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유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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鮮卑, 기원전 1세기경 ~ 6세기경

선비는 흉노의 뒤를 이어 1세기 경부터 몽골 초원에서 세력을 떨쳤던 유목국가이다. 동호의 후예라고 전해진다. 이들이 몽골 초원의 지배자로 있었던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탁발부, 모용부 등의 부족들이 화북 지방으로 유입되어 실질적인 오호십육국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보통 몽골계의 유목민이라고 여겨지지만, 여러 계통의 유목집단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선비의 약화 이후에는 고차고자와는 다르다! 고자와는!, 유연이 초원에서 세력을 겨루게 된다.

역사

첫 등장

선비는 흉노의 1차 분열을 틈타 흉노의 지배로부터 벗어났다.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일이다. 이들은 주로 흥안령 남부에서 시라무렌(西拉木倫)강 유역에 분포했다고 한다. [1] 그러다가 흉노가 1세기 중반 2차 대분열을 겪으며 쇠퇴하자, 본격적으로 몽골 초원의 지배적인 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흉노가 북상, 서진하는 가운데 선비는 서쪽으로 진출하여 흉노 세력 10만락(천막이라는 뜻.)을 흡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 선비는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였다.

단석괴의 활약

선비는 초원이 지배적인 세력으로 대두되었지만, 부족끼리 분열되어 유목국가로 보기는 어려웠다. 2세기 중반, 단석괴(檀石槐)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등장하여 선비를 하나로 모아 강력한 유목 제국을 건설하였다. 단석괴는 "아버지가 3년 동안 흉노를 따라 종군하는 사이 어머니가 천둥과 함께 떨어진 우박을 삼키고 임신하여 나은 자식이라고" 전해진다. [2] 이미 열네살 무렵에 용맹하고 지략과 지혜가 뛰어났다고 하며, 부족민들은 그의 무용과 공평한 처사 등에 감복하여 스스로 그를 따랐다고 한다. 부족민들은 그를 "대인(大人)"으로 추대했다. 전설적 요소가 혼합되었지만, 단석괴는 혈통적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의 실력만으로 유목 군주의 자리까지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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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석괴가 이끄는 선비는 전성기의 흉노를 연상시키는 넓은 세력 판도를 마련했다. 선비는 서쪽의 오손을 격파하고, 동쪽으로는 부여를 물리치는 한편 북방의 정령의 공격을 막아내며 거대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남쪽의 동네북 한나라 북방을 약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단석괴는 흉노와 유사한 분권적 통치체제를 정비했다.

쇠퇴

가비능의 활약

오호십육국 시대

문화

인종

  1.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이평래 역, 소나무.
  2.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고마츠 히사오 외, 이평래 역, 소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