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독:복제양 돌리

Caeruleum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3월 16일 (토) 14:24 판 (일상과학 WiKi - wikidok>dailysciences | 복제양 돌리(http://ko.experiments.wikidok.net/복제양 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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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2월 27일자 발간된 NATURE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돌리.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동물 중엔 단연 복제된 양 한 마리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돌리는 최초로 복제된 동물은 아니며 1902년 스위스의 스페만이 도룡뇽을 복제했던 것을 최초의 복제 실험으로 보고 있다. 그밖에도 1952년 미국의 브릭스와 킹의 개구리가 있었고 생쥐(1981), 면양(1986), 토끼(1988), 소와 돼지(1989) 등의 수많은 실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복제양 돌리만 이렇게 유명하게 된 것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돌리는 세계 최초로 생식 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이용하여 복제에 성공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를 이용해서 복제가 가능했지만 세포 내의 핵 제거 및 치환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일반적인 세포로도 복제가 가능해졌다.

복제[원본 편집]

다양한 의미의 복제가 있지만 이곳에서 말하는 복제는 한 생명체의 DNA를 추출해 원 개체와 같은 DNA를 가진 개체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자연적인 복제로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 이들은 하나의 수정란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두개로 갈라져 각각 독립된 개체가 된 것으로 유전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다.

처음에 시도되었던 복제법은 생식세포를 이용한 복제로 앞서 서술했다시피 1902년의 도룡뇽 복제를 최초로 친다. 도룡뇽의 수정란이 두 개의 세포로 분리되는 순간 간난아기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수정란을 나누는 방법으로 비교적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를테면 일란성쌍둥이의 그것을 인위적으로 한 것. 1952년에는 미국의 브릭스와 킹이 개구리 수정난의 핵을 제거하고 개구리 태아에서 추출한 핵을 넣어 복제 개구리를 만들었다. 이 경우에는 핵을 제공한 개구리 태아가 원본인 복제 개구리가 된다. 복제의 핵심인 DNA가 핵에 들어 있기 때문. 1962년에는 영국의 거든이 개구리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다른 올챙이 창자 세포의 핵을 이식해 다수의 복제 개구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포유류가 아닌 동물에서 체세포 복제에 성공한 첫 사례다. 이후 포유류에 이 기술이 적용된 사례가 바로 '복제양 돌리'되겠다.

실험 과정[원본 편집]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 기술.[원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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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세포 복제 기술과 그것을 이용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의 개요.

단순히 생식세포를 나눠 각각의 개체로 자라게 하는 비교적 단순한 과정과 다르게 핵을 추출하고 집어 넣는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급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밑의 사진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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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이것이 핵을 빼내는 추출과정이다.

여담으로 이 세포와 핵이 워낙 작기 때문에 젓가락질을 많이 하는 한국사람의 손기술이 좋다고 하는 기사들도 여럿 나오기도 했다.(...)

이런식으로 복제를 하려면 3마리의 양이 필요한데,

1. 난자를 제공해줄 양

2. 체세포를 제공해줄 양

3. 대리모

가 그들이다. 이 중 2번, 체세포를 준 양이 복제의 원본이 된다. 난자를 제공하는 양과 대리모를 같이 하면 2마리가 필요하게 된다.

돌리의 탄생[원본 편집]

돌리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1996년 7월 5일 탄생하였다. 실험자는 영국의 이언 월머트(Ian Wilmut)와 키스 캠벨(Keith Campbell). 이들은는 6살 된 암컷 양의 유방 세포에서 핵을 꺼내 다른 양의 수정란의 핵을 제거하고는 그곳에 집어넣었다. 이 바꿔치기 당한 핵을 다시 대리모에게 넣어 만든 것이 돌리. 하지만 난자를 제공한 양과 체세포를 제공한 양이 다르므로 각기 다른 미토콘드리아 DNA가 혼합되 있는 양이므로 엄밀히 말해 '완전 복제'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과정은 실로 쉽지 않은 과정으로 276번의 실패 끝에 277번째 성공했다고 한다. 이후 돌리는 1997년 2월 22일 발표되어 1997년 2월 27일자로 발간된 NATURE지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Dolly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도 독특한데 이름을 붙이려 할 때 돌리의 산파 역할을 한 수의사인 존 브래큰(John Bracken)이 "돌리가 어떨까?" 하고 외쳤다고 한다. 이 수의사는 70~80년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가수 Dolly Parton을 말한 것이었다. 왜 아무 상관도 없는 가수의 이름을 따왔냐하면...

이는 이후 이언 월머트의 말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누구나 ‘가슴’ 하면 돌리 파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No one could think of a more impressive set of mammary glands than Dolly Part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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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Dolly Parton.

앞서 말했던 것. 돌리는 원본 양에서 유방 세포를 가지고 만든 양이다. 그리고 돌리 파튼은 크고 아름다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분 과학계가 이렇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돌리 파튼은 오히려 영광이라고 했다고...

실험 이후[원본 편집]

돌리는 이후 6년을 살았다. 즉, 탄생 1996년 7월 5일, 사망 2003년 2월 14일을 기록했다. 양의 보통 수명이 12년인것으로 볼때 6살된 양의 체세포를 이식한 돌리가 6년을 살았다는 것은 유전적인 나이는 원본과 같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특히 관절염이 어릴때 나타났다고 하니 꽤 고생을 한 듯.

하지만 이언 월머트는 이 입장에 반대한다. 돌리는 실험 대상으로써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고 연구실에서만 갇혀 산 탓에 오래 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돌리와 비슷한 시기에 복제된 다른 양들은 돌리보다 더 길게 살았다는 것 또한 근거로 제시했다.

많이 쓰이고 있는 핵이식 기술은 의외로 성공률이 10%정도 되는 성공확률이 낮은 기술이며 또한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하는 과정에서 기형이나 유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위험성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금은 핵치환기술 이외에도 할구복제, 형질전환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복제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와있다. 할구복제란 수정란의 분열기중 배반포에 이르는 시점에 각각의 할구를 분리하여 이식 및 활성화를 통해 복제개체를 만드는 기술이다. 또한 형질전환 복제방법의 경우, 필요로 하는 유전형질을 투입 및 제거를 통해 원하는 형질을 가진(또는 없는) 변환된 핵을 이식하여 복제개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복제양 돌리 이후 많은 복제 실험을 행해졌다. 특히 한국에서도 지금은 각종 사건으로 제명된 황우석 박사가 1999년에 행한 복제 소 영롱이가 있었다. 영롱이 역시 핵치환기술로 만든 복제소로써 1999년 2월 12일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를 성공하였다.

또 복제 기술은 점점 발달하여 개체를 복제하는 것이 아닌 줄기세포를 이용해 특정 장기를 복제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창작물에 나오는 복제인간이 현실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데에 대한 논란도 점점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