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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공사'''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경부철도는 1901년 8월 20일 한강 이남의 [[영등포역|영등포]]에서 북부 기공식을 거행하였으며, 동년 9월 21일에 부산 초량에서 남부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따라 영등포~사근천(군포 남측)간 13마일간, 그리고 초량~[[구포역|구포]]간의 11마일의 공사가 개시되었다. 공사는 선로의 연장을 따라 순차적으로 착공되어, 북부선은 명학, 진위<ref>현재의 [[진위역]]이 아닌 과거 존재했던 역으로, 오산과 서정리 사이에 존재했었다. 개업 당초의 역명 목록에는 무배치역으로 존재했으나, 1910년 경 시간표에서는 이미 폐지되었다. 현재 진위역 서북쪽에 위치해 있던 것으로 추정. </ref>에 1903년 말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금강을 통해 자재를 반입하여 [[부강역|부강]]에서 전의까지 36마일 여의 공사가 1904년 1월까지 진척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지대를 터널로 경유하려던 노선이 대한제국 정부의 반대로 인해 1902년에 [[군포역|군포]]를 경유 사시현으로 우회하는 선형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남부는 초량~구포 구간의 11마일 간은 1901년 10월부터 초량으로부터 공사가 순차적으로 진척되어 1903년 말에는 공사 진척이 밀양을 지나 [[남성현역|성현]]에 이르고 있었다. 터널 공사가 다수 존재하여 토목의 준공은 1904년에 이르러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러일전쟁과 속성공사''' 경부철도가 건설되는 와중에 러일간의 긴장 강도가 올라가면서 군사수송상의 필요가 상승함에 따라 빠른 공사가 요구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03년 12월 2일 경부철도 주식회사에 대해 일본정부는 속성명령을 내려서, 해당 철도를 1905년중에 전 구간을 개통할 것을 지시하였다. <ref>상게서. 30쪽.</ref> 경부철도로서는 일개 사설회사로서 이러한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고 조직을 개편하여 주요 임원을 관선으로 변경하기로 하고,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에 대해 정부의 지불보증을 해 줄 것, 그리고 부설비에 대한 보조를 일본 정부에 건의하였다. 일본정부는 이를 가결하여, "경부철도 속성 보조 및 책임 지출에 대한 자구안"이라는 칙령으로 공포하였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서 정세가 급박해짐에 따라 1904년 연내에 영등포에서 초량에 이르는 전 노선을 개통하도록 명령을 변경하였다. 이에 따라, 이미 어느정도 진척이 있던 부산~성현 간의 남부 구간과 영등포~부강 간의 구간 외에 미완성 상태의 성현~부강 간의 121마일 구간의 급속 진행에 착수하였다. 북부에서는 부강에서 영동까지, 남부에서는 성현에서 영동까지의 공사를 진척하여, 1904년 10월에는 남부구간이 준공되었으며, 여기에서 심천까지 6.6마일을 더 북진하였다. 반면 북부 구간은 11월에 이르러서 남은 구간을 준공하였다. 다만 급속 공사를 위해 이들 구간 중 일부에서 규격을 낮추어 구배나 곡선 반경등이 열악한 임시선로를 부설하였다. 특히 대전 이남의 증약, 구복 터널 공사의 지연 때문에 [[스위치백]] 식의 가설선로를, 또한 남부에서는 성현 터널을 대체하여 8단 스위치백의 가설선로를 부설하여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들 공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철도 건설은 더 한층 긴급수단이 되었다. 이 와중에 공사 진척이 느린 70마일 구간에 대해서 24파운드(미터당 12kg)의 레일을 채용한 임시 협궤철도 안까지 제기가 되어서 긴급발주 형태로 자재를 도입해 반입하였으나, [[제물포 해전]]에서 러시아 군함이 조기에 격침되어 철도부설의 긴급성이 크게 줄어들어서 임시철도는 중단되었다. 이후 공사가 진척됨에 따라 열차 운행이 가능한 구간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편승 및 화물의 임시영업이 개시되었으며, 1905년 1월 1일자로 전구간 정식 개통을 달성하게 되었다. '''노동 동원과 저항 운동''' 한편으로 경부선 및 경의선의 건설은 한반도에서는 유례가 없을 만큼의 대규모 토목공사였고, 그만큼 막대한 노동력이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그만큼 민간에 발생한 폐해도 적지 않았다. 건설 초기에는 한국계 토건업체가 노동 송출과 부자재의 공급을 하였으며, 영세농민이나 임노동자들의 임금노동 위주로 충원이 되었으며 급여 수준도 초기에는 심하게 열악하지는 않았기에, 중간 착취나 노동강도 문제로 분쟁이 생기는 정도였다. 그러나 러일간 분쟁이 가시화 되어 속성공사가 추진되면서 일본계 토건업체나 심지어 일본군의 철도대대나 공병대까지 투입되는 상황이 되면서 인근 주민을 강제동원하고, 지방관청으로부터 자원을 공출하는 식이 되면서 갈등이 첨예화되었다. 여기에 군표나 수표 지급에 따른 교환 손실, 다단계 하청에 따른 부당 공제, 농번기 강제동원이나 징발, 약탈 등으로 인한 손실등은 고스란히 한국인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또한 폭행이나 살인까지 벌어져 치안이 지극히 악화되었고, 지방관들 조차 일인들을 통제할 수 없어 오히려 구타를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기까지 하였다.<ref>상게서. 147-161.</ref>. 이런 불만은 철도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게 된다. 선로에 바위를 올려놓거나, 시설물을 파괴하는 일이 일어나고, 열차에 돌은 던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였다. 또한 이런 파괴행위가 의병운동으로 조직화되어 역을 습격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 동원에 개입하여 이득을 보던 일본계 건설업자나 지방관이나 아전들이 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저항 사례 중 특히 잘 알려진 것으로, 1905년 11월 22일에 발생하였던 열차 투석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유리파편을 뒤집어써서 경상을 입은 사건이 있다. 이러한 저항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한국정부에 치안을 압박하다 못해, 러일전쟁기에는 치안 유지를 위해 군정과 군율을 동원해 폭압적으로 대응하기까지 하였다.<ref>상게서. 162-173</ref> 요약: 리브레 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리브레 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글이 직접 작성되었거나 호환되는 라이선스인지 확인해주세요. 리그베다 위키, 나무위키, 오리위키, 구스위키, 디시위키 및 CCL 미적용 사이트 등에서 글을 가져오실 때는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여야 하고, 만약 본인이 문서의 유일한 기여자라는 증거가 없다면 그 문서는 불시에 삭제될 수 있습니다.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 () [] [[]] {{}} {{{}}} · <!-- --> · [[분류:]] · [[파일:]] · [[미디어:]] · #넘겨주기 [[]] · {{ㅊ|}} · <onlyinclude></onlyinclude> · <includeonly></includeonly> · <noinclude></noinclude> · <br /> · <ref></ref> · {{각주}} · {|class="wikitable" · |- · rowspan=""| · colspan=""| · |} {{lang|}} · {{llang||}} · {{인용문|}} · {{인용문2|}} · {{유튜브|}} · {{다음팟|}} · {{니코|}} · {{토막글}} {{삭제|}} · {{특정판삭제|}}(이유를 적지 않을 경우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드시 이유를 적어주세요.) {{#expr:}} · {{#if:}} · {{#ifeq:}} · {{#iferror:}} · {{#ifexist:}} · {{#switch:}} · {{#time:}} · {{#timel:}} · {{#titleparts:}} __NOTOC__ · __FORCETOC__ · __TOC__ · {{PAGENAME}} · {{SITENAME}} · {{localurl:}} · {{fullurl:}} · {{ns:}} –(대시) ‘’(작은따옴표) “”(큰따옴표) ·(가운뎃점) …(말줄임표) ‽(물음느낌표) 〈〉(홑화살괄호) 《》(겹화살괄호) ± − × ÷ ≈ ≠ ∓ ≤ ≥ ∞ ¬ ¹ ² ³ ⁿ ¼ ½ ¾ § € £ ₩ ¥ ¢ † ‡ • ← → ↔ ‰ °C µ(마이크로) Å °(도) ′(분) ″(초) Α α Β β Γ γ Δ δ Ε ε Ζ ζ Η η Θ θ Ι ι Κ κ Λ λ Μ μ(뮤) Ν ν Ξ ξ Ο ο Π π Ρ ρ Σ σ ς Τ τ Υ υ Φ φ Χ χ Ψ ψ Ω ω · Ά ά Έ έ Ή ή Ί ί Ό ό Ύ ύ Ώ ώ · Ϊ ϊ Ϋ ϋ · ΐ ΰ Æ æ Đ(D with stroke) đ Ð(eth) ð ı Ł ł Ø ø Œ œ ß Þ þ · Á á Ć ć É é Í í Ĺ ĺ Ḿ ḿ Ń ń Ó ó Ŕ ŕ Ś ś Ú ú Ý ý Ź ź · À à È è Ì ì Ǹ ǹ Ò ò Ù ù · İ Ż ż ·  â Ĉ ĉ Ê ê Ĝ ĝ Ĥ ĥ Î î Ĵ ĵ Ô ô Ŝ ŝ Û û · Ä ä Ë ë Ï ï Ö ö Ü ü Ÿ ÿ · ǘ ǜ ǚ ǖ · caron/háček: Ǎ ǎ Č č Ď ď Ě ě Ǐ ǐ Ľ ľ Ň ň Ǒ ǒ Ř ř Š š Ť ť Ǔ ǔ Ž ž · breve: Ă ă Ğ ğ Ŏ ŏ Ŭ ŭ · Ā ā Ē ē Ī ī Ō ō Ū ū · à ã Ñ ñ Õ õ · Å å Ů ů · Ą ą Ę ę · Ç ç Ş ş Ţ ţ · Ő ő Ű ű · Ș ș Ț 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