독 마르크와 교환시에는 100Fr : 0.8507DM으로 교환되었다.
  7. 공식 명칭은 '독일연방공화국 마르크 (독일 마르크(DM), 혹은 드물게 연방 마르크)'.
  8. 공식 명칭은 '독일민주공화국 마르크(DDM)', 별칭 오스트마르크(Ostmark).
  9. 1인당 150마르크(=150실링) 제한
  10. 가장 가까운 뜻을 찾자면 대략 '영지(領地)' 정도에 해당한다. 다만 어원이 되는 독일어 Rikijaz도 그렇고, 영어 Realm을 포함한 어근(라틴어) 또한 왕(군주)을 뜻하는 'Rex'이라서, "라이히 (Reich)"에 '우두머리'의 개념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11. 좀 더 자세히 비유하자면, 한국사 중에서 마한, 변한, 진한 내 부족들이 모여 만들어진 고구려/백제/신라가 제각기 다른 '국가(Land, Staat 등)'로 형성되었어도, 혈통 등의 이유로 같은 '민족(Volk)'으로 간주하여, 그 셋을 묶어 '한반도 내 삼국 영토(Reich)'로 보는 개념에 가깝다. 이는 본래 Duchy라 부르는 공국(公國, Stammesherzogtum)의 형태가 연합된 모습으로서 영지(Reich)를 유지한 세월이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12. 기존의 영국 및 파운드화는 1차 대전의 막대한 후유증으로 위세를 크게 잃었고, 반면 미국(및 미국 달러)는 거꾸로 전쟁 떡고물을 얻어먹으며 역대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후대 미국 역사학자들이 이 시대를 가리켜 "Roaring(광란(狂亂), 노호(怒號) 등을 의미함.)"으로 명명했을 정도.
  13. 이용 방법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판매자(노동자, 기업 등)에게 물건값을 어음으로 쥐어주면서 '우리 총통님을 못믿어?'를 시전한 것.
  14. 사회주의경제(공산주의)에서 인플레이션이 어지간하면 잘 발생하지 않는 원리와 동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