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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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223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12월 24일 (토) 23:17 판

개요

베트남의 역사는 고대부터 현재 베트남 북부지역[1]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남쪽에는 임읍과 점성이라는 별개의 국가가 존재했다. 베트남 역사의 중심이 되는 북부지역은 다이비엣(대월)이라 불리웠으며[2] 남쪽은 임읍과 부남, 점성이라는 별개의 국가가 존재했다. 특히 점성은 18세기 들어서야 다이비엣의 영향권에 들어간 걸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베트남이 완성된 건 정말 늦은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더구나 베트남은 15세기 들어 남북조로 나뉘어 오랜기간 전쟁을 치뤘고 19세기에 들어서야 통일된 왕조가 세워졌는데, 이 남북조 대립기간 동안 안남산맥을 중심으로 이북, 이남지방은 다른 문화적 색체를 띄기 시작했고 다문화, 다인종 문제가 시작되었다.

고대

  • 구석기 시대
    • 도산/썬비 문화
  • 신석기시대
    • 화빙/박썬문화
  • 청동기시대
    • 풍응우옌/동더우/고문
  • 초기 철기시대
    • 동썬문화. 이 동썬문화의 특징인 동고라는 항아리가 동남아시아 대부분과 중국 남방에서 발견됨에 따라 당시에 해상무역이 활발히 이뤄졌다고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발견된 사람의 치아가 북경원인과 비슷한 걸로 보아 둘은 같은 문화권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반랑

초기철기시대인 동썬문화를 기반으로 건국된 국가. 기원전 7세기(혹은 기원전 2852년)에서 기원전 258년까지 존재했다. 기록에 남은 베트남 지역 최초의 국가이다. 현재 하노이 북부에 존재했던 백월족의 연맹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는 양자강 이남과 인도의 문화가 융합된 형태를 띄었다. 기원전 7세기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된다.[3] 월사략에 의하면 초대국왕의 이름은 락롱꿘이며 그는 마술을 사용하여 주변 부족들을 통합했다고 한다. 유물인 동고에 그려진 전쟁그림을 보면 반랑의 지역이 타민족과의 각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정치체제

반랑의 왕은 훙(Hung)왕이라 불리웠으며 그 밑에는 15개 부락[4]의 족장들이 있었다고 한다. 수도는 퐁 쩌우라는 현에 세웠다. 왕 아래로는 락후(문관)와 락장(무관)이 있었고 왕자와 공주는 관랑이라 불리웠다. 하급관리는 포정이라 불렀다. 관직은 포도라는 형태로 자식에게 승계되었다[5]. 왕위의 장자승계제도는 없었으나 초대 왕이었던 락롱꿘이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줬다는 <대월사기전서>의 기록을 토대로 일부 학자들은 음서제도와 장자승계제도는 베트남 민족 고유의 문화라고 주장한다.

사회

반랑은 고대국가인 만큼 제정일치사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왕은 정치적, 주술적 최고위자였다. 사회형태는 상하구분을 두는 계급사회[6]였고 왕-관랑-락후/락장/포정 그리고 평민계급민 락민이 존재했다. 그 외에 전쟁포로나 죄수들로 생겨난 노비계급도 있었다. 부계사회였으나 동아시아와 같은 남존여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평민인 락민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단발을 했으며 교룡(악어)를 피하기 위한 주술적 의미로 몸에 문신을 새겼다. 남성 락민은 코(kho)라는 옷[7]을 입었고 여성들은 치마를 입었으며, 의복은 뽕/삼나무의 추출물로 만들었다. 풍습중에는 빈랑 열매 및 구장 잎을 씹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는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이 해상을 통한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경제

농사가 발달했다. 청동기가 매우 발달하여 제련술 및 광산 개발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방직, 제련 이외에 목공과 도공[8]기술이 발달하였다.

어우락

반랑을 멸하고 베트남 북부를 장악한 국가. 기원전 257년~기원전 179년까지 존속했다. 이들에 대한 사료가 별로 남아있지않아 설립과정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민간전승에 의하면 반랑 인근의 어우 비엣 부족의 족장 툭판이 반랑을 멸망시키고 세운 국가라고 전해진다. 국호인 어우 락은 툭판의 어우 비엣족과 반랑의 락 비엣 족의 융합을 나타내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수도는 오늘날 하노이 북부 평야지대인 꼬롸로 정했고 국가가 설립된지 2년 후 꼬롸성을 완공했다. 꼬롸성 출토 현장에서 발견된 동과 철로 된 화살촉은 반랑과 마찬가지로 어우 락 역시 타민족의 침입이 잦았다는 것을 뜻한다[9].

경제

평민인 어우민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해 설탕을 생산했고 논밭에서는 벼, 감자, 고구마, 콩을 생산했다.

1차 중국 지배시기

이 1차 중국 지배시기의 시작을 언제로 보느냐에 학계의 의견이 갈린다. 한 쪽은 한나라가 남월을 멸망시킨 기원전 111년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쪽은 남월이 어우 락을 완전히 멸망시킨 기원전 179년으로 보기도 한다.

남월

교주

전한시기 한나라가 남월을 해체시키고 9군을 설치한 것에서 시작했다.

남쪽의 왕조들

임읍

부남

독립전제왕권시대

응오 왕조

딩 왕조

전 레 왕조

리 왕조

쩐 왕조

호 왕조

  1. 안남산맥 이북지방.
  2. 막씨왕조가 지배한 잠시동안은 다이응우라고 불리웠다.
  3. 다만 다른 베트남 역사서인 《대월사기전서》에는 기원전 2852년에 건국되었다고 소개한다.
  4. 이를 락 비엣 부락이라고 한다.
  5. 일종의 음서체제로 보면 된다
  6. 오늘날 발견되는 당시의 무덤을 출토한 결과 계급에 따라 무덤 부속품들이 차이를 보였다.
  7. 말이 옷이지 오늘날 일본의 훈도시와 같다고 보면 된다.
  8. 위의 동썬문화에 나온 동고가 도공기술의 산물이다.
  9. 그만큼 비옥한 곳에 영토를 잡았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