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자이스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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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초기===
===냉전기===
===냉전기===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자 서독에는 칼 자이스 A.G.(Carl Zeiss A.G.)가 설립되었고 동독에는 동독 국영기업인 칼 자이스 예나(VEB Carl Zeiss Jena)가 설립되었다. 원래 얄타조약에 의거하면 자이스는 해체 대상이었으나, 다행이도 소련이 전후배상 명목으로 칼 자이스 예나의 [[Contax II]] 카메라와 생산 설비, 그리고 인력을 우크라이나로 뜯어갔으나 <s>심지어 소련은 아그파(AGFA)를 털어서 당시 꽤 값나가던 컬러필름을 싸그리 쓸어갔다</s> 칼 자이스 예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문제는 칼 자이스가 건 상표권 분쟁<ref>이제까지 팔아먹던 자이스 이콘, 콘탁스 등의 카메라 등</ref>으로 기존 생산품들을 계속 생산할 수 없었고, 드레스덴에 설립된 또 다른 동독광학기업인 [[펜타콘]]의 SLR카메라를 위한 M42 마운트 렌즈를 주로 생산했다. 이런 펜타콘 카메라의 렌즈중에 Aus Jena가 칼 자이스 예나의 렌즈.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분단되자 서독에는 칼 자이스 A.G.(Carl Zeiss A.G.)가 설립되었고 동독에는 동독 국영기업인 칼 자이스 예나(VEB Carl Zeiss Jena)가 설립되었다. 원래 얄타조약에 의거하면 자이스는 해체 대상이었으나, 다행이도 소련이 전후배상 명목으로 칼 자이스 예나의 [[Contax II]] 카메라와 생산 설비, 그리고 인력을 우크라이나로 뜯어갔으나(...) <s>심지어 소련은 아그파(AGFA)를 털어서 당시 꽤 값나가던 컬러필름을 싸그리 쓸어갔다</s> 칼 자이스 예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문제는 칼 자이스가 건 상표권 분쟁<ref>이제까지 팔아먹던 자이스 이콘, 콘탁스 등의 카메라 등</ref>으로 기존 생산품들을 계속 생산할 수 없었고, 드레스덴에 설립된 또 다른 동독광학기업인 [[펜타콘]]의 SLR카메라를 위한 M42 마운트 렌즈를 주로 생산했다. 이런 펜타콘 카메라의 렌즈중에 Aus Jena가 칼 자이스 예나의 렌즈.


여튼, 서독측에서 Zeiss IKon 브랜드를 차지하게 되었고, 1975년까지 카메라를 생산하게 된다.
여튼, 서독측에서 Zeiss IKon 브랜드를 차지하게 되었고, 1975년까지 카메라를 생산한다.


===통일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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