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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혹은 그 전, 후부터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조선을 떠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일군 재산들을 일본으로 온전히 가저갈 수 없었고, 몇몇 일본인들은 일본에 일가친척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 1910년 혹은 그 전, 후부터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조선을 떠나는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조선에서 일군 재산들을 일본으로 온전히 가저갈 수 없었고, 몇몇 일본인들은 일본에 일가친척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 ||
1945년 9월 12일 소공동의 경성 YMCA 청년회관 로비에서는 조선어 강습이 열렸다.<ref> | 1945년 9월 12일 소공동의 경성 YMCA 청년회관 로비에서는 조선어 강습이 열렸다.<ref> 이이면식, 조선을 떠나며, 역사비평사,p.80 </ref> 오랜 시간 금지되었던 조선어를 일본인들이 앞다투어 "가갸거겨"를 배우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함을 새삼 느낄 수 있다. | ||
이날 오후 4시 개강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사야 야스타로(笠谷保太郎)는 "상황은 다르지만 과거 경성YMCA가 막 조직되었을 때 시작한 사업이 바로 조선어 강습"이라고 말했다. 이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염원을 지닌 자들은 먼저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이날 오후 4시 개강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사야 야스타로(笠谷保太郎)는 "상황은 다르지만 과거 경성YMCA가 막 조직되었을 때 시작한 사업이 바로 조선어 강습"이라고 말했다. 이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염원을 지닌 자들은 먼저 언어를 습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